[기획(4) 해군기지와 평화의 섬] 동북아시대 위원장 2001년 주장…“군사목적 선박·항공기 기항·기착도 금지돼야”

노무현 대통령이 주창한 ‘동북아균형자론’의 전도자이자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체제구축을 이끌고 있는 제주출신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이 지난 2001년 ‘제주 평화의 섬’을 제안하면서 “제주도를 비무장지대화 해야 한다”고 밝힌 사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문정인 위원장은 1989년 노태우 대통령과 소련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제주에서 한·소정상회담을 가졌을 당시 언론기고를 통해 ‘평화의 섬 제주’를 제안했던 당사자였다. 

문 위원장의 제안은 그 이후 제주대 교수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천방안이 논의됐으며, 1999년에 개정된 제주도개발특별법에 ‘국가는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 도(道 )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된데 이어, 지난 1월 27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제주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됐다.

문 위원장은 ‘평화의 섬’을 제안했고, 또 동북아시대위원장으로서 이 제안을 정부의 공식선언으로 이끌어 내는 역할을 앞장서 온 장본인인 셈이다.

최근 해군이 세계 평화의 섬 제주에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밝혀 상당한 파문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의 섬 주창자이자 정부의 평화정책을 이끌고 있는 문 위원장의 견해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문 위원장은 2001년 4월 제주도와 제주발전연구원에 의해 수립된 ‘제주4.3평화공원 조성 기본계획’에 제출한 ‘제주4.3의 정치적·미래적 맥락과 공원조성에의 함의’란 연구과제를 통해 평화와 인권의 섬 제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문 위원장은 이 과제에서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의 전환점을 제공했으나 아직도 한반도 평화구축의 길은 요원하다”면서 “평화구축이 긴장완화, 신뢰구축 및 군비통제의 경로를 거쳐 남북한 평화협정체결로 구체화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6.15선언의 채택은 평화구축의 서장에 불과하며 한반도는 아직도 위기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제주사회 역시 여기서 제외될 수 없다”고 밝혔다.

문 위원장은 “더욱 중차대한 문제는 동북아 지역질서의 불투명성으로, 미국이 중국 위협론의 기치아래 전역미사일방어(MD·Missile Defense) 체제를 구축해 나갈 경우 중국, 러시아, 북한의 북방 3각축과 미국, 일본, 한국의 남방 3각축간에 새로운 형태의 대결구도를 야기시킬 수 있다”면서 “이러한 신냉전구도의 재현은 동북아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자리 잡고 있는 제주의 미래를 크게 위협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문 위원장의 견해는 "한국은 미국의 주도하에 일본이 참여하고 있는 MD에 참여할 계획이 없으며, 화순항에 배치될 이지스 구축함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장거리 유도탄을 겨냥한 것이지, 미일 MD체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해군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보여주고 있다.

문 위원장은 미국이 일본과 함께 MD체제로 나갈 경우 한국은 미·일과 함께 남방 3각축에 편입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제주도는 중국, 러시아, 북한으로부터 크게 위협당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군의 주장과 배치되는 견해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문 위원장은 또 “동북아로부터의 미군철수도 제주의 미래에 위협요소가 될 수 있다”고 전제한 후 “한반도로부터의 미군 철수는 동북아지역 내에 힘의 공백을 야기하면서 분단 또는 통일하의 한반도 전략구상을 불투명하게 유도할 수 있다”며 “미군 철수 후 통일 한반도는 대륙세력인 중국과 연합하거나 반대로 해양세력인 일본과 연합을 해 국가안보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나 이 두 가지 대안 모두 전략적 불안정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더구나 중간 세력국가로 부상해 독자적인 생존경로를 모색할 경우에도 중국과 일본의 견제와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며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냉전의 완전한 종식이 온다 해도 한반도와 제주의 안전한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평화가 유지되지 않으면 인권 역시 보장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세계평화, 동북아 평화,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주체적 입장에서 일궈 나가야만 제주의 평화로운 미래가 신장될 수 있다”면서 제주를 '평화지대(zone of peace)'로 선포할 것을 제안했다.

"제주도 전체 비무장지대화 및 군사적 목적의 선박 및 항공기의 기항과 기착 금지 "

문 위원장은 평화지대의 성격규정과 평화의 섬 실천전략을 분명히 했다.

문 위원장은 ‘국가는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 도(道 )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제주도개발특별법 상 평화의 섬 해석에 대해 “여기서 말하는 평화지대로서의 ‘평화의 섬’은 제주도 전체를 비무장지대화 할뿐 아니라 군사적 목적의 선박 및 항공기의 기항과 기착을 금지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규정했다.

문 위원장은 “현재의 주권개념과 실정법 테두리 안에서 이러한 특수지대를 제주에 구축한다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나 장기적 측면에서 이러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위원장은 이어 제주를 '평화창출(peace-making)' 전진기지로 부상시켜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엄격히 말해 평화지대의 선포는 자기중심적 평화구축의 방법으로, 특정지역의 비군사화 또는 중립화를 국제적으로 선언함으로써 국제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평화지대(평화의 섬)에 대한 문 위원장의 구상은 동북아 신냉전구도의 중심에 서 있는 제주가 국제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고 미래의 평화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비군사화(비무장지대화)’ 또는 ‘중립화’를 국제적으로 선언해야 하며,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군사목적의 선박 및 항공기의 기항과 기착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의 섬’을 지키기 위해서 제주의 화순항에 해군기지가 건설돼야 하며, 군항과 군함의 존재 자체가 ‘평화의 섬’을 보장하는 국가의 의지표현이라는 해군의 주장은 군사력 팽창을 기본 임무로 하고 있는 해군의 ‘야심’인 셈이다.

문 위원장은 평화창출 전진기지인 제주의 역할에 대해 국제, 동북아, 한반도의 평화구축에 대한 연구기관을 설립해 ▲긴장완화 ▲신뢰구축 ▲군비통제 ▲평화체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제평화 및 협력에 관한 국제기구의 유치를 통해 제주를 평화의 거점기지로 구축할 수 있으며, 이와 관련해 동북아 국가평화회의 창설을 통해 그 상주 사무국을 제주에 두고, 동북아의 분쟁중재 및 해소센터 설립을 구상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2001년 밝힌 문정인 위원장 견해는 4년이 흐른 지금 모든 게 현재화 됐으며, 그의 견해는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균형자론’의 토대로 작용했다는 점이 해군의 화순항 해군기지 건설계획과 맞물려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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