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피소드 2] 고참 부부와 함께 술로 지샌 신혼여행

육지사람들은 제주사람들이 어디로 신혼여행을 가는지 참 궁금한 가 봅니다. 미리 답을 얘기하자면 똑같이 국내로 가기도 하고 해외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국내라면 당연히 제주를 벗어나서 경주 혹은 설악산으로 갑니다.

저는 신혼여행을 2박 3일로 설악산에 갔습니다. 이제 제 결혼식만큼이나 황당한 신혼여행 얘기를 할까 합니다.

첫날밤을 제주도 호텔에서 잠을 자고 제주공항으로 갔습니다. 1999년 2월 25일 아침 8시 30분 제주에서 김포공항으로 간 다음 다시 김포에서 속초로 가는 11시 40분 비행기를 타야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제주에서 신혼여행지인 설악산이 있는 속초공항까지는 직항편이 없었습니다.

부랴부랴 제주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속초공항에 안개가 껴서 비행기가 결항되었더군요. 연결편이라 속초공항 운항이 재개되어야 제주에서 김포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도 비로소 운항을 한다는 항공사 직원의 얘기에 우리는 마냥 제주공항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저희들도 처음부터 신혼여행을 해외로 갈 생각은 안 했던 것은 아닙니다. 풍족하지 않은 결혼자금에 예산을 잡다보니 지출항목을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는 그 때 늦은 나이에 야간대학을 졸업한 터라 조금이라도 아껴야 했습니다. 처가에서 도움을 받을 형편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해외여행은 나중에 돈 모아서 가자고 하고 설악산으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짧은 2박 3일로요. 아내가 사무실을 오래 비울 형편이 못 되었던 것이 2박 3일 짧은 이유 중의 하나였습니다.

두 시간 가량 무작정 공항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슬슬 따분하고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더군요. 게다가 저는 그 동안 마신 술이 깨지 않아서 정말 어디에 드러누웠으면 하는 생각만 간절하더군요. 그래서 아내와 저는 머리를 썼습니다.

집에서 딱 두 시간만 잠을 자고 다시 나오자고요. 다른 지역은 공항과 시내가 떨어져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곳 제주는 가능한 일입니다.

또 '궁즉통'이라고 마침 우리가 타고 가야 할 항공사 카운터 직원이 제 고등학교 동창이더군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속초 가는 비행편이 재개되면 핸드폰으로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 전화를 받고 쏜살같이 달려오면 바로 타고 갈 수 있게요.

우리는 신접살림을 차린 집에 들어와 꿀 같은 잠을 잤습니다. 저는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벨이 울리면 바로 받을 수 있게 했고요.

세 시간 가량 잠을 자고 벨소리를 못 들어나 싶어서, 아니면 이 친구가 전화하는 걸 잊었나 싶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다시 공항에 갔습니다.

공항에 다시 도착하니 여전히 속초 가는 비행기는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우리는 공항매점에서 김밥과 가락국수를 하나씩 먹었습니다. 그래도 할일이 없자 우리 부부는 수첩을 꺼내서 서로가 받은 돈을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분명 오만원 한 것 같은데 얘는 삼만원밖에 안했네…" "얘는 꼭 올 줄 알았는데 치사하게 안 왔네…" 하면서 순식간에 우리 부부는 주변사람들을 부조금 액수로 인간성을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오후 3시가 넘어서 속초행 비행기가 운항된다고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김포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김포공항에서 다시 한 시간 정도를 더 기다린 다음 속초행비행기를 올라타니 비로소 신혼여행 간다는 기분이 들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하루였지만….

속초공항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넘었습니다. 정말 꼬박 하루를 비행기를 기다리다 보낸 거지요. 그래도 호텔만은 괜찮은 곳으로 하자고 하여 저희가 예약한 곳은 설악산 입구에 있는 특급호텔이었습니다. 방마다 유명연예인들의 사인이나 기념품이 놓여 져 있는 그런 호텔이었습니다.

그런데 호텔에서 우리와 똑같이 하루를 꼬박 기다린 일행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군생활 할 때 엄청 친했던 고참 부부였습니다. 고참은 강릉에 사는데 제대 후에도 계속 연락을 하고 있었고 신혼여행을 속초로 간다는 말에 무작정 호텔에서 기다렸던 거지요. 호텔에 전화해서 제 이름으로 예약확인을 했고 깜짝 놀래주려고 했는데 비행기가 결항됐다는 말에 무작정 기다렸답니다.

채 짐을 풀 사이도 없이 넷이 한 일행이 되어 바로 속초의 대포항으로 나갔습니다. 고참도 저 못지않은 술꾼이거든요.

우리 부부, 고참 부부 이렇게 넷이서 대야에 담긴 생선을 골라 그 자리에서 회를 먹는 것도 참 좋더군요. 이렇게 다시 계획에 없던 술을 마시기 시작하니 술맛도 참 좋더군요. 더군다나 낮에 비행기 타기 전 세 시간 정도를 자둔 터라 어느 정도 힘이 되살아나는 듯한 착각도 들었고요.

생전 처음으로 전어회도 먹어보고 제주도 바다와는 다른 분위기를 느끼며 소주 다섯 병 정도를 마시고 다시 속초시내로 가서 생맥주를 마시고 다 같이 호텔에 돌아왔습니다. 아, 속으로 두 여자를 번갈아 보며 내 아내가 예쁘다 하고 자랑스러워했던 것 같습니다. 좀 전까지만 해도 화장발에 속았다고 분해 했음에도요. 사람은 참 간사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게도 침대가 트윈이었습니다. 싱글베드는 보통 크기보다 더 컸고요. 두 명씩 자도 충분할 정도로요. 두 명의 여자는 이내 곯아떨어지고 고참과 저는 미니바의 캔맥주를 다 거덜 내고는 각자의 아내를 찾아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아침 열시가 넘어서야 깨어났고 남자들 먼저 재빨리 씻고 로비에서 기다렸고 여자들 은 한 시간 정도 넘어서야 로비로 내려왔습니다. 고참이 가지고 온 차로 신혼여행을 떠나게 된 거죠. 고참부부는 앞자리에 앉고 우리는 뒷자리에 앉고 어디를 갈까 하다가 낙산사로 갔습니다. 가는 도중 아내와 저는 계속 잠을 잤고 낙산사 일주문 앞에 내린 다음 비로소 잠에서 깼습니다.

고참만 차에서 나와 우리의 사진을 찍었고 우리는 채 삼십분도 걸리지 않아 의상대, 홍련암을 후다닥 보았습니다. 아, 생각나는 것 하나 있습니다. 기와 불사하는데 가서 만원을 주고 "다복(多福)"이라고 적었습니다.

다시 순식간에 차에 올라타고 고참의 집이 있는 강릉으로 향했습니다. 강릉에서 초당순두부집에 들러 밥을 먹는데 또 반주를 곁들이다 보니 다시 술이 시작되었습니다.

강릉에서 호텔로 돌아가려니 늦은 것 같고 해서 이번에는 강릉에서 바다를 옆에 두고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새 두 여자는 많이 친해졌고요. 서로 언니, 동생하더군요.

또 다시 아침 강릉에서 속초로 가는 택시를 대절하고는 호텔로 향했습니다. 다시 제주로 가려면 속초에서 김포로 가는 비행기 시간을 맞춰야 하니까요.

택시 안에서 또 다시 우리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고 저는 잠이라도 더 자게 속초에서 김포로 가는 비행기가 결항되기를 빌었습니다.

호텔에 도착해서 채 풀지 않은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가는데 야속하게도 정말 바랄 때는 정시에 출발하더군요.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한 시간 반가량 기다리다 제주행 비행기를 갈아타는데 비로소 한숨을 돌리듯 아내가 얘기하더군요.

"무슨 신혼여행이 MT보다 못하냐?"

저도 그 말에 공감하면서 신혼여행가서 대체 무엇을 했고 어디를 갔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저희 부부는 집에 도착해서 우체국에다 젓갈과 가자미식해 세트를 주문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도착할 수 있도록 부탁을 했고 그 것으로 결혼인사를 드리러 가면서 갖고 갔습니다.

낙산사가 불타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곳은 우리 부부의 유일한 신혼여행지였습니다.

--------------------------------------------------------------------
글쓴이가 직접 운영하는 제주관광안내사이트 강충민의 맛깔스런 제주여행
www.jeju1004.com 에도 올린 글입니다. 제가 올린 글이 어려운 시대에 조금이라도 따듯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