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23) 대상군의 자리는 어디인가 - 평대리도께동산불턱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도깨동산 불턱 ⓒ김순이

평대리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비자나무숲이 있다. 이 숲을 지날 때면 외할머니를 따라 비자를 줍던 파아란 가을날이 달려온다. 그 숲에 다녀오면 머리카락과 옷자락에 배인 향내가 며칠 지속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급스런 향기는 비자향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런가, 평대리는 바다 빛도 유난히 짙푸르다.

마을과 아주 가까운 도께동산에 있는 불턱은 평대리 해녀들의 베이스캠프였다.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데다 지형지세가 불턱으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비교적 넓은 터에 북서와 남서 방향으로 암반이 병풍처럼 둘러있어 자연스럽게 바람을 막아줘 계절이나 바람 방향에 따라 골라서 사용했다.

불턱이란 해녀들이 물질을 하기 전에 모여서 옷을 갈아입고 장비를 점검하는 곳이다. 또한 차디찬 바닷물에서 물질하는 동안 얼어버린 몸을 덥히고 휴식을 취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턱은 단순한 휴게장소만은 아니다. 애기해녀가 첫 물질을 어른들에게 신고하는 장소요, 기량이 뛰어난 상군해녀로부터 경험을 한 수 배우는 곳이다. 동네를 떠돌아다니는 미심쩍었던 소문의 진위가 확인되는 곳이며 심뽀가 고약한지 아름다운지도 여지없이 들통나버리는 곳이기도 하다.

▲ 도깨동산 불턱 ⓒ김순이

불턱은 해녀문화의 전승 장소였다. 어느 마을에나 해녀 중의 해녀, 최고의 덕성과 기량을 아울러 겸비한 해녀가 있었고 그런 해녀를 일컬어 대상군(大上軍)이라 했다. ‘대상군’이란 칭호는 단지 해산물을 많이 채취하는 그런 기량만으로는 얻지 못한다. 바다에서 무리를 안전하게 이끌며 아랫사람들을 포용하고, 못난 사람들을 위해 주며 잘난 사람들을 조용히 제압해버리는 당당한 리더, 그런 존재가 대상군이다.

그렇다면 불턱에서 대상군의 자리는 어디일까? 답은 “그날의 날씨에 따라 대상군의 자리는 달라진다.”이다. 매운 연기가 가지 않는 곳, 그곳이 바로 불턱에서는 가장 좋은 자리이므로 대상군만이 앉을 수 있다. 감히 아무도 앉지 않고 기꺼이 내어주는 이 자리는 최고의 리더에게 바치는 해녀들의 존경심이라 할 수 있다.

평대리 불턱이 있는 곳은 도께동산 아래쪽이며 위쪽에는 현대식 해녀탈의장이 있다. 온몸을 달달 떨면서 바다에서 올라와 허겁지겁 불턱에 불을 지피고 몸을 덥히던 시절은 이제 저만치 가버렸다. 요즘은 기름보일러를 가동하여 온수 샤워를 하고 스쿠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평대리주민자치위원회에서는 도께동산불턱을 복원하여 안내판까지 세워놓았다. 누구든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쉽게 눈에 띈다. 그런데 이 불턱의 중심에 불을 피우는 통을 시멘트로 만들어 놓았다. 드럼통 반으로 자른 것을 가져다 놓은 적이 있어 그걸 흉내 내어 만든 것이라는데 원래의 모습이면 족한 것 아닐까. / 김순이

*찾아가는 길 : 평대리→평대초등학교 옆길로→바다쪽 해안도로→평대해녀촌 식당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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