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서거 1주기 'A4 DEMO' 오프닝 행사

▲ '이디가 갤러리'에서는 시청 앞 추모행사와는 또다른 '소란스런'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고인의 소탈함을 꼭 빼닮은 혹은 그러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그날의 행사는 고인을 추모하는 또다른 방법이었다.

작년 5월 말 시민들이 매단 노란 천조각이 수놓았던 시청 어울림마당에는 1주기를 맞은 22일 밤에도 다시 노란 천조각이 달렸다. 고인을 기리는 영상이 계속해서 돌아가고 영정 앞에 헌화하려는 시민과 가슴에 노란 리본을 맨 상주들이 엄숙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로부터 10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카페 ‘이디가 갤러리’. 이곳에선 6월 2일까지 ‘A4 DEMO’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역시 노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은 것이 계기가 됐다. 이곳은 엄숙함 없이 노래와 가무로 떠들썩했다. 이들 대부분은 ‘A4 DEMO’ 참여 작가들. 이들의 ‘소란’은 고인을 추모하는 또다른 방식이었다.

“노무현, 한 인간을 기념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노무현이라는 인간의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자 해서 모인 거죠. 이런 가치를 잊지 않고 지켜나갔으면 해요.” 시인 김순남은 “강정에 대해 답답한 일이 많다”며 ‘일강정아 푸른물아’를 낭독한 뒤 말했다.“

▲ A4용지에 출력된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작품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추모 분위기는 시종 즐겁고 소란했다. 이들은 고인의 소탈함과 권위주의 탈피, 소통을 중시했던 모습들을 회고하며 “그가 하늘에서 보면서도 웃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4 DEMO’ 전시 역시 권위주의를 탈피한 ‘소탈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데모(?) 전시’였다. 규격화된 사무용지에 출력된 예술가들의 작품은 액자화된 캔버스가 갖고 있는 권위를 제거한 것이었다. 전국 13개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이뤄지고 있는 이 전시는 온라인에서도 만날 수 있다. www.art4act.net에 온라인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을 내 프린터기로 A4용지에 출력하면 전국 각지의 전시장에서 만나는 작품들과 동급의 작품들이 내것이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공동기획한 양미경 씨는 앙드레 말로를 인용하며 “직접 보고 만지는 박물관의 시대는 지났다. 어디에 있든 간에 모든 자료는 인쇄된 자료를 통해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번 전시는 전국에 있는 200여명의 작품들을 카페라는 자유로운 만남의 장소에서 관객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A4 DEMO’의 'DEMO'는 시위(demonstrate)일뿐 아니라 민주주의(demo-cracy)기도 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출력된 민주주의’들이 펄럭였다.

▲ 제주출신은 아니지만 제주가 좋아 4년째 내려와 살고 있다는 '자리젓 밴드'의 공연도 이어졌다. 자유로움 혹은 탈권위와 꼭 어울리는 공연이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제주지역 상주(喪主) 자격으로 인사하기 위해 왔다는 소설가 한림화 선생은 인권변호사 노무현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내가 인권운동가로서 활동할 때 인권운동가 대 인권변호사로 처음 만났어요. 당시 인권변호사 노무현은 수줍음 많은 촌놈 그대로였죠. 제주에서 탑동 매립 문제가 있었을 때도 무료 변론을 해줬어요. 그때 잠수들 보상금 등의 지원을 약속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비행기 삯도 순수히 당신 돈 들이고 와서 변호를 맡아줬어요. 그는 항상 제주도민처럼 제주도를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제주 거주 4년차에 현재 중문에 살고 있다는 백현일 씨를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 밴드 ‘자리젓밴드’가 즉흥에 가까운 노래를 이었다. 즉흥인 데다 가사까지 까먹어 가사 전달이 안되지만 특유의 허우적거림으로 흥을 다 돋구고 덧붙이는 말이 일품이었다. “5월이면 살아남은 자의 슬픔 아닌 쪽팔림, 마음빚이 있다. 이게 제주 와서 가중되는 것이다. 5월이면 개청승이 가슴에 스며, 시대정신서 자유롭지 못한다.”

공식적으로 준비된 공연은 여기까지였지만 노래는 참가들에게서 계속됐다. 민요패 소리왓의 문석범 씨가 무반주로 ‘한라산이여’와 ‘강갈치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민요 부르는 ‘송정희와 친구들’이 돌아가며 구성진 소리를 선사하기도 했다. 노래꾼 최상돈의 노래가 메들리로 이어지는가 하면 이번 전시를 기획한 양미경 씨가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고인을 추모하는 것이 살아있는 자들이 잘 살아가기 위한 것이라면, 추모는 즐거워야 한다는 걸 이날 행사는 보여주고 있었다.

▲ A4용지에 출력된 전국 200여명의 작가들의 작품이 벽면 가득 전시돼 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김순남 선생이 '일강정 푸른물아'를 낭독했다. 그는 "이 자리는 인간 노무현이 아닌 그의 가치를 기리는 자리"라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상주 자격으로 이사하러 왔다는 소설가 한림화 선생. 왼쪽 가슴에 노란 리본이 상주 표시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A4 DEMO' 전시작. 임옥상, '민주주의 위기' ⓒ제주의소리

▲ 'A4 DEMO' 전시작. 정용성, '귀천'. ⓒ제주의소리

▲ 'A4 DEMO' 전시작. 방정아, '설치는녀석들'. ⓒ제주의소리

▲ 'A4 DEMO' 전시작. 박흥순, '독도와 촛불' ⓒ제주의소리

▲ 'A4 DEMO' 전시작. 박영균, '촛불소녀' ⓒ제주의소리

▲ 'A4 DEMO' 전시작. 고민석, '수화'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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