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25) 바다가 보호하는 여신의 집- 세화리 갯것할망당

▲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갯것할망당 ⓒ김순이

갯것할망당은 어부들을 전담하는 해신당이다. 정월에는 만선(滿船)을 소망하는 어부들이 오색 깃발이 잔뜩 달린 깃대를 이곳에 가져다 놓을 때도 있다. 이곳에 좌정하고 있는 여신은 ‘들어오는 배 나가는 배 모두가 위하는 어물(魚物)에 대한 영험이 좋은 여신’이다(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2007).

이 당은 원래 평대리 갯마리와 세화리 통항동 어부들이 공동으로 위하던 당이었다. 그러나 포구를 넓히게 되면서 당을 옮겨야 했다. 결국 심방(巫堂)의 조언에 따라 세화리 지경의 정순이빌레로 옮겨지게 되었다. 따라서 자연스레 여신의 명칭도 ‘정순이빌레할마님’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밖에도 갯가에 있다 해서‘갯것할망당’, 위쪽에 생수가 솟는 초(아래아)물통이란 물통이 있어서 ‘초(아래아)물통알당’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갯것할망당은 가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당이 아니다. 물때가 맞아야만 갈 수 있다. 밀물 때면 바닷물이 마치 속인들의 발길로부터 이 당을 보호라도 하듯이 에워싸고 만다. 그래서 할망당은 작은 섬이 된다. 그러나 하루에 두 번, 썰물 때가 되면 하얀 모래밭을 건너 찾아갈 수 있다.

이 당의 주인은 무엇을 좋아할까? 해녀들은 이곳에 갈 때 무엇을 가져갈까? 구정이 되면 해녀와 어부들은 ‘요왕맞이’를 한다. 요왕맞이란 글자 그대로를 풀이하면 ‘용왕(龍王)을 맞이한다’이다. 이를 한발 더 깊이 나가 해석해 보면, ‘바다의 신 용왕님께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라는 뜻이라 할 수 있겠다. 물질도 잘 되게 해 주고 건강도 돌봐달라는 가슴속 소망을 전하는 일이다. 해녀 중에는 한 달에 한 번, 혹은 일 년에 열두 번 요왕맞이를 해야 마음이 놓인다는 사람도 있다.

나의 외할머니도 정초에는 이 당으로 요왕맞이를 갔다. 며칠 전부터 정성들여 제물을 준비했다. 쌀밥 한 그릇, 삼색채소(고사리 미나리 콩나물) 한 보시, 사과 배 한 알씩, 삶은 계란 세 알, 생선구운 것 한 마리, 무명실타래, 지(한지에 쌀을 넣어 둘러싼 것), 감주 한 병, 그리고 양초 두 자루. 제물 중에서도 ‘지’를 만드는 일에는 더욱 정성을 다하였다. 햅쌀을 사다가 소반에 놓고 반으로 짜개지거나 성치 못한 것들은 밀쳐내고 온전한 쌀알로만 골랐다. 돋보기를 쓰고 밤새도록 골라낸 온전한 쌀알만을 한지(韓紙)에 세 줌 덜어 곱게 말아서 싸곤 무명실로 빙빙 돌려 여몄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에 자식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하나하나 할머니 특유의 야학체(夜學體)로 쓰셨다. 할머니는 평생 학교라곤 다녀보지 못했고 야학에서 한글을 배웠다는데 그 글씨체가 멋있어서 난 그걸 야학체라 부른다.

요왕맞이의 마지막 절차인 ‘지드림’은 정성을 다하여 만든 지를 바다의 용왕께 드리는 일이다. 이런 해녀들의 정성으로 해서 바다는 오늘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출렁이고 있는 게 아닐까. / 김순이

*찾아가는 길 : 세화리→세화리 해안도로→세화오일장터 동쪽 2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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