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경제카럼] 대마불사 시대의 마감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제주의소리
지난달 미국 상원은 하원보다 더 강력한 금융규제개혁 법안을 공화당 의원들의 큰 반대 없이 통과시켰다. 앞으로 2주간에 걸쳐 상원 안과 하원 안의 세부 내용을 일치시키는 과정을 거쳐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는 대통령 서명까지 마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과 헝가리로 번지고 있는 연쇄 국가부도 공포도 금융산업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 내부에서는 금융자유화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영국과 원칙을 중시하는 독일의 의견 차이가 크다.

독일에서는 공매(空賣)를 투기 행위로 보아 금지시키겠다고 벼르는데 정작 공매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은 런던이다. 미국이 앞장을 서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이들도 따라오지 않을 수 없다. 규제의 강도가 나라마다 다르면 규제가 약한 나라로 거래를 옮기는 재정(裁定)거래가 발생하는데 이를 막으려면 각국의 규제는 상호 공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알려진 개혁의 골자는 첫째 파생상품 거래를 장외로부터 장내로 가져오기, 둘째 국가의 보호를 받는 예금은행들의 위험자산 운영 금지, 셋째 금융소비자 보호기구의 설치 등이다.

대마불사 시대의 마감

거기에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 더해지고 있다. 법원의 파산절차를 통하지 않고 정부가 직접 부실 은행의 자산을 처분할 수 있는 결정권한(resolution authority)을 부여하는 내용이 미국의 금융규제개혁법안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정부가 채권자들을 상대로 폭 넓은 채무조정을 요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정부는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이 가져온 엄청난 시장혼란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이후의 대형 부실은행을 다룰 때에는 일절 파산절차를 피했다. 그 덕에 은행 예금 이외의 채권자들까지 덩달아 보호되었다. 공적 자금이 그만큼 더 소요되었던 것이다.

단지 큰 은행이라고 해 국가가 채권자들까지 보호해 주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번의 개혁안대로 된다면 파산법에 따른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서 은행이 기존의 채무를 덜어내고 회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G10 국가 중앙은행장들의 은행감독 공조기구인 바젤(Basel) 위원회도 강화된 은행감독 기준을 금년 말까지 확정할 계획이다. 이제까지의 적정 자기자본비율 기준에 더해 유동성 기준을 추가하고 있다. 자금시장의 일시적 마비가 올 때는 현금 흐름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이므로 단기차입을 현격히 줄일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지난주 말 부산 G20 재무장관 모임에서는 은행세(Bank Tax)가 논의되었다. 예금으로는 불충분해 비예금부채를 차입해 규모를 늘리려는 은행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또한 상식을 넘는 액수의 상여금에 고율의 소득세를 매겨서 은행구조조정을 위한 기금의 일부에 충당하자는 것이 그 취지다. 의견 차이로 인해 마무리는 오는 11월의 서울 G20 정상회의로 미루어졌지만 은행세에는 국제자본의 급격한 변동을 억제하기 위한 일종의 거래세(Tobin Tax)의 성격도 가미되어 있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2008년 12월 달러화의 정책금리가 거의 영(零)으로 낮아진 이래 미국 안팎의 대형 은행들은 대단한 호황을 누려왔다. 그러나 당국이 원했던 대출의 증가 또는 대출금리의 인하는 별로 없었다. 정책금리가 5% 포인트 내리는 동안 30년 주택 모기지 금리는 불과 1% 포인트 내렸을 뿐이다.

또한 풍부한 자금으로 2.5% 이상의 금리차가 보장되면서도 가장 안전한 미국 재무성 증권을 매입하거나 자금난으로 문을 닫는 지방은행들을 매수했다. 금융위기를 조장했던 장본인들이 국민의 혈세로 구제를 받고서 다시 쉬운 장사로 큰 이윤을 내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만은 않다.

개혁 늦출 수는 없어

규제는 물론 은행의 수익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대출금리에 전가되면 경기회복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크레디트 스위스 은행의 최근 분석은 자본금을 늘리는 기회비용만으로도 은행의 이익이 37%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또한 2012년까지 1조6000억 달러에 달하는 단기차입을 장기차입금으로 전환해야 한다. 여기에 대형은행에 대해서도 채무조정을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이제까지 채권자들이 누렸던 안전장치는 사라지게 된다. 신용평가사 S&P는 벌써 대형은행들이 발행한 무담보 채권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유럽 발 악재로 인해 더블딥에 대한 우려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에 따라 금융규제 개혁의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혁이 늦어지는 것을 반길 수는 없다. 어차피 개혁은 어려울 때 해야 한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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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내일신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 이 기사는 제주유나이티드FC가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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