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 100] (28) 운명의 기로에 서다 - 종달리 생게남돈지당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생게남돈지당 ⓒ양영자

종달리의 옛이름은 종다리, 종다릿개이다. 또한 동쪽의 끝 마을이라 하여 ‘땅끝’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지금은 ‘종달잇오름’이라고도 하고 ‘지미봉’이라고도 하는 오름의 속칭으로만 남아 있다.

종달잇오름(지미봉) 정상에는 수산진에 소속되었던 봉수가 있어 성산일출봉, 별방진, 독자봉 등과 교신하며 왜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그래서 여인들은 더운 여름날 김을 맬 때 여간해서는 말라 죽지 않는 질긴 쇠비름 풀을 닥닥 두드리면서 ‘성산망에 불 싸라. 지미봉에 불 싸라.’하고 노래하기도 했다.

종달잇오름 기슭에는 소문난 소곰밧이 있었다. 198,000㎡(6만평)에 달하는 제주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소금을 생산하던 곳이다. 염전을 그만 둔 뒤 1969년에 논으로 개답하였으나 지금은 늪지대로 변하고 말았다.

종달 포구 건너에는 소섬이 길게 누워 파도소리에 되새김질을 하고 있고, 오른편으로 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납작 엎드려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아기자기한 마을은 아름다운 경관과 더불어 한 폭의 그림이 되기에 충분하다.

종달 포구는 왕후지지의 맥을 끊으라는 명을 받든 중국의 고종달(호종단)이 첫발을 내디딘 곳으로 유명하다. 고종달은 마을 이름이 자기의 이름과 똑같다는 것에 비위가 상하여 종달리의 물혈을 당장 끊어버리고 떠났다고 한다.

종달 포구 북쪽 바닷가에는 이 모든 역사와 삶을 함께 한 돈지할망, 돈지하르방이 좌정해 있는 생게남돈지당이 있다. 생게남돈지당은 종달 포구에 있는 돌미륵 형상의 당이다. 돌미륵형 신체(神體)인 큰 바위는 언뜻 보면 사람 같기도 하고, 또 언뜻 보면 물개 같기도 하다. 미륵이 당을 품안에 끌어안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당집의 지붕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위 아래로 아담하고 단아한 제단이 마련되어 있고, 너댓 명이 서 있을 정도의 당 마당은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제단의 우측, 바닷가쪽 돌 틈에 흘러내린 촛농만이 당골들이 들락날락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돈지당에는 돈지할망과 돈지하르방이 좌정하여 가는 선(船) 오는 선(船)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배를 부리는 사람들이 주로 다닌다. 정해진 제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생기복덕에 맞는 좋은 날을 받아서 어부와 해녀들이 다닌다. 배가 나갈 때 선왕을 모시기도 하고, 배가 조업을 마치고 내릴 때에 모시기도 한다. 제물은 메 2기와 술, 채소, 과일, 돼지머리 등을 올린다.

신체의 앞가슴 쪽으로 신비하게도 싱싱한 신목(神木)이 자생하고 있다. 신목에 대해서는 기록하는 사람마다 각자 개꽝낭, 까끄레기낭, 빈독낭, 개구럼비낭, 잉끼낭 등 다르게 말하고 있으나 분명한 것은 사철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철 푸르러 ‘생기(生氣)가 있는 나무’여서 생게남이 아닌가 한다.

바위 틈에서 바다의 짠 내음을 먹으면서도 꿋꿋하게 생명을 이어가는 나무를 보며 당골들은 ‘이 나무도 살아가는데 내가 어찌 삶을 포기하리…….’하며 힘든 삶을 곧추세웠을 것이다. 여러 신당 조사보고서에는 ‘새 개의 앞(새개앞)’이 와전되어 ‘생게납’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정확한 어원은 알 길이 없다.

이 신목에는 고사를 지낸 사람들이 지전과 물색을 걸어놓는다. 오래 걸려 있던 지전, 물색은 어부나 다른 사람이 내리겠다고 할 때까지 걸려 있다가 돈지에 가서 사르게 된다. 하지만 최근 한 달여 사이에 지전과 물색은 모두 사라졌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걸어놓기만 하면 누군가 걷어내 버린다고 당골들은 하소연한다. 이러다가는 폐당되지 않을까 염려했더니 포구가 있는 한 당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당골에게서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하는 마음 또한 충분하게 읽힌다.

뱃일의 안전과 오가는 사람들의 안녕을 도모하는 일을 돈지할망, 돈지하르방이 제발 그만두지 마시기를 빌 뿐이다. / 양영자

*찾아가는 길 : 종달리 일출해안로→종달리 해안 전망대 동쪽 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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