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돈 칼럼]지금은 성찰과 고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세상에 나서 존경할 선생님을 하나라도 가지면 그 사람은 복된 사람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잠든 영혼에 불을 지펴 무명의 세상에 눈뜨게 하고, 마음밭을 기름지게 하는 사표가 된 그런 선생님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축복이다. 지금 이 사회에 과연 그런 선생님이 몇이나 있을까.

한 학교운영위원의 전화 제보로 촉발된 교육감 선거 부정이 결국 4명의 후보가 모두 구속되고 당선자가 사퇴하는 미증유의 사태로 귀결되었다. 그들은 모두 30년 이상을 교단에서 잔뼈가 굵은 선생님들이다. 명예와 긍지를 갖고 학생과 학부모들이 우르럴 사표가 돼야 할 그들이 탈법과 불법의 주역이 되고만 현실이 착잡하다.

더군다나 '차떼기' 선거자금 비리로 얼룩진 정치판의 실상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믿을X 하나 없다'는 실망과 충격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지금 제주교육은 총체적인 난국에 빠졌다. 이것은 비단 교육계에 국한될 일이 아닌, 지역사회의 위기다. 지금 겪고 있는 이 위기 상황은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해결하느냐에 따라 향후 제주지역 사회발전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만연된 한국 정치ㆍ사회의 부패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선거에 지연과 혈연, 학연 등 온갖 연고가 동원되고, 산남 사람, 산북 사람 하는 소지역주의하며, 나중에 돌아올 떡고물을 점치며 보험 들고 줄서는 행태, 금품과 향응으로 이뤄지는 매표 행위 등이 꼭 그렇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일반화된 부패구조 위에 이 지역사회 특유의 온정주의가 가세하여 지금과 같은 공직사회와 교직사회의 진흙탕 밭을 일구었다. 따지고 보면 최근의 '위기'는 갑자기 불거진 현상이 아니라,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잠재적 모순이 곪아터진 것에 불과하다.

제주도는 기실 한 집만 건너면 누구나 삼촌과 조카로 통하는 혈연적인 유대가 아직도 뿌리 깊이 남아있는 사회다. 이러한 끈끈한 유대가 간난의 세월 속에 오늘의 제주사회를 지켜왔던 순기능이 있음을 무시할 순 없다.

그러나 또한 친구간에, 선후배간에, 일가친척간에, 사제간에 끈끈하게 뭉친 온정주의가 매사에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을 흩트리고, 좋은 게 좋다는 투의 무사안일함을 배태시켜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자조 섞인 말이 이 지역에 오랫동안 유행어로 회자되고 있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도 선생님이 부탁하는데, 선배가 부탁하는데 인정상 어떻게 거절할 수 있느냐고, 줄줄이 경찰에 소환된 학교운영위원들이 수첩에 이름이 적혀 재수 없이 나만 걸려들었다고 곳곳에서 볼멘 소리를 하는 모양이다.

후보를 도와 부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구속된 현직 교사의 누이동생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모시고 있는 교장 선생님이 부탁을 하는데, 제주도의 정서상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느냐며 제주도의 인정으로 오빠의 포승줄을 풀어달라고 호소한다. 한 가족으로서 느낄 고통은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댓글을 올린 이들도 대개 제주도의 정서로 이해하고 동정하는 분위기다. 어떤 이는 이를 '아름다운 인정'이라 표한다. 나는 이런 글을 읽으면서 가슴속의 의문을 떨칠 수 없다. 선배가, 이웃 사람이, 모시는 상사가 부탁한다고 하여 이것저것 공사(公私)와 정사(正邪)를 가리지 않고, 선뜻 들어주고 도와주는 것이 제주도의 정서고 인정이란 말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 아름다운 인정으로 덮어주고 베풀어야 할 데는 따로 있다.

다른 네티즌은 항변한다. 선생님들만 깨끗해지라고 강요하면 안 된다고, 사회가 진흙탕인데 선생님들만 깨끗해질 수 있느냐고, 기존 정치인들처럼 영악하지 못하고 힘이 없어서 걸려들었다고. 아주 희한한 온정론이다. 이런 말로 지금 누구를 설득할 수 있다고 보는가. 선생님들도 인간인데 왜 욕심이 없겠는가.

그러나 진흙탕 속에서도 연꽃은 피거늘, 사회가 아무리 썩어도 선생님들은 부패한 사회의 정화제가 돼야 하고, 방부제가 돼야 한다고, 선생님들만큼은 이 사회의 마지막 보루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선생님들이 한낱 영악한 정치꾼, 시정잡배와 다를 바 없다면 누가 무얼 믿고 그들에게 우리의 아이들을 맡길 것인가.

전통적 온정주의가 갖는 가장 큰 역기능은 합리성의 결여에 있다.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공론을 모아야 할 중대한 의사 결정 과정에 곧잘 이런 역기능이 발휘되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능력과 자질에 따른 인사는 실종되고 '내 사람' 갖다 앉혀야 안심을 한다.

교육감 비리 의혹에 관한 한 교직사회에 몸담고 있는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에 대해선 전교조도 마찬가지다. 김태혁 교육감 말기에 한 승진 대상 누락자의 인터넷 투서를 계기로 봇물처럼 터져 나온 그 숱한 비리와 의혹은 무엇을 말하나. 8년의 재임 기간 동안 전횡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그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힘이 소진된 말년에 이르러서야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것은 이런저런 연줄과 인정에 끌려 알고도 쉬쉬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혹시나 돌아올 불이익을 생각해 모른척했다는 말이 아닌가. 비합리성에 바탕을 둔 온정주의는 '내부고발자'를 발붙이지 못하게 한다. 빤히 보이는 불의에 눈을 감고 입을 닫는 것은 곧 그 불의에 동참하는 '미필적 고의'에 다름 아니다.

너무 자주 사용해 식상한 표어가 되어버린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은 이번 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냉정하게 현 사태를 직시하는 성찰과 고뇌의 시간이 필요하다. 온정에 휘둘려 사태의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차제에 공직사회와 교직사회에 획기적인 물갈이가 일어나야 한다. 조금이라도 비리에 연루된 인사들은 순수한 열정과 신념으로 무장한 젊은 일꾼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미련 없이 용퇴하라. 뼈를 깎고 껍질이 깨지는 고통을 감내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생명은 잉태하지 못한다. 다함께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고 중심을 잡아 정도를 걸어나갈 일이다.

지금의 난국을 사람도 자연도 다 깨끗한 청정 제주의 이미지를 안팍에 다시 천명하고 각인시키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현돈의 살며 생각하며 designtimesp=1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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