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소통이다 ⑤] , 한국사회를 고발하다

▲ 안혜경 대표 안혜경 대표는 제주에서 갤러리 '아트스페이스ㆍ씨'를 운영한다. 안대표를 만나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장태욱

제주시 노형동에서 갤러리 '아트스페이스·씨'를 운영하는 안혜경 대표의 추천으로 헤르타 뮐러(Herta Müller)의 소설 <저지대>(헤르타 뮐러, 문학동네)를 읽었다.

헤르타 뮐러는 루마니아 내 독일계 소수민족 가정에서 태어난 작가인데, 루마니아 독재 정권에 대항해 글을 쓰다가 1987년 독일로 망명했다. 소설 <저지대>는 나치가 몰락하고 루마니아에 독재정권이 횡포를 부리는 환경 속에서 독일계 소수민족 마을이 겪는 억압과 공포를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묘사한다. 2009년, 노벨재단은 뮐러를 그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했다.

안 대표는 책을 추천하면서 작품도 물론이거니와 작가의 삶에서 진한 감동을 얻었다고 했다. 뮐러가 고발하고자 하는 루마니아 내 독일계 소수민족 마을의 비극은 제주 4·3사건과 한국전쟁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주의를 강요받았던 우리 내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안 대표는 책을 읽는 동안 남한과 북한 중 한 곳을 선택할 것을 강요당했던 송두율 교수를 떠올렸다고도 말했다.

<저지대>를 다 읽고 난 후 안혜경 대표를 만나기 위해 그가 운영하는 갤러리를 방문했다. 안 대표는 이 갤러리의 설립자이자 운영자이며 유일한 일꾼이다. 안 대표와 향기 은은한 녹차를 나눠 마시며 작가와 소설 <저지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를 추천하셨습니다. 작가는 20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지요. (이 책을) 추천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작가의 삶과 작품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강하다고 봅니다.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슈바벤 마을은 루마니아에 있는 독일계 주민들이 모여 사는 곳인데요, 소설 <저지대>의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이 마을 가난한 주민들에게 반복되는 거짓과 무관심, 그리고 음주는 국가가 주도하는 제도화된 폭력 때문이에요. 특히 슈바벤 마을의 경우는, 독일인과 루마니아인의 경계 속에서 이중 삼중의 고통을 당합니다. 제주 4·3사건과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계인으로 삶을 강요당했던 우리 이전 세대들의 고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봤어요."

- 작가의 삶이 주는 감동이 컸다고 했습니다. 작가에 대해 설명 좀 해주실까요?

"작가는 루마니아 독재 치하 속 독일계 소수민족 마을에서 자랐다고 했습니다. 경계인으로서 받는 상처와 고통을 일찍부터 내면화한 걸로 보입니다. 작가는 노벨재단과의 인터뷰에서 글쓰기는 독재시절 뮐러 자신이 자신일 수 있게 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지속적으로 자신을 사로잡는 것에 대해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제주 4·3사건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작품의 소재로 거론할 때마다 '그만 좀 해라'라고 빈정거리는 목소리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검열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는 물론이거니와 독일로 망명을 간 이후에도 끊임없이 루마니아 독재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작가가 '문학은 중력이 있는 곳을 향하는 속성이 있다'고 했던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 뮐러의 작품을 읽으면서 송두율 교수를 떠올리게 되었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국가의 제도화된 폭력과 개인의 자유가 충돌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송두율 교수가 귀국하고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전 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검찰이 송두율 교수는 북한의 김철수와 동일인이라고 발표했을 때, 수구적인 언론들을 물론이거니와 진보진영에 계신 분들도 송 교수를 향해 윽박을 질러댔습니다. 자신들이 속한 진영이 피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나온 행동일지 모르지만, 전 당시 상황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검열의 대상이자 주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개인의 신념을 자유롭게 말하면 모두가 그걸 불편하게 여기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장애인들, 성소수자들이 매일 보이지 않는 폭력에 시달리며 자신의 신념이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사회라고 생각했어요. 뮐러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 때문에 어느 곳에 소속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 <저지대>를 읽으면서 전 줄곧 이상(李箱)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작가가 은유가 강한 문장을 바둑의 포석처럼 나열하면 독자가 이를 해체해서 줄거리를 잡아야하는 식이었어요. 소설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스토리도 없었습니다.

"소설 <저지대>에는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아요. 그런데 작품집 맨 처음에 나오는 <조사>라는 작품에는 이 단편집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조사>에서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웃들이 술에 취한 채 죽은 아버지에 대해 한마디씩 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치 친위대였던 아버지가 25명을 찔러 죽여 훈장을 받은 일, 무밭에서 러시아 여자를 겁탈하고 여성의 성기에 무를 찔러 넣은 일 등이 드러납니다.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를 솔직하게 드러낸 셈이죠.

반면 소설 <저지대>는 인간 내면을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구체적인 스토리도 없어요. 작품을 읽다 보면 내가 시를 읽고 있는지, 소설을 읽고 있는지 헷갈릴 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고 있는지 글을 읽고 있는지 혼동될 지경입니다. 생각이 흐르는 대로 주변의 분위기를 시각화해서 전달하고 있는데요, 저희처럼 미술을 하는 사람들은 사진 한 장을 보면서도 그 안에서 상징을 읽어내는 데 익숙합니다. <저지대>를 다 읽고 나자 감동이 진하게 남기는 했는데 스토리가 없기 때문에 또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소설에서 마음에 와 닿는 한 대목만 소개해 주실까요?

"사람들이 오리를 대하는 방식을 소재로 마을 주민들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는 부분인데요. 잠시 읽어볼게요.

'여름이면 여자들은 오리 배에서 하얀 솜털을 뜯는다. 털을 뜯긴 오리들은 여름 내내 풀숲을 뒤뚱뒤뚱 걸어 다니고, 날개를 질질 끌며 어깨처럼 으쓱한다. 벌레가 지나가며 남긴 가느다란 홈을 쪼르르 쫒아가고, 폴짝 거리는 개구리를 아작아작 씹어 먹는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도살당한다.

목 아래쪽에서 엄지손가락 길이만큼 털을 뜯어낸다. 그러면 주정맥이 드러나는데, 오리가 겁에 질리면 더 푸르고 더 굵게 튀어나온다. 실내화를 신은 할머니가 오리의 양 날개를 밟고 선다. 오리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칼이 혈관의 가장 굵은 부위에 박힌다···. (중략)

실내화를 신은 할머니가 오리의 날개를 밟고 섰다. 허리를 구부린 채, 눈으로 파리 한 마리를 쫒는다. 한 손으로 등을 받치면서 허리가 아프다고 하소연한다.'(본문 52-53쪽)

이 책은 죽은 오리를 밟고선 할머니가 파리를 쫓는다거나, 자신의 허리가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장면에서 연민이 메말라 버린 사람들을 절망적인 시선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 마을 주민들은 모두 폭력의 피해자이면서도 자신들로 인해 죽어가는 생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거죠. 작가가 자신이 어린 시절 살았던 마을의 분위기는 물론이고,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인간성이 파괴되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 저는 마지막 장면이 좀 인상적이었습니다. '웅덩이의 물이 줄어들면, 개구리의 등이 마른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개구리는 저지대의 환경에 적합한 동물이기 때문에 주민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은 '자신들은 독일인라고 자랑하면서 자신들의 개구리에 대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주민들이 공동체의 본질적 이슈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면서도 '국가'나 '민족'과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해서는 거품을 무는 상황이 우리와 비슷하다고 봤습니다.

"맞아요. 인권이나 행복은 공동체에 속한 자들이 협력해서 잘 가꿔야하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전쟁과 독재를 경험한 주민들은 그런 작고도 소중한 가치를 돌볼 여유가 없었던 겁니다. 거대역사가 휩쓸고 지나간 상황에서 서로 검열하고 서로 억압하는 것이 구조화되고 있어요.

그런데 뮐러는 이 작품을 쓰고 난 후 자신의 고향에서 배척을 당했다고 합니다. 뮐러로 말미암아 루마니아 정부로부터 핍박을 더 받게 될까봐 두려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실제로 뮐러가 마을 주민들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자신들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구조라는 것을 반증해주는 일이라고 봅니다."

▲ 뮐러의 작품들 오른쪽에 있는 것이 소설집 ≪저지대≫인데, 19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 장태욱

- 덕분에 좋은 작품 소개받고 잘 읽었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책 소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요즘 여성영화제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인터뷰 요청하셔서 책을 한 번 더 읽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도 감동을 한 번 더 맛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안 대표는 갤러리를 운영하는 일 말고도, 제주도의 대표적 여성단체인 제주여민회 이사도 맡고 있다. 예술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예술을 통해 사회에 이슈를 던지고 싶다고 했다. 안 대표에게 독서란 사회와 소통하기 전에 먼저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주요한 방법이라고 했다.   

소설집 ≪저지대≫
 
소설집 ≪저지대≫는 헤르타 뮐러의 데뷔작으로, 1982년 루마니아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출판당시 4년간의 엄격한 검열을 거치는 동안 <그 당시 5월에는>, <의견>, <잉계>, <불치만 씨> 등은 누락되었고, 나머지 열다섯 편도 대폭적인 삭제와 수정을 거치고 나서야 책이 출간될 수 있었다. 누락되었던 네 편의 단편과 삭제와 수정을 거쳤던 작품들이 모두 원래의 모습을 회복한 것은 뮐러가 2009년 노벨문학상을 계기로 새롭게 개정판을 만들면서다.

표제작 <저지대>는 루마니아 공산독재 치하에서 황량한 소수 독일인들이 모여 사는 슈바벤 마을의 암울한 상황을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작품의 화자인 소녀는 암울하고 숨 막히는 현실에서 도피하여, 자연이나 동식물을 소재로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세계에 빠져든다. 작가가 함축적인 언어들을 엄선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작품은 시와 소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한국어 출판 : 문학동네
번역 : 김인순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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