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29) 성산리 - 성산일출봉 등경돌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성산일출봉의 전경. 점선은 등경돌 있는 부분 ⓒ김은희

제주도 동쪽 끝에 위치한 성산일출봉은 천연기념물 420호로 지정되었으며, 높이가 182m에, 분화구의 지름이 약400m, 넓이 2.64㎢에 이르는 화산이다.

2007년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내외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성산일출봉 안내방송은 일본어, 중국어, 영어로 흘러나오고 있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부분 외국인들이다.

성산일출봉에는 제주도 창조신화가 전해져 온다. 모양새의 웅장함이나 아름다움에 걸맞게 이야기도 많다. 특히 성산일출봉의 등경돌은 설문대할망이 길쌈을 할 때 접시불(또는 솜불)을 켰던 등잔으로 높이 솟은 바위 위에 다시 큰 바위를 얹어 놓은 기암인데, 할머니가 등잔이 얕으므로 바위 하나를 더 올려놓은 것이라는 바위다.

등경돌은 성산일출봉으로 가는 길 1/3 지점에 위치해 있다. 실제로 큰 바위 위에 작은 바위가 얹혀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성산리가 아주 아름답다.

제주를 탄생시킨 탄생의 신이자 제주사람들을 지켜주는 여신인 설문대할망은 옥황상제의 셋째딸로, 제주가 생성될 때 태어났다. 키는 한라산을 굽어보고 아무리 깊은 태평양도 무릎까지밖에 물이 닿지 않았다. 잠 잘 때는 한라산을 베개 삼고 한쪽 다리는 관탈섬에 걸쳤고, 다른 쪽 다리는 지귀섬에 놓아 잠을 잤다. 앉았을 때 한쪽 발은 한라산을 딛고 한 쪽 발은 산방산을 디디고 있고, 빨래 할 때는 관탈섬에 빨래 거리를 걸쳐 놓고 소섬을 팡돌로 삼아 한라산 꼭대기를 엉덩이로 깔아 앉아 바닷물에 발로 문질러 밟았다. 성산일출봉 기암괴석에 등잔을 얹어 놓고 바늘질을 하였다.

설문대할망은 오백 아들을 낳았다. 흉년이 든 어느 해 오백 형제는 돌아와서 죽을 먹다 뼈다귀를 발견하고는 어머니가 죽은 걸 눈치챈다. 막내는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으로 달려가 한없이 울다가 바위가 되었고, 나머지 형제들은 설문대할망이 죽은 자리에 둘러서서 통탄하며 울다 돌이 되었다.

서귀포시 외돌개는 막내아들이 설문대할망을 지키려 바다로 나가 장군 모습으로 서 있으며 외적의 침입을 막았다. 차귀섬 앞 돌도 어머니를 지켰다.

신은 죽지 않으나 설문대할망은 죽는다. 바다, 산, 섬, 바위를 창조하며 세상을 만들어 가지만 그가 만든 제주 땅에서 자식을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이든, 아니면 물장오리에 빠져 죽든, 나라를 창조하지 못해 억울해 죽든 결국은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맞는다.

설문대할망에 대한 신화는 제주도 곳곳에 서려 있다. 거대 여신으로 대지를 들어 제주도의 한라산과 오름들을 만들고, 섬들을 만들었지만 설문대할망은 절대권력의 신이 아니라 제주사람들과 소통하며 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김은희

* 찾아가는 길 : 성산일출봉 매표소→200m 지점→안내판 ‘별장바위 전설’세워진 곳

<본 연재글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엄격히 금지합니다. 본 연재글의 저작권은 '제주발전연구원'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