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호 칼럼] 개혁과 답습의 양안에 걸린 외줄다리 건너기

한국 대학 개혁의 산실(産室)이며 표본인  KAIST의 서남표 총장을 퇴진시키려는 수구세력의 찻잔 속 반란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유기적인 사회 구조를 나의 작은 영육의 범위 내에서 사유를 해본다.

흔히 육신은 습속이기에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으로 안주하여 외부의 자극과 변화를 거부하며 습관적인 답습으로 안일만을 꾀한다. 정신이 육신을 통제하고 유도하지 못할 경우 나태와 무력감의 나락으로 한없이 빠져들어 창조의 의지는 뒷전으로 물러앉게 된다. 건전하고 강건한 생활인이라고 함은  항상 정신이 깨어있어 육신의 현혹에 흔들리지 않고 극기하는 심지가 굳건한 생명체일 때이다. 이러한 능동적이고 자율적 쇄신에 의한 변화는 개혁이지만, 그럭저럭 세상사에 타협하며 뛰어봐야 벼룩이라는 냉소의 체념은 답습으로 고착화된다.  

'변화'나 '개혁'은 나의 일이 아닐 때는 강 건너 불보듯하며, 당연시 하다가 막상 자기가 대상이 되면 질곡에 채워진 것처럼 별로 달갑지 않게 여겨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한다. 낡은 생각과 가치와 관행을 버리고 새로운 사고력을 창출하는 창조적 변화의 과정에서 희생과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변화와 개혁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요구되는, 종착역 없이 가야 하는 여정으로 인류 역사가 진보하는데 있어서 숙명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가야 되는 길이다.

1800년대 증기선의 취항으로 기존의 자연 바람을 이용한 범선은 기술혁신을 이용한 증기선과 경쟁이 될 수 없었는데도, 과거의 영화에 도취하여 안이하고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다가 세계적 범선인 '토마스 로슨호'가 폭풍에 전복되어 승객 대부분이 사상하는 불상사를 맞자 세상사에서 퇴장하는 계기가 됐다. 변화의 흐름을 잘못 읽고 거부하며 기존 틀에 집착한 나머지 사멸의 길을 걸은 것이다.

특히 현세처럼 사회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바뀌고 치열한 경쟁의 전선에서 승부는 기본 질서와 관행과의 과감한 결별과 함께 큰 변화와 개혁을 추구해야 뜻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사회로, 폐쇄경제에서 개방경제로 전환되면서 기존의 가치·제도·관행이 더 이상 척도로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한국은 외국 문화를 포용하는 정도가 53개 조사대상국 중 49위에 그칠 정도로 단일 민족임을 자부하는 소아적 병폐로 인하여, 외국의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무척 인색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국국민 중 미국은 10%, 호주는 22%, 캐나다는 18%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사회 구성원인 데 비해 한국은 고작 1.8%에 불과하다.

근세의 새로운 조류를 그리스나 일본은 자국을 개방해 외국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번영의 기틀을 마련한 반면, 조선시대 우리는 옹졸한 쇄국이라는 바람막이 병풍을 둘러쳐 있음으로써 국제사회의 고립과 함께 쇠퇴로 고난의 역사를 경험한 바 있다. 특히 미국은 개방된 이민정책으로 국적을 초월한 수많은 젊은 학생과 연구원들이 포진하고 있어 이것이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면 우리 제주사회는 어떠한가.

세계화의 확장으로 엄청난 개방의 물결과 더불어 가혹한 경쟁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을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아직까지도 과거 도서 폐쇄적 사회의 연고(緣故)향수에 빠져있어 모든 현안이 배타적이고 근시안적 자기안위라는 가치관 속에 갇혀 있다.  세계화의 격랑에 고립무원의 낙도에서 비젼을 제시하고 복지의 모범이 되는 이상향을 구현하는 보다 윤택하고 행복한 제주의 창조, 특히 새로운 도정이 야심차게 내세운 수출 1조원 달성을 위해서는 우리중심의 순혈주의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함께 다른 종족과 문화를 포용하고 개방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민 연세대 교수는 우리나라가 다른 개발도상국들보다 먼저 수출지향적 발전전략의 채택, 개방과 자유화 그리고 기술개발능력의 강조 속에 시장경제에 일찍 노출시킴으로써 국가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이제 제주사회에서 서남표의 개혁을 뛰어넘는 야심찬 포부로 제주를 열린사회로의 개혁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아와 집착을 버리는 대승적 기질로 활화산의 용암을 토해내던 한라의 용맹정진을 우리의 마음에 각오를 다지면, 선조가 점지해준 '한라'의 뜻대로 무한한 은하수를 손안에 쥘 수 있을 것이다.

개혁은 스스로 자기 몸을 태우지 않고는 빛을 발할 수가 없으며, 껍질을 깨고 허물을 벗는 아픔 없이는 성장을 할 수가 없다. /고운호  전 한국은행 본부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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