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거시기'로 휘둘린 제주교육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조선시대 파격의 방랑시인으로 알려졌던 김삿갓(金炳淵.1807-1863)의 시다.

"서당을 일찍 알아 둘러보았더니
방안에는 존귀한 인물들이 있네
생도는 모두 열 명 정도인데
선생은 아는 체도 하지 않는구나"

뜻풀이로는 그저 그런 정도의 평범한 내용이다.
그러나 음(音)으로 새겨들었을 때는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서당내조지 방중개존물
생도제미십 선생내불알".

이건 숫제 악담이다. 그것도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지독한 욕설이나 다름없다. 이를 오늘의 교육현실에 반죽한다면 학교와 교실과 학생과 선생모두가 '부끄러운 아랫도리 거시기'로 여지없이 휘둘린 꼴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제주도 교육 현실은 어떤가.
'거시기'로 뭉개지는 이같은 참지 못할 욕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결코 여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오히려 더 아프고 더 쓰라린 채찍을 기다려야 한다.

교육자 탈쓰고 반교육 실천

공교육은 이미 무너졌다고 한다. 교실이 붕괴됐다는 소리도 오래다. "교실은 난장판, 학생은 놀자 판, 선생은 죽을 판, 교감은 눈치 판, 교장은 미칠 판". 오죽해야 난데없는 '판소리'가 목이 쉬게 메아리치고 있겠는가.

여기에다 최근에는 "먹자 판"까지 범벅이 되어 교직에 역한 악취를 진동시키고 있다. '교직 뇌물 인사 비리' '교육감 금품선거 파문'. 이는 교육의 영역일수가 없다.

뇌물을 주고 받으며 교직 인사를 더럽혔거나 돈으로 교육감 선거에서 한 표를 사고 팔았다면 그것은 동전을 넣어야 물건이 나오는 '자판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자판기 수준의 뒤 구린 인사가 어떻게 '백년의 계획'을 말하는 교육의 대열에 발맞춰 나갈 수가 있을 것인가. 그들은 이미 교육자가 아니다. '교육의 교'자도 말할 자격이 없다.

교육자의 탈을 쓰고 제주교육을 더러운 시궁창으로 밀어넣고 늑대의 심정으로 영혼이 맑은 아이들의 마음을 더럽히려 했던 그들이 수십년 동안 제주교육의 지도자 인양 행세해 왔다면 이는 참교육에 대한 반역일 수밖에 없다. 제주교육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오고 있는 수많은 선생님들에 대한 배신행위다.

이제는 참스승 찾을 때

교육은 사람이 타고난 가치에 윤기를 더해주는 작업이다.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데 있다.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고 다양한 삶의 가치가 긍정되는 아름다운 사회는 이같은 교육의 힘에서 비롯된다.

올곧게 일어서는 교육의 힘. 그렇다. 그것은 지식 전달의 프로그램만으로는 이뤄 낼수가 없다. 도덕과 지혜의 기반 위에서 착한 사람, 결백한 사람, 정의로운 사람을 만드는 참 스승의 길에 일궈내야 하는 작업이다.

스승은 지식전달자로의 선생만이 아니고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인격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지금 제주교육은 만신창이가 됐다. 이해 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교직사회 뿐만이 아니다. 도민사회 내부가 그 어느 때 보다도 분열되고 황폐해 졌다.

그런데도 뭔가 말해야 할 지식인들의 올곧은 사회적 발언은 들리지 않는다. 비겁하게 침묵의 그늘에 숨어 눈치나 살피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사람이 참 스승이다. 반역의 시대를 추슬러 제주교육을 새롭게 업고 갈 스승을 찾아야 할 때다.

찾으면 있다. 권력의 양지만을 좇아 한자리 걸쳐 기회를 노리는 기회주의자들은 필요가 없다. 차라리 기득권 세력에 밀려 말없이 뒷전에서 묵묵히 참교육을 실천해온 이들이 필요하다. 그들이 평교사 그룹이면 어떤가.

제주교육이 '거시기'같은 욕을 듣지 않으려면 혁명적 발상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위기를 기회로 만들수가 있다.

<김덕남의 대기자 칼럼>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