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이 김홍구, 오름속으로] 방일이오름 - 눈오름 - 밝은오름

장마비가 퍼붓더니 잠시 추춤거린다.  이 새를 놓칠세라 오름으로 향한다.  제주시 근처에 있는 방일이오름과 눈오름, 그리고 밝은오름이다.  월산정수장  남쪽에 위치한  방일이오름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한림읍에 있는 방주오름처럼 오름이 거의 사라져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오름이다.  오름의 동쪽 기슭은 도로확장으로 파여나가 석축으로 쌓은 것이 꼭 아픈사람이 붕대를  감고 있는 격이다.  남쪽과 북쪽 기슭도  파이고 되메워져 서쪽에서 바라봐야  간신히 오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얼마 안있어  이 오름도 이름만 남기고 없어질 운명인 것이다.

▲ 방일이오름 ⓒ김홍구

옛날 부근에 있는 마을에서 아침해가 맨 먼저 비쳐오는 이곳에 올라 해맞이를 했다하여 해맞이동산이라  부르던 것이 한자로 표기되면서 방일이오름으로 불리우게 됐다.  방일이오름은  표고 120m,  비고  20m이며  원추형오름이다.  한쪽이 잘려나간  방일이오름은 산탈이 가득 했다.   어릴적  할망산에 가면  빌레에  산탈이 가득했었다. 손에 한웅큼 산탈을 모아 입에 털어 넣어 먹던 생각이 떠올라  그대로 해본다.  비가  온뒤라  맛은 싱거웠지만  지금은 주변에서 많이 사라지고 있는 추억의 어릴적  먹거리다.   얼마남지 않은 오름정상에는 소낭들이 가득차 있다.  아직은 "살아 있다"라고 외치는 듯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기세가 애처롭게 느껴진다.  정상에서는 남짓은오름과 괭이오름, 상여오름이 나란히 보인다.

▲ 산탈 ⓒ김홍구

▲ 남짓은오름-괭이오름-상여오름 ⓒ김홍구

▲ 방일이오름 정상 ⓒ김홍구

방일이오름을 돌아가며 파헤쳐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제주의 길은  다른 곳과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오름을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오름의 아름다운  곡선을 살려  운치있고 부드러운  길을  만들 수는  없을까.  

▲ 방일이오름의 수난 ⓒ김홍구

▲ 방일이오름의 수난 ⓒ김홍구

▲ 방일이오름의 수난 ⓒ김홍구

▲ 방일이오름의 수난 ⓒ김홍구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방일이오름의  또하나는   제주역사 4.3 이다.  이 시기에 많은 것이 사라졌다.  지금  시점에서 누구를 탓할 것은 아니지만 역사의 의미와 교훈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잃어버린 마을 <드르구릉>, 노형동 웃드르 마을이었던 드르구릉에는 약300년전에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드르구릉의 위치는 지금 한라대학 서쪽에 있다.  드르(들판)에 큰 구릉(연못)이 있었다고 하여 붙혀진 마을 이름인데 4.3의 소용돌이속에  1948년 11월 19일  16가호 80여명의 주민들 터전인 마을 전체가 불에 타 없어져 지금은  빈터로만 남아 있다.   이때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호리, 도두리 등 해안마을로 소개되어 모진 목숨을 이어 갔으나 그곳에서 또다시 집단학살을 지켜본 노형주민들은 노형마을 인근의 오름이나 하천등에서 도피생활을 하다가 점점 깊숙한 곳 아흔아홉골등에서 피신생활을 하게 된다. 

이외에도 노형동에는 함박이굴, 방일리, 개진이, 괭이술, 물옥이, 벳밭이라는 마을도 사라져 역사의 뒤켠으로 물러서 있다.  마을이 사라져 버린 것에 지금은 슬퍼하거나 괴로워하기보다 분명하고 정확한 기록을 보전하여 잊지 말아야하는 것이 현세에 남겨진 사람들이 할 몫이다.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잘 보여주는 방일이오름이다.

▲ 방일이오름 ⓒ김홍구

오름의 서쪽에는 조그마한 과수원이 있다.   조그마한 귤이 빗속에 애처롭게 매달려 있다.  주변에는 빨간 석류꽃이 이쁘게 피어 있고   살구나무엔 살구가 탐스럽게 달려 있다.  근처 밭에는  부부가  참외, 오이, 호박, 고추를  가꾸고 있다.   자식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라며 하는데 방일이오름에 관하여 묻자  곧 없어질 것 같다고 하면서  다 파놓고  메워버리는데 남아나겠느냐고 한다. 

▲ 석류꽃 ⓒ김홍구

▲ 살구 ⓒ김홍구

▲ 참외꽃 ⓒ김홍구

방일이오름 남서쪽에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지금은 사용을 하지  않아 이끼만  가득하다.  세월의 시간이 흘러 가는 곳,  사라져 가는 것에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일이오름이  애처롭기만 하다.
                                                  

▲ 연못 ⓒ김홍구

발길을 돌려 눈오름으로 향한다.  누운오름 또는 눈오름으로 표기하는 오름이 몇군데 있다. 제주시 해안동에 눈오름은 남북으로 길쭉하게 누워있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이며  표고 203.5m, 비고 54m 이다.   남쪽에서 오르는 길은 고운 잔디로 덮혀 있다.  걷기에도 편하고  포근하게 보인다.  눈오름 분화구로 내려가자 미국자리공 꽃이 많이 피어 있다.   이 식물은 뿌리와 줄기에 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성이 강하여 소량을 먹어도 심한 구토와 설사를 동반한다.  이 식물도 번식력이 좋아  개민들레가 지난 후  이시기에  많이 보인다.

▲ 눈오름 분화구 ⓒ김홍구

▲ 눈오름 남쪽 길 ⓒ김홍구

▲ 미국자리공 꽃 ⓒ김홍구

눈오름정상에서 남짓은오름과 괭이오름, 상여오름이 보인다.   조금전에 올랐던 방일이오름과 저멀리 도를오름이 노형동 신시가지와 함께 가라비 속에 어렴풋이 보인다.  남쪽으로 조금 오면 미리내공원 너머로 거문오름도 조망된다.  미리내공원은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쓰레기를  매립하여  만든 곳으로 이 일대를 체육및  야외공연장등 을 조성하여 사용하고 있다.   날씨가 좋으면 한라산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아름다운 곳이다.  내려오는 길에 고사리와 하고초가 어울려 피어 있고  산탈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 남짓은오름-괭이오름-상여오름 ⓒ김홍구

▲ 방일이오름과 도들오름 ⓒ김홍구

▲ 미리내축구장과 거문오름 ⓒ김홍구

 삶이란 죽음으로 가는 여행이다.   사람마다 길고 짧은 여행이 있겠지만  그 여행에서 느끼는 것이 각자의 인생이다.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밝은오름은 <해안공원묘지> 자체가 오름이다.   여기에 오면 베트남 틱낫한 승려가 쓴  "삶과 죽음" 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 여러 생을  통하여 / 삶과 죽음에 있어서 /  나고 죽고 /  나고 죽는다 / 살고 죽는다는  생각이 / 일어나는 순간 / 삶과 죽음이 /  거기에 있다 /  살고 죽는다는 생각이 / 죽는 순간 / 참된 삶이 태어난다 >  베트남 승려인 그는  불교사상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면서 " 모든 불교는 삶에 참여한다" 는 참여불교 운동을  주창하고 민중의 고통을 덜어 주는 실천적 사회운동을 펼친 승려이다.

▲ 밝은오름 - 해안공원묘지 ⓒ김홍구

밝은오름은 표고 337m, 비고 37m 이다.   오름의 모양새가 보름달같이 밝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인데 같은 이름을 가진 오름이  5군데나 된다.   이곳에 오르면  사방이 모두 묏자리다.  지금이야 묏자리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좋은 묏자리를 찾는 것은 후손들의 각별한 정성이었다.

▲ 밝은오름 정상의 묘지 ⓒ김홍구

하늘이 다시 어두워진다.  곧 비가 다시 내릴  모양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아주 좋다.  밤에 오면 제주시를 바라보는 야경이 좋다.  무서움을 덜 타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야경을 보러 와볼만도 하다.  남짓은오름과 괭이오름, 상여오름이 검게 보이고 저멀리엔 원당오름도 보인다.  바닷가쪽으로는 도들오름이 희미하게 보이고  가까이에 있는 거문오름과 노리손이오름이 뿌옇다.  그곳에는 비가 오는 모양이다. 

▲ 남짓은오름-괭이오름-상여오름과 원당오름 ⓒ김홍구

▲ 거문오름과 노리손이오름 ⓒ김홍구

밝은오름 하늘에도 다시 장마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서둘러 내려가야겠다.  인생의 여정이 끝나는  이곳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편안한 마음이 깃들었으면 한다.  밝은오름은 오름몽생이에게 삶의 중요한 가치를 되새겨준 오름으로 남을 것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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