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들(59)

   
제겐 보기만 하면 가슴 저며오는 꽃이 하나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까 생각하다가도 그들의 삶이 어쩌면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과 그리도 닮아있을까 생각하면 슬픔이 밀려오는 그런 꽃입니다. 이 꽃은 아무 곳에서나 피는 꽃이 아니라 제주도에서만 피어나는 꽃이요, 제주도에서도 동부지역 중산간이나 오름에서 만날 수 있는 아주 귀한 꽃입니다.

   
그 꽃의 이름은 '피뿌리풀'입니다.
몇 년 전 고사리를 꺾으러 갔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에는 너무 예쁘기만 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고, 그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피뿌리풀'이라는 이름이 붙은 내력은 막 피어나는 꽃의 색깔이 마치 핏빛처럼 선명하고, 뿌리 역시도 붉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꽃이며 뿌리까지 붉은 피뿌리풀의 자생지는 제주도의 동부지역, 중산간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곳, 제주의 동쪽은 예나 지금이나 제주도에서도 가장 소외된 곳입니다. 그렇게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땅도 척박하고, 바다도 수심이 낮아 어족이 풍부하지 못합니다. 자연스럽게 다른 지역보다 생활이 어려웠을 것이고, 생활이 어렵다 보니 하루 세끼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살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 가난은 대물림으로 내려오고 어쩌면 다른 곳에 비해 저주받은 땅이라고 할 정도로 아픈 삶들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곳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이 피어있는 곳은 1948년 4.3항쟁 당시에 사라져버린 마을이 있는 곳이니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피가 그 뿌리며 꽃에 송글송글 맺혀 있는 듯 합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슬픈 꽃, 그러나 이 꽃이 필 무렵이면 나는 그들을 만나러 갑니다.
마침 고사리철에 피어나기 때문에 고사리도 꺾을 겸 그를 만나러 가고, 고사리철이 지난 후에도 한 동안 피어있기 때문에 풀이 더 우거지기 전에 그들을 만나러 갑니다. 그러나 매년 그 개체수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코앞까지 포크레인이 밀고 들어 와 그들의 삶의 터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야생화를 좋아하시는 서울아줌마들이 오셔서는 꽃구경을 시켜달랍니다. 얼마나 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가 보자 생각하고 오름과 한라산 자락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꽃만 보면 그저 행복해 하고 그들을 소유하려는 욕심이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물론, 제주도에서 야생화를 가지고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엄포도 한 몫 했는지 모르겠지요. 마지막 날 나는 서울아줌마들에게 그 꽃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고사리나 꺾어 가시라는 말에 좋아라 따라 나선 분들에게 피뿌리풀을 보여주니 실물로 처음 본다며 기뻐합니다.

   
"이 꽃이 제주 민중의 한이 맺힌 꽃이라더군요."하시며 한 분이 4.3이야기를 하십니다.
"어? 그 이야기는 제가 생각해 낸 이야긴데? 제 책을 보셨어요?"했더니 정말 그렇다고 하십니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저도 확인을 해봐야 알겠지만 피뿌리풀을 보면서 제주민중들의 고단했던 삶, 제주의 역사를 떠올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들에 핀 작은 꽃들, 그 안에는 그들의 삶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살아온 이들의 삶이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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