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태평양 평화소공원' 7일 완공하는 미국의 예술가·건축가
7개국가 29명 대학생 참가..."아름다움이 제주 지킬것"

▲ 대정읍 상모리 알뜨르 비행장 인근 '평화소공원'. 영등할망을 형상화한 '돌할망'을 한가운데 두고 파도가 소용돌이 치는 모습을 만들고 있다. 학생들의 아이디어였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청년들의 팔과 다리가 땡볕에 말라붙은 소금으로 하얀빛을 내뿜고 있었다.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멕시코 등 7개국 29명의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제주에 평화공원을 짓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참여한 발레리 세텐코(35)는 “Beauty save peace. (아름다움이 세계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다. “군대가 커져가는 것 못지않게 평화공원의 벽돌을 쌓아가며 평화의 균형을 맞춰가겠다”고 말했다.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평화공원의 시작은 소련이 무너졌던 1994년이다. 미국 샌디에고와 소련 블라디보스톡, 두 도시가 자매결연을 맺으며 시작됐다. 냉전이 끝나는 시대의 축소판적인 행사였다.

해군기지가 들어선 두 도시의 자매결연을 기이하게 여겼던 샌디에고의 예술가 제임스 허벨(James Hubbell,80). 그는 ‘평화공원’을 짓기로 결심한다. 냉전시대가 끝나도록 전쟁기지로 넘치는 세상에 대한 냉소였다. ‘다시는 서로에게 폭탄을 떨어뜨리지 못하게 해야지...’

알뜨르 땅에도 다시는 폭탄이 떨어지지 않길 바라며 ‘평화공원’을 짓고 있다. 허벨이 블라디보스톡에 첫 평화공원을 만든지 17년, 세계에서 여섯 번째다.

제주 알뜨르 땅 안에 ‘평화 DNA’가 있다

평화공원이 들어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미국 샌디에고, 중국 옌타이, 멕시코 티주아나, 필리핀 푸에르토 프린세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비슷한 역사적 배경에서 갈등과 아픔을 경험한 곳이다. 알뜨르 비행장의 아픔이 이들을 불러 왔다.

▲ 왼쪽부터 '환태평양 평화소공원' 제주지역 파트너이자 주관단체인 제주국제협의회 회장인 고성준 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평화소공원' 주창자인 예술가 제임스 허벨(James Hubbell), 건축가 카일 버그만(Kyle Bergman).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허벨은 “여섯 번째 대상지를 찾다가 한중일 세 나라, 특히 서울-베이징-도쿄의 중심에 자리를 잡은 있는 제주가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한중일 세나라가 교류한다면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했다.

허벨의 아이디어는 현재 미국 샌디에고에 본부를 둔 비영리단체 ‘퍼시픽 림 파크 재단’이 국제적 프로젝트인 ‘환태평양 평화소공원 조성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갈등과 아픔이 있었던 태평양 연안 41개국에 ‘평화공원’을 짓겠다고 한다.

‘평화의 섬’인 제주를 찾은 것은 자연스러웠다. 허벨은 “제주가 우리를 선택했다”고 말할 정도. 건축가로 참여하고 있는 카일은 “힘든 역사를 지녔지만 여기에 평화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주의 DNA 속에 평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 100년을 일제와 한국군의 전쟁기지로 쓰인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의 알뜨르 비행장의 아린 역사를 위안하는 역할도 있다.

“친구의 나라, 공격할 수 있겠어요?”

평화공원을 짓는 데는 태평양 연악 국가의 대학생들도 함께 한다. 친구의 나라를 공격하진 못하리란 것이 ‘꼼수’라면 꼼수다. 태평양 연안의 대학생들이 디자인부터 돌쌓기, 바닥 고르기까지 힘을 모은다.

▲ 태평양 연안의 7개 국가 28명의 학생들이 공원을 만들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올해는 중국(4), 멕시코(1), 필리핀(2), 러시아(3), 미국(3), 일본(1), 한국(14)에서 총 28명의 대학생자원봉사자들이 참여했다. 94년도 러시아에 평화공원을 지을 때 함께 했던 학생이 올해도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지금은 단국대학교 교수로 역임해 있는 발레리 새스텐코(Valeriy Saiostenko, 35). 1994년에 블라디보스톡에 지은 평화공원은 관광객들과 학생들이 대화를 나누고 여유를 즐기는 사랑받는 공간이 돼 있다.

건축학 전공인 발레리는 “건축은 영리 목적이 뚜렷하지만, 평화소공원은 우정을 가교로 해 만나고 있다. 그동안 여러 곳에 참여하며 공원과 내가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들은 1,592평방미터(482평) 규모로 제주오름을 형상화한 쉼터와 영등할망을 표현한 ‘돌할망(할머니)’을 가운데 둔 구조물을 다듬고 있다. ‘돌할망’은 돌하르방공원의 김남훈 원장이 기증했다. 허벨은 돌하르방만 있는 게 불만이라며 “She’s Stone Grandmother”이라고 불렀다. “영등할망의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고대적 요소와 함께 모던한 분위기를 통해 관광객들에게 궁금증을 유발시킬 것”이라고 소개했다.

제주 돌담을 닮아야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지난달 11일 도안을 짜는 것으로 시작해 오는 7일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 모든 것은 29명의 대학생들의 작품이다. 제주지역에 맞는 디자인을 찾기 위해 일주일간의 역사.문화 탐방도 진행했다. 건축 지도를 맡은 카일 버그만(Kyle Bergman, 50)은 “학생들에게는 일단 문화적인 것을 완전히 흡수한 뒤에 디자인을 하도록 요구됐다”고 말했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제주지역에서 참여한 제주대학교 한승지(21) 학생은 “’제주의 바람’과 ‘오름’ 그리고 ‘파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또 각 나라의 신화를 조사해 발표하는 등 서로의 문화와 제주를 비교하는 작업도 이뤄졌다. 실제로 조형물 중 한 곳에는 잔디를 씌워 오름 형상을 만들고 있고 영등할망이 있는 조형물 둘레도 파도를 연상시키는 소용돌이 모양을 투영했다”고 했다.

학생들은 토론을 통해 이번 제주 작업의 주제도 정했다. ‘Stepping Stones of The Pacifc’이다. 태평양의 징검다리. 태평양 속에는 평화가 있다는 것이 의역이다.

공원은 모슬포 앞바다와 송악산, 알뜨르 비행장을 둘러싸고 탁 트이도록 지어졌다. 태평양에서 쉽게 오가는 열린 공간을 상징한다고 했다. 이는 제주 바람과 돌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제주 돌담이 인상적이었다. 돌담이 바람을 통과시키면서 담이 쓰러지지 않는 거다. 변화를 추구하려면 개인이나 정부나 빈 공간이 필요하다. 타이트하면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점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허벨이 말했다.

전세계 청년들 쌓아올린 '평화 돌담', 제주 지킬 겁니다

재단이 디자인과 설계, 학생 조직부터 시공까지 이끌었다면 제주지역에서는 제주도가 부지를 매입하고 사업비 일부를 지원했다. 또 제주지역 사업 파트너로 제주국제협의회가 후원자들을 모았다.

▲ 러시아에 설치된 첫 '평화소공원' 조성에 참여했던 발레리는 17년이 지나 제주 평화소공원 조성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현재 단국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제주지역 건축가들도 참여했다. 건축가 김석윤, 제주대학교 건축과 김태일 교수, 돌하르방공원 김남훈 원장이다. 또 사업비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을 때 JDC와 농협, 제주대, 대정출신 재경인사들의 모임인 ‘대정포럼’, 대정향우회가 도왔다.

제주국제협의회 회장인 고성준 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는 “이 사업이 정치와 국가이익을 떠나 서로 화합하기 위해 모였고, 그 비전이 ‘평화’라는 점에서 공감했다”면서 “특히 카일과 허벨이 그동안 제주를 2번이나 찾아 사전 조사작업을 거쳤고, 현지 공사가 진행되면서 학생들이 밤마다 토론 후 디자인을 확정하는 열정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전세계 청년들이 모여 함께 ‘평화’를 짓는다는 데 있다. 허벨은 “학생들이 두려움에 떨지 않는 세상에 살았으면 한다. 친구의 나라에 들어가 전쟁할 거라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모두들 친구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카일은 “세계가 작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가장 큰 목적인 협동을 해 일하면 혼자일 때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벨은 공원을 완공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고서 ‘해녀’들에 대한 이미지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0년 동안 ‘진주(전복)’를 잡아올린 해녀를 만났다. 힘든 삶이었을 텐데도 그분의 눈이 진주처럼 반짝이는 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거기에 제주의 미래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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