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철의 제주해안따라가기(11)] 고내방사탑과 애월포구

▲ 고내포구의 모습, 고내포구의 주변은 옛모습을 찾을 수 없다.ⓒ홍영철
한 때는 중산간 마을인 납읍리의 포구였다고 전해지는 남또리 포구를 지나 서쪽으로 향한다.
애월읍 고내리로 접어 들었다. 제주에서는 유일하게 이 마을에 있는 고내봉에 막혀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고내’라는 지명은 한자로는 ‘高內’인데 높은 곳의 안에 있다는 뜻이다. 고내봉의 안에 있어서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이유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내포구에 이르면 고내마을의 중심부다. 대부분의 제주의 포구들처럼 고내포구도 자연지형물인 ‘코지’와 ‘여’를 방파제 삼아 만들어진 포구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던 갯바위들을 없애고 콘크리트 방파제를 만들었다. 고내포구와 더불어 고내포구의 옆에 자리한 두 기의 방사탑은 정리되지 않은 과거의 유물에 대한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삼거리에 세워진 방사탑과 갯바위에 세워진 방사탑. 원형이 사라지고 이름만 남았다.ⓒ홍영철
고내포구의 서쪽 아스콘포장이 된 삼거리에서 사각형의 쉼터 같은 돌탑을 만났다. 쉼터 같기도 하지만 쉼터에는 의례 팽나무처럼 그늘을 만드는 나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 돌탑위에는 보호탑이라는 글귀가 파인 자연석이 세워져 있다. 궁금해서 마을분에게 여쭈어 보았다. 마을분이 대답하기를 이 돌탑은 방사탑인데 원래 모양은 제주의 일반적인 방사탑처럼 둥그런 모양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방사탑은 하천 변에 있었는데, 하천이 복개되면서 방사탑도 허물어졌고, 복개된 길 위에 다시 방사탑을 세웠다고 한다.

▲ 보호탑이라고 쓰여진 표석과 시멘트로 발라진 방사탑.ⓒ홍영철
이 방사탑에서 바다 쪽을 보니 또 한 기의 방사탑이 있다. 바다쪽 갯바위의 위의 방사탑도 같은 네모난 모양으로 이 방사탑도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두 기의 방사탑은 보통 사람이 옮기기 힘든 큰 돌로 쌓여졌는데 하천을 복개할 때 깨어진 돌들을 포크레인으로 옮겨서 쌓은 것 같다. 먼저 “이렇게 쌓은 방사탑도 효험이 있을까?”라는 의문과 더불어 또 한편으로는 “과거의 것은 불편하고, 약하고, 가치 없다고 느껴서 없애버리면서 왜 굳이 방사탑은 다시 쌓을까?”하는 반발심도 솟구친다. 방사탑에 주술적인 효력이 있어서 아주 없애 버리면 재앙이 닥칠 것 같아서 마지못해 쌓은 듯한 방사탑, 그 안타까운 모습에서 문화에 대한 가치혼란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애월항 확장공사 모습. 길가에 위태롭게 조간대가 남아있다.ⓒ홍영철
고내포구를 지나자 애월항 확장 공사장과 마주한다. 고내리 방사탑에서 느꼈던 안타까움은 사치였다. 애월항을 넓히면서 묻혀버린 바다와 아직 위태롭게 남아서 이 곳이 바다였다고 말해주는 조간대는 참혹하기까지 하다. 얼마나 더 많이 이런 심정을 겪어야 할까?
앞으로의 걸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 애월초등학교의 입구와 애월진성, 바다쪽에서 바라본 애월진성이다.ⓒ홍영철
애월포구, 제주의 방어유적인 9개의 진성 중 하나인 애월진성이 있는 곳이다. 지금은 애월초등학교의 담벼락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애월초등학교의 정문에는 있는 비석에는 애월진성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애월진성은 원래는 삼별초의 난 때, 나무로 된 성이 먼저 만들어진 후, 조선시대 때, 포구가까이로 옮겨 돌로 쌓았다고 쓰여있다. 여기에 전선(戰船) 1척이 있었고, 격군이라는 수군전투병이 118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 성에 주둔한 병사를 병사를 합치면 400여명이 지키는 성이었다. 성곽의 둘레가 549척(약1.6km)였고, 높이가 8척(약 2.4m)였다고 적고 있다. 애월초등학교의 정문 양 옆으로 진성이 남아있는데, 정문에서 오른쪽은 최근 다시 복원한 듯하고, 바다와 접하는 왼쪽은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원형이 많이 남아 있다.

▲ 도대불을 새로 만들 때 세운 비문과 새로 만들어진 도대불의 모습.ⓒ홍영철
애월포구는 군데군데 옛 포구의 모습이 남아있으나 원형을 그려보기가 어렵다. 애월포구의 한쪽에 예전의 모습을 복원한 도대불이 있는데, 워낙 후미진 곳에 있어서 찾기가 어려울 것 같다. 복원한 도대불 앞에 있는 비문은 1930년대 세워진 도대불이 애월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사라지면서 2003년 11월 애월리와 애월항개발추진위원회가 다시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바다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도대불이다. 아무리 이름뿐인 도대불이지만, 바다를 볼 수 없는 곳에 세워진 도대불은 이미 자기의 자리가 아닌 곳에 서있는 돌 무더기에 불과하다.
복원은 원형도 중요하지만, 위치도 중요하다. 박물관에 만들어진 것을 복원이라고 할 수 없는 이치다.  진정한 복원은 그 형태도 중요하지만, 의미를 살리는 것이라는 것을 놓치면 안된다.

※ 홍영철님은 제주의 새로운 관광, 자연과 생태문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대안관광을 만들어 나가는 (주)제주생태관광(www.ecojeju.net )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주의 벗 에코가이드칼럼’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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