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가 사라지는 시대, 진짜 올레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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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장포 귀촌 이야기 3] 올레 공동체, 귀촌에서 받은 소중한 선물

▲ 우리 올레는 우리 외에도 네 가정이 함께 사용한다.
 

제주에는 마을 내 큰 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막다른 골목길을 '올레'라고 부른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마을마다 양쪽에 검은 돌담으로 에워싸인 올레들이 있었다.

그런데 올레는 단순히 진입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올레는 세상과 가족을 이어주는 다리임과 동시에 가족과 세상을 구분하는 경계였으며, 대문이 없던 시절 정낭과 더불어 사생활을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농부들은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에 올레를 벗어나 고된 일터로 나갔고, 해가 진 뒤에야 올레를 통해 집으로 돌아왔다. 수많은 어머니들이 시집가는 딸을 눈물로 배웅했던 곳도, 군대에서 제대한 아들과 상봉의 기쁨을 나눈 곳도 올레였다.

이런 연유로 올레는 집 주인의 삶이 애환이 새어나오게 마련이다. 올레 주인의 정서가 깊이 배어있는 곳이기에 다른 이들은 타인의 올레를 들여다보는 것을 가급적 삼가야 했다. 남의 올레에 들어설 때 몸가짐을 조심했던 것도, 서로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올레는 공동체간 유대감을 형성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서구에서는 비슷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끼리 광장을 통해 유대감을 키워왔다면, 제주에서는 '같은 올레를 걷는' 사람들끼리 친밀한 공동체를 형성했다. 이와 관련한 학술 자료가 있다.

통상 올레라고 하는 것은 개인주호공간에 접근하기 위한 극히 개인적인 길을 말한다. 때문에 통상적인 올레라는 개념은 공용공간이라는 개념보다는 사석인 공간이라는 개념이 강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적인 진입공간으로서의 올레가 아니라, 서너 가구 혹은 많게는 칠팔 가구가 진입로를 공유하는 올레를 갖기도 한다. 이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는 공공도로와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사적이지도 않은 공간이다. … 이러한 막다른 도로의 형태는 도로를 공유하는 이웃을 형성하게 되고, 안정적인 소속감을 부여함으로써 좋은 이웃관계를 형성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 국립민속박물관 발행 <하도리 민속지> 제6장 '주생활' 내용 일부

▲ 망장포에 있는 또다른 올레다.

 

어느 집안에 경조사가 생겼을 때 올레 이웃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하객이나 조객을 맞을 수 있게 집을 통째로 내주는 것까지도 당연한 일로 여겼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의 농촌에는 집집마다 돼지를 키웠는데, 발정기에 들어서서 돗통을 뛰쳐나온 수퇘지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막대기를 들고 돼지몰이에 함께 나서는 것도 올레 이웃들의 몫이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아이들에게 별도의 놀이터가 없던 시절, 올레는 이웃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놀이공간이었다. 긴 올레 군데군데 있는 정낭과 마당은 아이들이 숨바꼭질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같은 올레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훗날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주에서 올레가 사라지고 있다. 기존의 도로가 확장되거나 새로운 도로가 생겨나면서 과거의 올레를 쓸고 지나가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고, 세태가 변해서 넓은 길을 끼고 있는 땅을 더 비싸게 쳐 주면서 올레가 긴 집은 가치 없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우려할 만한 문제는 올레가 사라지면서, 올레를 매개로 이어지던 이웃 간의 강한 유대감마저 사라져버리고 있다는 거다. 부동산 투기와 토건경제가 낳은 뼈아픈 결과다.

게다가 최근엔 남은 올레마저 점점 제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최근에 올레 아닌 수많은 것들이 올레를 사칭하고 있고, 각종 수식어를 동반한 수많은 변종들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레의 참다운 가치에 대한 성찰과 탐구가 사라져 버린 것은 참으로 아쉬운 점이다.

그런데 우리가 귀촌하면서 터를 잡은 농가주택은 다행히도 긴 올레의 끝에 있는 집이다. 이 올레는 우리 말고도 네 가구가 같이 사용한다. 우리가 귀촌을 준비하면서 목수들의 손을 빌려 집을 수리할 때, 우리의 새 이웃들은 자주 들러서 우리의 귀촌에 관심을 표했다. 가스집 전화번호, 청소차량이 오는 요일, 올레 입구에 차를 세우는 요령 등의 단순한 정보에서부터 마을의 내력에 이르기까지 궁금한 많은 것들을 알려줬다. 올레는 우리에게 좋은 이웃들을 예비해 놓고 있었다.

▲ 포구 인근에 있는 '보타사'라는 절로 들어가는 올레다.

망장포에는 우리 올레 외에도 서너 개의 올레가 더 있다.  산책길에 올레의 담을 들여다 보는 것은 참으로 정겨운 일이다. 올레가 살아있는 것을 보면서 망장포야말로 진짜 제주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촌 과정에서 많은 이들은 "집이 너무 구석진 곳에 있다"고 했지만 난 내 결정이 훌륭했다고 자신하는 이유가 있다. 올레가 사라져가는 시대, 올레가 제 위치에서 밀려나 표류하는 시대에 따뜻한 올레 속에서 그 맛을 음미하며 살 수 있는 것만도 큰 행운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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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1
로드 2010-09-08 12:14:42
올레를 따라서 걷게되면 추억이 걍 살아나겠어요.
119.***.***.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