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마음 모으기'운동으로 지식기반사회를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우리네 삶의 아픈 기억들은 아득하게 희미해지며 미화되어, 실패한 과거라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프고 고되었던 역사적 진실은 지워질 수 없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지금도 쉬지 않고 돌고 있다. 역사 속에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변화하고 혁신하고 노력한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사멸되었다. 예전에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으나 현세는 일년에도 과거의 수십년에 해당될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어 잠시 머뭇거리다가는 퇴락과 도태의 늪에 빠지고 말 것이다.

지난 10년은 세계사에 어떻게 기억될까? 미국 경제학자 케니(CHARLES KENNY)는 국제 시사잡지 포린팔러시(FP) 최근호(SEPT./OCT. 2010)에 기고한 글에서 지난 10년에 대해 9.11 테러와 엔론 사태로 시작하여 아시아 쓰나미, 이라크 전쟁 등을 거쳐 글로벌 금융위기와 아이티 지진으로 끝맺은, 어려움은 있었으나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위 기고에서 세계 경제의 성장 지속에 힘입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세계 인구의 비중이 1990년 50% 수준에서 2007년 28%로 크게 줄었고, 세계 인구의 평균소득도 2000년에 비해 25%나 증가한 약 10,600달러에 달하였다고 했다. 또한 세계인의 건강상태도 크게 개선되어 2000년부터 2008년 사이에 유아사망률이 17%이상 하락했고 보통사람의 평균기대수명도 2년 정도 늘어났다고 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10년 동안을 되돌아 보면 특히 경제부문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의 충격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2000년대를 맞이하여 카드대란, 신용불량자 양산, 글로벌 금융위기와 청년실업 대란 등 대형 악재가 잇따라 터졌다.

그러나 이러한 험로에서도 특유의 근면성과 역동성을 바탕으로 IMF 차입금을 3년 8개월만에 상환하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도 재정, 금융, 외환 등 다방면의 발빠른 정책대응을 통해 슬기롭게 대처해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러한 저력에 힘입어 금년 11월 G-20정상회의를 서울에 유치함으로써 세계 경제의 주변부를 벗어나 경제와 관련된 논의의 주도권을 확보함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가 한층 상승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 10년간 국내총생산(GDP)은 40.9%, 1인당 국내총소득(GNI)은 66.6% 각각 성장하였다. 하지만 이같은 양적 성장의 이면에서는 소득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의 지속적 상승과 부동산가격 급등으로 빈부격차가 커지는 등 양극화의 문제가 구조적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으며 최근에는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에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10년 동안의 제주사회는 어떠했던가? 이 기간은 변방 제주가 ‘변화와 혁신’의 초석을 다진 시기였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중심에는 제주국제자유도시와 제주특별자치도가 있었다. 제주국제자유도시 의 추진은 1990년대 말에 논의가 시작되어 2001년 12월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그 틀을 다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 영어교육도시, 헬스케어타운, 첨단과학기술단지 조성 등 핵심 프로젝트들이 추진되고 있으며 조만간 그 성과가 가시화될 전망이다. 또한 2006년 7월에 출범한 제주특별자치도는 대한민국 60년 지방자치사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세 차례의 제도개선을 통해 중앙정부의 권한 1,705건을 대폭 이양받음으로써 전국에서 자치분권의 최선두에 서서 우리나라를 선도하는 지자체가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실질 지역총생산(GRDP, 2005년 가격기준)이 2008년 8.3조원으로 2000년 6.4조원에 비해 29.3% 성장하였으며, 1인당 실질 지역총생산(GRDP, 2005년 가격기준)도 2008년 14.9백만원으로 2000년 11.9백만원에 비해 25.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력산업인 관광산업의 경우 그 간의 정체에서 벗어나 호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제주 올레길 등 새로운 관광상품이 개발되면서 도내 관광객수가 2000년 400만명에서 2009년 650만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제주사회는 이와같은 양적인 풍요함과 함께 질적인 빈곤 속에  서 대다수의 서민은 굴곡의 세월에 힘든 삶을 영위해 왔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제주경제는 최근 10여년 동안 경제 성장률이 전국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등 성장동력의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90년 초반 높은 성장세에 힘입어 제주도민의 1인당 소득이 전국 평균치를 100으로 했을 때 그 격차가 89%대(1995년)로 좁혀졌다. 그러나 이후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격차가 다시 확대되어 2008년에는 76.5%까지 하락하였으며, 특히 2002년 이후 1인당 소득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전국 평균을 하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안타깝게도 도민생활의 근저가 되는 중소기업, 자영업, 농촌, 이 세 부문이 흔들리고 위축됨으로써 제주 도민들은 갈수록 생활고를 호소하고 불안한 내일을 맞게 되는 것이다. 만약 도민경제의 근저인 서민경제권이 흔들리고 위축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제주경제 선진화의 꿈은 결코 이룩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중산층과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용등급이 낮아 제도권 금융기관과 정상적인 거래가 어려운 금융소외자들의 증가는 1997년의 외환위기 및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전국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제주지역이 더욱 심한 실정이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2009.10월 현재 제주지역의 7등급이하의 低신용등급 금융소외자는 10만명으로 전체 신용등급평가자에서 차지하는 비중(28.7%)이 전국에서 가장 높으며, 이를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30~40대가 전체의 57.0%를 차지하여 청년실업 문제와 더불어 제주지역 사회의 잠재된 심각한 불안 요소임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연령층인 30~40대 제주도민의 낮은 신용등급 문제는 심각하다. 이들이 금융기관 이용에서 겪는 애로는 제주지역 생산 및 소비활동을 제약하는 등 지역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개인 파산제도 이용자수는 2002년 이후 증가세를 지속하여 2007년의 파산신청 증가율(147.7%)이 전국평균(24.5%)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또 제주지역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수도 2003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증가율이 전국 평균을 상회하고 있다. 특히 전남, 전북, 경북지역을 제외하고는 제주지역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수 비율이 가장 높다.

이처럼 높은 저신용등급자수, 개인 파산 및 개인 채무자회생제도 신청자수 등 제주의 특별한 경제상황은 경제 여건이 악화 될 경우에는 생계유지 등을 위한 금융이용 제약으로 소비여력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위축될 수 있다. 또 이러한 상황은 경기가 호전될 경우에도 창업 등의 투자활동을 제약하여 경제 활성화를 저해할 수 있다.

제도권 금융 서비스의 혜택에서 배제되는 금융소외자들이 늘어나게 되면 사회적 통합을 해치고 지역사회 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에 안주하던 제주가 대외개방, 해외여행 자유화 등에 따른 경쟁력의 저하로, 성장률이 낮아지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등 삶의 위기를 느끼면서 지역 주민들 간에 갈등이 보다 빈번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제주사회는 제조업 성장기반 취약에 따른 농림어업 및 서비스업 위주의 불균형 성장, 역외 의존도가 높은 소비구조, 노동수급 불균형 등에 기인한 고용부진의 장기화로 또 다른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핵심산업인 농림어업부문을 중심으로 고용이 감소하는 가운데 서비스업부문의 고용 흡수력이 한계를 보이면서 양질의 일자리 부족, 심각한 청년층 취업난, 고용불안 심화 등으로 고용의 질이 나빠지는 등 고용사정이 양적ㆍ질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특히 청년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여타 지역보다 높은 반면 취업비중은 전국보다 낮고 최근 그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아울러 전국의 경우 2000년대 들어 계절별 취업자수 변동폭이 완화된 반면 제주지역은 핵심산업인 농림어업 및 서비스업이 수확기 또는 성수기 등의 계절적 요인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아 고용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주기적인 일자리 불안이 발생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경제성장의 위기, 사회통합의 위기, 재정의 위기, 미래비전의 위기라는 4대 위기에 봉착해 있는 가운데 경제발전, 일자리 창출, 내수진작, 사회안전망 구축 등 국제자유도시와 제주특별자치도의 완성을 위한 수많은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과제들은 제주인들이 보다 나은 미래의 삶을 위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들이다.

국제자유도시가 계획대로 추진되고 지속적인 제도개선 등을 통해 제주특별자치도의 역량이 강화되면 지역발전도 탄력이 붙을 것이다. 우리가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외환위기 극복의 원동력을 찾아냈던 것처럼, 이제 새 도정을 맞아 '지식 모으기' 운동 및 '마음 모우기'운동을 통해 지식기반 사회로 가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지역갈등을 슬기롭게 해소해 나간다면 제주경제의 미래는 활짝 열릴 것이다. 또한 새로운 도정이 내세운 '세계로 가는 제주', '세계인이 찾는 제주'라는 희망의 비전도 반드시 이루어져 우리의 몫이 될 것이라 믿는다.

▲ 고운호 전 한은 제주본부장
현재의 제주는 과거의 제주를 제쳐 놓고 생각할 수 없듯이 미래의 제주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손에 달려 있다. 우리들이 세월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 현명하게 선택하고 창조적 혁신정신으로 혼신을 다해 도전한다면 향후 20년, 30년 후 우리들의 후손들은 과거 제주인들의 어려웠던 삶을 한가닥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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