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그만식(式) 역사의 교훈

역사학을 전공한 파이낸셜 타임즈의 수석 칼럼니스트 기디언 라크만은 ‘경제학자들을 그들의 왕좌에서 쓸어 버려라’라는 최근의 기고문에서 경제학자들을 비꼬았다. 코앞에 닥친 경제위기도 예측하지 못했던 주제에 그 동안 복잡한 경제이론과 방정식을 들먹이며 정부와 기업과 투자회사의 중요한 자리를 독차지해왔다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도 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 동안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그런 손이 애당초 없었기 때문이다”라는 그의 고백은 지나쳤다. 좀더 겸손할 필요는 있지만 냉소적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위기의 극복을 위한 처방에 있어서도 경제학이 져야 할 짐이 매우 무겁다.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을 지낸 크리스토퍼 콕스는 지난주 서울의 한 토론회 기조연설에서 “현 추세대로라면 미 연방정부 부채가 매년 8조달러씩 증가하는데 미국의 개인 및 법인의 총 과세소득은 3조1000억달러에 불과하다”는 믿기 어려운 숫자를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채무 문제가 다음 글로벌 위기의 씨앗으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크루그만식(式) 역사의 교훈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만 교수는 이달 초 미국 뉴욕타임즈 지의 ‘2010년의 1938년’이라는 칼럼에서 오늘의 상황이 세계 대공황의 후폭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1938년과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년간의 막대한 재정 지출에 불구하고 경제회복의 기미는 없고 실업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었다. 점차 정부의 부채누적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고 급기야 1938년 실시된 총선에서 집권당인 민주당이 참패하고 상원과 하원을 공화당에게 넘겨주게 된다.

그리고는 전쟁이 왔다. 그 동안 주저해 왔던 재정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미국 경제는 비로소 침체를 벗어날 수 있었다. GDP가 급성장했기 때문에 미국의 정부부채 비율은 낮아졌고 거기에 인플레이션 덕분으로 부채의 실질가치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정부의 거대한 부채는 결국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크루그만은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거울삼아 재정지출을 과감하게 늘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위기 해법으로서 전쟁, 내지는 전쟁에 버금가는 재정지출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마땅한 해법이 떠오르지 않는 경제학의 고뇌를 느낀다.

작금의 국제정세는 어떤가? 중국은 금년을 기점으로 일본을 넘어서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된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과 우리나라, 그리고 인도, 베트남 등과 함께 소위 민주주의의 축(Axis of Democracy)을 형성해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일본은 중국정부가 금년 들어 돌연 일본의 국채를 대거 매입하고 있는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엔화의 환율이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최 강세를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에 중국의 일본 국채 매입이 일조했다고 보고 있다.

오는 9월 22일은 일본 엔화를 절상시키기로 한 플라자 합의(Plaza Accord)가 체결된 지 25년 되는 날이다. 일본 정부는 엔고(円高)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초 저금리를 비롯한 양적 완화 정책을 도입했는데 이것이 후일 부동산과 주식의 거품을 낳아 ‘잃어버린 10년’의 불씨가 되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중국 위안화 환율에 대해 제2의 플라자 합의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주 미국 의회에서는 중국의 환율 조작혐의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다.

그래도 경제학적 해답 찾아야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위안화의 저 평가를 유도한 것은 중국의 수출업체들에게 대한 수출보조금 지급에 해당되므로 이에 대해 상쇄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일본의 전철을 밟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11월 G-20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되는 것은 의미가 크다. 경제 위기는 가장 먼저 벗어났지만 주요국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는 지정학적 지도의 한가운데에 우리나라가 있다.

의장국으로서 세계의 조화로운 위기 탈출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우리는 발언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우리는 경제학적 해답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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