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수 롯데정보통신 대표
롯데를 '빅4'에 올려 놓은 후 지역·후학위한 일 하고파

▲ 오경수 롯데정보통신 대표 우리나라 10대 그룹 중 몇 안되는 제주출신 CEO다. ⓒ제주의소리
오경수(54) 롯데정보통신 대표이사는 우리나라 10대그룹 중 몇 안되는 제주출신 전문CEO다. 1981년 삼성물산에 입사에 그룹 핵심인 비서실과 미주본사를 총괄하는 뉴욕주재원을 거쳐 시큐아이닷컴(주) 대표이사를 맞는 동안 갖은 시련과 좌절을 뚫고 지금의 자리에 앉은 50대 리더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이제는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장,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을 맡을 정도로 IT전문가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그에겐 항상 두 가지가 따라다닌다. 하나는 ‘메모의 달인’, 두 번째는 ‘오 마담’이란 닉네임이다. 그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장소에 먼저 도착하면 항상 수첩을 꺼내 놓곤 뭔가를 적는다. 수첩이 모자라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이 메모가 그의 경쟁력의 원천이다. 닉네임 ‘오 마담’은 인맥이라곤 거의 없을 수밖에 없는 제주출신이 대기업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다.
개인 홈페이지를 15년째 관리해 올 정도로 추진력과 집중력이 탁월하다. 그의 홈페이지를 보면 고향 제주에 대한 이야기가 유난히 많다. 아버지,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곳곳에 묻어난다. 그가 좌우명으로 삼는 ‘수처작주(隨處作主)’ 그대로를 보여준다. 12년전에 서울에서 제주출신 IT인끼리 IT포럼을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오면서 제주와의 인연을 고향발전의 끈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고향 제주는 과연 무엇인지, 그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 색깔인지 지난 21일 추석 연휴를 고향에서 보내기 위해 내려온 오경수 대표를 <제주의소리>가 만났다.  
 
- 오경수 대표하면 ‘메모의 귀재’ ‘메모의 달인’이란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닌다. 개인 홈페이지도 15년째 이어오고 있다. 메모도 그렇지만 홈페이지를 15년 동안 쉬지 않고 직접 관리한다는 게 사실 쉽지 않다.
“홈페이지는 삼성물산 뉴욕주재원으로 있으면서 시작했다. 내 성격이 뭔가 하나를 시작하면 끈기 있기 계속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메모습관도 마찬가지다. 고향에서 감귤농사를 짓는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영농일기‘를 빠짐없이 쓰시는데 그런 영향을 받았나 보다. 삼성그룹 사내 인터넷 망인 ‘싱글’을 국내 기업에서는 제일 먼저 만들어 삼성 임직원들이 가치관을 공유하도록 한 게 기록과 메모의 시스템화를 이룬 결과다. 싱글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정보가 축적되고, 다시 꺼내보면서 비효율을 효율화시켜 나갈 수 있었다. 남의 출장보고서를 읽어보고 가는 거랑, 안 읽어본 거랑 분명한 차이가 난다. 낭비 요소를 없앨 수 있는 중요한 요소를 발견했다. 이게 눈에 안 보이는 가장 큰 자산이 됐다.”

▲ 오 대표의 손에는 항상 수첩과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언제 어디서든지 메모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메모의 달인 경수 롯데정보통신 대표 ⓒ제주의소리
- 그렇다면 아버님의 ‘영농일기’가 오늘날 메모의 달인, IT전문가 오경수를 만드는 기본 바탕이 됐다는 이야기로도 들린다..
“귤농사 짓는 농사꾼 아들로서 아버지가 기록해 나가는 영농일기가 농사를 짓는 프로세스로, 이게 대기업에도 통한다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오늘날 IT에 빠지게 됐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재무 인사 조직을 잘해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IT가 필요했고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제주도 마찬가지로 관광산업을 IT가 지원해서 목적을 이루는 컨셉을 가져야 한다.”

- 오 대표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삼성물산에 입사한 이후에도 경영분야에 전념하다 어느 날 IT쪽으로 돌았고, 많은 이들이 오 대표를 IT출신으로 착각한다. 경영에서 IT로 전환한 계기가 뭔지 궁금하다.
“첫 번째는 (당나라 선승 임제선사의가 쓴) 수처작주(隨處作主, 머무르는 곳에 주인이 되어라)란 내 좌우명과도 관계가 있다. (서귀포시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후 제주시에서) 제일중을 졸업하고 제일고 1학년 때 흥사단 아카데미 활동을 하게 됐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너 자신이 인격자가 돼라’ ‘너는 주인이냐 나그네냐’라고 물으셨는데, 어디가든 머무는 장소에서 주인이 되고 리더십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대 상대를 나와 삼성물산에 들어가서 재무 기획 인사를 하다가 비서실에 가게 됐다. 대리까지 재무관리. 전략기획은 잘했는데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맡은 게 정보를 조사하고 가공해서 보고서를 만들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오늘 날 삼성경제연구소와 같은 역할이었다. 목적을 이루려다 보니 컴퓨터가 필요해 당시 1대에 700만원하는 컴퓨터를 300억원정도 들여 삼성그룹 전체 임직원에 나눠주고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후 1987년에 정보보안사업을 제안해서 멤버를 만들고 리더를 맡아 일하다 보니 IT가 경영에 굉장히 중요한 수단임을 알았다. 결국 2000년 e삼성인 ‘시큐아이닷컴’을 만들 때 그룹내 유능한 정보보안 인재 48명을 모아 출발했고 사장으로 5년동안 일하다 보니 보안협회장도 되고 IT전문가로 변신하면서 이후에 롯데정보통신 사장으로 스카우트됐다. 어디서든지 자기 전공과 관계없어도 핵심만 알면 업종전환도 되고 좋은 결론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알았다.”

- 삼성물산이라면 사실상 우리나라에선 최고의 회사인데, 삼성계열사이긴 하지만 벤처기업 사장으로, 여기에서 이번엔 아예 삼성그룹 품을 벗어나 롯데정보통신으로 옮기는 결심이 쉽지 않았을 텐데.
“결국 인생은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이다. 설령 실패가 있다 해도 꿈을 갖고 굴하지 않고 도전하는 의식이 중요하다. 부모님께서도 삼성물산이라는 좋은 회사에서 시큐아이닷컴이라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회사에 가니 걱정을 했고, 친구들도 만류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큰 대기업에만 만주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건 아닌지‘란 생각에 도전했다. 벤처가 당시 각광도 받았지만 2000년 48명에서 출발해 2005년 200명까지 확장하는 과정까지는 굉장한 시련이 있었다. 엄청난 스트레스로 잇몸이 한꺼번에 다 내려앉아 당시에 3600만원이란 거금을 들여 인플랜트 10개를 한꺼번에 했을 정도였다. 5년이었지만 10년 20년의 경험을 한꺼번에 했다.”

- 잇몸이 다 내려앉을 정도였다면 다시는 되돌리고 싶지 않을 시련이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게 있다면 무엇인가.
“삼성 계열사였지만 아무도 안 도와주고 영업하러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지금까지는 갑(甲)이었지만 시큐아이닷컴 사장을 맡으면서는 을(乙)로 쫓아다니며 나의 약점인 영업을 많이 배웠다. 영업의 근간은 어떻게 마케팅 홍보를 하고, 인맥을 관리해서 어떻게 정보를 소통시키는 것을 알고 나니 두렵지 않았다. 시큐아이닷컴에서 IT서비스 업계 6위. 임직원 1300명에 매출액 4200억 정도 되는 큰 중견기업으로 가게 된 배경도 5년간 혹독한 도전과 실패를 경험 삼아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 일반인들이 알기엔 롯데라고 하면 유통이나 호텔 등 서비스산업이 주력업종이다. 롯데정보통신은 솔직히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롯데백화점이나 롯데마트, 세븐일레븐에 가보면 물건을 사고 카드로 결제하는 시스템 자체가 정보시스템이다. 롯데정보통신이 제공한다. 삼성그룹은 삼성SDS, LG그룹은 LG CNS가 있는 것처럼 각 그룹을 총괄하는 IT회사가 잇다. 롯데정보통신은 롯데그룹 55개 계열사 전산을 책임져 영업 유통 건설하는데 도움을 주는 IT서포터를 한다. 최근엔 유통뿐만 아니라, 서울 잠실에 제2롯데월드를 만드는데 123층 초고층 빌딩의 주차관리서부터 출입통제, 에너지 절감, 엘리베이터 제어, 각종 테러에 대비한 정보관리와 리스크 관리 등 인텔리전트 빌딩을 만드는 일을 담당한다. 롯데그룹이 유통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세계 각국에 글로벌 IT 서비스가 필요하다. 또 미래비전으로 에너지절약에 관심을 갖고 기여할 것이다. 스마트그리드분야에서 전기자동차를 몰고 백화점에 주차하고 쇼핑하는 순간 자동충전하고 요금을 결제할 때 충전요금이 자동 포함되는 것을 지금 구좌읍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에 실증하고 있다. 지금은 롯데정보통신이 IT서비스업계 6위지만, 조만간 ‘빅4’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 삼성물산에서 시큐아이닷컴을 거쳐 롯데정보통신으로 옮긴 오경수 대표. 시큐아이닷컴 대표로 있을 땐 잇몸이 모두 내려앉아 임플랜트만 한꺼번데 10개를 해야 할 정도로 극심한 어려움도 겪었야 했다. ⓒ제주의소리
- 1981년 삼성물산에 들어가 직장생활한지 30년이 됐다. 하루하루가 시련과 고통이었겠지만 그래도 외형적으로 볼 때는 성장일변도였다. 오경수 대표의 인생에도 좌절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많았다. 첫 번째는, 86년부터 94년까지 8년간 삼성그룹 비서실에 있을 때였다. 지금의 구조조정본부로 200명이 근무하는데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최소한 경기고 서울고 출신에다 서울대 였다. 박사도 있고 정말 훌륭한 인재들이었다. 상대적으로 나는 제주 제일고에다 대학교는 비슷하지만, 가장 딸린 게 정보와 인맥이었다. 라인이 없기 때문에 보고서를 작성해도. 다른 사람은 라인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작성하는데 하루면 되지만 나는 일주일이 걸려야 했다. 정말 굉장히 좌절을 많이 했다. 인맥 정보망의 중요성을 그 때 깨달았다. 그래서 당시 월급  의 20%를 인맥 구축에 썼다. 가계부는 적자였지만 길게 보면 사람 만나고 모임에 참석하는 비용이 ‘소비적 지출’이 아니라 ‘자본적 지출’이 된다는 것을 가정해서 8년 동안 투자했다. 그 8년동안 정말 많은 인맥이 구축되고, 나중에 ‘마당발’이라는, 소위 ‘오 마담’이라는 별명도 그 때 얻었다. 변방 제주출신으로 좌절도 했지만 결국 약점을 딛고 일어섰다.”

- 월급의 20%를 인맥관리에 썼다는 사실은, 사회생활이나 비즈니스에서 인맥이나 정보관리가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이야기 해 주는 것 같다. 또 다른 좌절은 없었나.
“두 번째는 미국 주재원으로 뉴욕에서 4년간 근무하다 IMF가 터지면서 귀임한 이후다. 에스원에 잠시 있었는데 부장이었지만 저 밑에 아무도 없었다.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다. 까닥 잘못했다간 그만둘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 내가 지금까지 배워온 정보와 인맥을 활용해 보안사업을 제안했다. 에스원이 갖고 있는 물리적보안과 내가 갖고 있는 사이버보안을 합치는 아이디어를 제출해서 4명으로 TF팀을 만들고 2년 뒤엔 15명 정보사업부로, 그리고 2000년엔 시큐아이닷컴이 출범하는 계기가 됐다. 위기가 있어도 경험 노하우를 가지고 강하게 추진하면, 상대방을 설득하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가이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사실상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지만 적극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해서 성사시켰다. 샐러리맨은 거의 비슷하다. 안되는 일도 적극성을 갖고 제안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성실만으론 안된다.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후배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도, 전화도 먼저하고, 문자 메시지를 받으면 답장도 곧바로 하도록 말한다. 축구도 선제 공격이 중요한 것처럼 먼저 나서야 한다.”

- 상당히 많은 시련과 좌절을 들었다. 그 중에서도 자세히 보면 대한민국 1%인 제주출신이 날고 긴다는 모든 이들이 모여 있는 서울에서 살아남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결국은 살아남아야 하고, 또 크고 작은 곳에서 제주인의 기상을 떨치는 이들도 많다.  
“내가 볼 때 제주출신이 살아남기 위한 첫 번째 화두는 ‘배타적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  나 혼자 열심히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 혼자 살 수 있는 건 사회가 아니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 상대방과 교류하고, 모임에 참가하는 게 필수불가결이다. 내가 기분 좋고 나쁨에 따라 참여하는 것은 배타적이다. 제주도 사람은 열심히 하지만 배타적이어서. 모임에 적극 참여하고 헌신하는 게 부족한 게 있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이야기 하듯 ‘오픈’이다. 필요한 제도나 문물, 사람은 ‘아웃 소싱’ 해야 한다. 제주사람은 혼자 하는 건 뛰어난데 더불어 하는 건 약하다. 이걸 버려야 성공한다. 또 하나는 제주인들의 심성은 고운데. 프리젠테이션 기술(발표력)이 떨어진다. 저도 내성적이었는데 외향적으로 바뀐 건 내 아이디어가 설령 틀려도 남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피티(PT) 문화를 배우면서부터다. 제주엔 이게 없다. 옆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소통하고 협업하고 협상해야 하는데, 마음속으로 꿍해 있다가 나중엔 고소해 버리고 만다. 강점을 적극 발굴해서 남에게 어필하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인데, 우리는 이를 부끄러워하거나 ‘왜 내가 잘난 척 해야 해”라는 생각만 한다. 제주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추진력과 독립심이 강하기 때문에 이 약점만 잘 보완하면 굉장히 좋게 될 것이다.”

▲ 오경수 롯데정보통신 대표가 양복 안 주머니에서 꺼낸 제주지역 음식점 정보가 빼곡히 적힌 리스트. 오 대표는 제주에 오는 지인들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제주음식점 리스트를 카피해 준다. ⓒ제주의소리
- 오 대표는 서울에 있지만 제주활동도 잦다. 물론 스마트그리드사업도 있지만 그 이전에 제주출신 IT전문가들이 모임인 IT포럼 활동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울과 제주에 있는 IT포럼은 제주IT 발전뿐만 아니라, 지난17일엔 제주일자리막람회에 참여해 제주지역 대학생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참에 IT포럼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해 달라.
“1998년에 몇 사람이 만나서 제주출신 IT인끼리 정보를 교류하자고 했다, 첫 번째 이유는 지식을 공유하면 가치가 굉장히 변할 수 있다. 나에겐 하찮은 정보라도 남에겐 귀중하고, 또 남의 정보가 아무리 중요해도 내가 하찮으면 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 정보는 모이고 교환하면 가치가 올라간다. 또 하나는 출향 제주인들은 향토장학금을 받아서 육지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제주토속자본을 유출시킨 장본인들이기 때문에 잘되면 우리도 제주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 전문기술이 결국은 제주에도 필요할 것이라는, 제주가 관광으로 먹고살지만 나중엔 IT가 서포터 해야 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출범했고 지금 12년째 이어오고 있다. 회원도 200여명이고 한번 모이면 40~50명은 모일 정도로 호응이 높다. 이번 제주글로벌상공인대회에도 20여명이 왔고, 일자리박람회도 적극 참여했다. 처음엔 미비했지만 10여년 거치면서 IT분야에서 제주에 조금이라도 기여 할 수 있는 게 뭔지, 스마트그리그와 관광분야에서 관광 쇼핑 교통을  한데 묶는 ‘제주패스 카드’가 나오면 IT가 서포터 해줄 수 있다는 생각까지 나왔다. 제주발전을 지원할 모임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 지난 17일 열렸던 일자리박람회엔 예전과는 달리 롯데정보통신과 IT포럼을 비롯한 제주출신들이 오너나 CEO로 있는 수도권기업들이 대거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오 대표께서 직접 면접을 본 건 아니지만 인사팀에서 보고 받은 이야기나 또는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한다.
“서울기업에서 제주출신 유능한 인재를 발굴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 다만 제주에 있는 도내 대학생들의 실력을 전국과 비교하자면 약간 보통수준이 아닌가 생각한다. 공개 경쟁하면 뒤쳐지는 게 사실이다. 대기업에서 공채하면 제주도내 대학생 채용비율이 극히 적다. 영어 토익은 나름대로 하겠지만, 전공의 깊이나 다양한 문화는 인터뷰해 보면 떨어진다. 책을 읽고 영화연극에 대한 느낌을 집단 토론했을 때 제주도내 대학생들의 생각이나 느낌이 떨어진다. 채용하는 입장에선 스펙만보지 않는다. 학점 영어실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고의 유연성, 문화 역사에 대한 관심도도 보는데 이게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출신 서울기업은 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채용하려고 한다. 롯데정보통신도 스마트그리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서울근무가 아닌, 제주에 근무할 수 있는 인력을 채용하려고 한다. 제주도내 대학생들이 지식수준뿐만 아니라 제반 경험이 필요하다. 봉사활동 동아리모임을 통해 평소에 많이 함양해야 한다.”

▲ 오경수 롯데정보통신 대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10% 정도 남아 있다고 했다. 4~5년내에 우리나라 IT업계 상위 5% 그룹에 들어간 후 지역발전을 위해 후학을 가르키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조심스레 꺼냈다. ⓒ제주의소리
- 이제는 그런 경향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예전엔 제주라는 게 혹 핸디캡으로 작용할까바 밝히기를 꺼리는 분위기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오 대표는 제주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개인 홈페이지도 보면 고향과 아버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오 대표에게 고향 제주는 어떤 의미가 있나.
“제주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고향 사랑하는 건 인지상정이지만, 제주출신으로서 제주에 뭔가 해야겠다는 사회적 책임, 수처작주((隨處作主)다. 내가 머무는, 부모가 있는 고향에 뭔가 주인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에 어떤 모임에 가더라도 일단 제주 서귀포 출신임을 밝힌다. 최근엔 올레길 한라산 관광가이드는 내가 하겠다고 앞장선다. 워크숍이나 세미나를 제주에 유치해 주기도 하고, 늘 사람들에게 제주에 가면 관광지, 산과 올레길이 어디어디에 있다고 알려준다. 내 수첩엔 제주음식점 이름을 적고 다닌다. 국숫집이나 먹거리집이 적힌 리스트를 갖고 다니면서 카피도 해주고, 또 가끔은 내가 만든 자료를 갖고 다니는 사람도 본다.  세미나 버스를 타면 10여분 정도 제주를 소개할 수 있는 가이드 수준은 된다. 인생 전체의 1/3은 내가 제주에 머물기 때문에 투자하고, 1/3은 가정과 직장, 나머지 1/3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처럼 한다.”

- 기업은 물론, 자치단체도 이젠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살수가 없는 세상이 됐다. 오 대표가 보는 고향 제주의 경쟁력은 어떤가? 객관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제주의 경쟁력은 단연 청정자원이고 관광이다. 과거엔 ‘4+1’이라고도 했지만, 의료든, 1차산업이든 관광 카테고리 밑에 있는 서브 아이템이다. 전 세계 좋은 관광지라도 복합단지가 없다 괌이나 어딜 가도 아름다운 해안가 하나밖에 없지, 제주처럼 산과 바다, 폭포가 어우러진 콤플렉스는 드물다. 모든 요소를 관광에 초점 맞추면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여기에 속한 사람들이 과연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로 인해 관광지가 빛나고 있는가, 하다못해 택시기사 인사나 짐 내려주는 것, 식당직원들이 환하게 웃어주는 것. 최소한 중국어 일본어 영어로 인사말 정도는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돼야 한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 600만~700만명이 중요한 게 아니다. 대한민국 4800만명 중에서 제주관광 가고 싶어 하는 유효수요를 조사해서. 1천만이나 2천만명이 나오면 그들의 애로사항이 뭔지, 돈인지 항공좌석인지 불친절인지를 조사해서 해소하는 마케팅을 해야 한다. 마케팅 기본은 고객의 잠재수요를 파악하고, 지역별로 연령별로 고객관리가 되고 그에 맞춘 타깃마케팅이 굉장히 절실하다. 제주관광은 지금까지 이런 게 없었는데 타깃마케팅 계획을 세워 추진했으면 좋겠다.”

- 롯데정보통신도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제주에 거점지구 거점도시를 유치하는 게 중요한 과제다. 오 대표도 직접 앞장서 뛰고 있지만 어떤 노력들이 더 필요한지 조언해 달라.
“거점도시 유치는 긍정적으로 본다. 구좌읍 실증단지를 성공시키면 거점도시는 된다고 확신한다. 테스트베드가 여기 있기 때문에 잘 가꾸면 유리하다. 다만 제주도 차원에서 스마트그리드를 홍보해야 하는데 컨셉에 대한 공유가 부족한 것 같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스마트그리드 거점도시가 되면 저탄소, 카본프리아일랜드가 된다, 지구가 굉장히 뜨거워지는데 제주가 앞장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게 스마트그리드라고 언론이나 행정에서 적극 홍보해야 한다. 제주도민들이 정부지원에 열열이 감사하고 제주가 스마트그리드 메카 최적지라는 사실을 도민들이 홍보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서울과 제주출신 인맥을 잘 활용해서 시범도시 유치 활동을 시너지 나게 해야 한다. 나 역시 유치위원으로 활동하지만, 지경부나 소프트산업협회회원 7500개 회원사들을 나름대로 설득하고 홍보한다. 각계각층에서 해야 한다. 지경부 추진단, 스마트그리드협회에 적극 참여해서 제주의 정당성을 이야기 하고, 특히 G20 스마트위크를 빨리 선포해서 최대한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같은 기간에 열리는 올레길축제는 플랜카드도 걸렸지만 스마트그리드 위크는 홍보가 안 되고 있다. 제주중문단지나 신제주아파트단지 등 주거지역과 중요 밀집지여에서 에너지가 절약되고 CO2가 절감되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이슈다. 제주도민들이 한 방향으로 끌 고가면 나중에 굉장한 프로젝트가 선사된다.”

- 지난해에 이어 제2회 제주글로벌상공인대회가 17~19일 열렸다. 작년에 비해 도외 상공인들이 더 많이 참가하고 프로그램도 다양했다. 오 대표의 평가를 듣고 싶다.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이런 행사가 사실 어려운 이슈지만 글로벌 상공인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 3회는 더 많이 모일 것 같다. 첫 번째, 모이는 데는 성공했다. 두 번째, 모인 사람들이 얻은 게 뭐냐를 볼 때, 인맥이냐 정보냐 자부심이냐...정보라고 한다면 상공인들의 고민이 뭐고, 그것을 과연 공유했는지...조금 미흡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또 휴먼네트워크가 이뤄졌는가. 도외에서 300~400명 모였지만 저도 명함을 20여명과 주고받았는데, 다른 분들도 10명 내외에 그쳤다면 조직적으로 잘못된 것 같다. 내년에는 어떤 역할별로 테이블배치나, 업종별로 명함 교환시간을 갖는다거나...오신 분들이 정보공유와 인맥공유를 할 수 있는 장을 스스로 안되니 프로그램을 가동시켜야 한다. 지금처럼 모이는데만 신경을 쓴다면 식상해 질 수 있다. 모여서 나눈 대화와 인맥, 비즈니스 찬스가 회의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음부터 참석 안 할 수 있다 조직위에서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또 하나는 사후관리를 어떻게 할 것이냐. 오신 분들의 연령별, 직업별, 분야별, 자료를 피드백 해서 주거나, 단순히 ‘참석해서 고맙다’는 인삿말이 아니라, 설문조사를 해서 ‘얻는 점’이 뭐라는 피드백을 해 주고, 6개월 후에 내년에 가져가야 할 아젠다가 무엇인지 구상부터 해야 한다.
대회 내용에선 세 가지 포럼이 열렸는데, 이 포럼에 관련된 사람이 아니라, 비관련분야에서 관심을 가져 포럼에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들만의 잔치로 이뤄진다면 중요한 시간과 장소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예를 들어 금융포럼이라면 상공인대회 참석자만이 아니라 이 주제에 관심있는 도민들이 서서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가 개방돼야 한다.”

- 연령으로 본다면 사회인으로서의 활동이 이제 10년 남짓 남았다. 오 대표의 남은 바램,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먼저 4~5년 내에 우리나라 IT업계에서 소위 상위 5% 수준에 도달하는 게 1차적목표다. 그 다음으론 스페셜리스트가 되면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제주발전, IT업계발전을 위해 학문적으로 후학을 가르치는 여러 가지 케이스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한라산이 있다면 윗세오름 정도에 가면 한라산이 보인다. 윗세오름에 갔을 때 정확한 한라산, 백록담 정복 전략이 나온다. 정상의 꿈은 내 자신이 아직 확고한 게 아니지만, 1차적 목표는 IT업계 톱클래스에 오르면 제 경험을 많은 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후학에 관심이 많은 게 사실이다. 제안서도 만들어 보고, PT도 만드는 게 이를 위한 연습이다. 지금 90%는 됐는데 아직 10% 부족하다고 본다. 앞으로 남은 과제다. ” <제주의소리>

<이재홍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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