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샘물이 있어 불볕더위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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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장포 귀촌 이야기 4] 추억이 솟아나는 신례천 샘물 웅덩이

▲ 신례천 샘물 웅덩이 물이 맑고 차갑기 때문에 이 일대 주민들에는 피서지로 각광을 받는다. ⓒ 장태욱

여름에 이사를 한다는 건 자칫 짜증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다. 이삿짐을 옮기고 정리하노라면 등짝에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이삿짐을 정리하고 나면 마당 정비도 해야 했고, 이사 과정에서 생긴 쓰레기를 치우기도 해야 한다. 그리고 여름이라 하루에도 수십 센티미터씩 자라는 뜰의 잡풀들도 배어야했다. 올해처럼 불볕더위가 늦게까지 기승을 부린다면 괴로움이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가 귀촌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망장포에서의 생활에 한결 쉽게 적응할 수 있기까지, 마을 근처 냇가에서 솟아나는 샘물의 도움이 컸다. 우리집 근처에는 불볕더위를 한꺼번에 날려 보내고도 남을 만큼 차가운 샘물이 솟아 흐르고 있다.

최근 우리 가족이 새롭게 터를 잡은 망장포는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해안에 있는 마을이다. 조선시대, 이 지역은 호촌현에 속해 있었다. 호촌은 후에 예촌으로 개명되었다가, 신례와 하례로 분리되었다. 망장포는 하례에 속한 해안마을이고, 신례리에 속한 해안마을은 공천포다. 신례천은 한라산 자락에서 남쪽으로 바다를 향해 흐르는 동안 신례와 하례를 각각 동과 서로 구분하는 하천이다.

제주도의 대부분 하천이 그렇듯이 신례천은 대부분 구간이 비가 오지 않으면 바닥을 드러내는 건천이다. 그런데 이 하천이 바다에 채 다다르지 못한 곳에 맑은 지하수를 뿜어내는 샘물 웅덩이가 있다. 땅속에서 솟아난 샘물은 몇 군데 물웅덩이를 가득 메우고 나서 넘치는 분량만큼 바다로 흘려 보낸다.

▲ 진주 여성 전용 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있다. 아빠의 눈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다를 바 없다. ⓒ 장태욱

물을 뿜어내는 웅덩이는 둘레가 아담하고 그 주변은 나무로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샘솟는 물이 맑고 투명하여 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떠올리게 한다. 지하에서 솟아난 물이기에 하도 차가워 이곳은 예로부터 이 일대 주민들에게 피서지로 각광을 받아왔다.

하례와 신례는 중학교가 없는 마을이다. 과거 교통이 불편한 시절, 무더운 여름날 학교를 오가던 학생들은 잠시 이곳에 들러 차가운 물속에 몸을 담그고 나서야 더위를 이길 수 있었다. 대중교통이 일상화되기 전, 이 물웅덩이기 있었기에 학생들은 찌는 더위 속에서도 기쁘게 학교를 오갈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이곳은 50·60대 기성세대들에게는 추억이 솟아나는 샘터다. 

가정마다 샤워시설이 갖추어진 오늘날에도, 여름이 오면 이 일대 주민들은 어김없이 이곳 물웅덩이를 찾는다. 특히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하루 종일 농사일에 지친 농부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시설은 없다. 여기에 오면 몸도 씻고 더위도 날려 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가운 이웃을 만나서 오래전 추억도 함께 떠올릴 수 있으니 말이다.

주민들이 이곳을 사용하는 데도 남녀의 구분이 있다. 물이 솟아나는 웅덩이 중 북쪽 상류에 있는 곳은 여성 전용이고, 그로부터 10여 미터 남쪽에 있는 웅덩이는 남성 전용이다. 여성전용은 웅덩이가 반경이 좁은 반면 남성 전용은 넓다. 이곳을 찾는 이들 대다수가 남자들이기 때문에 넓은 곳이 남성 몫인 모양이다.

망장포와 공천포를 연결하는 잠수교는 이 웅덩이 근처를 가로지른다. 예전에 두 마을 주민들이 이 웅덩이를 공동으로 편리하게 사용하려 했음을 엿볼 수 있는 다리다. 우리집에서 약 200미터 거리에 있는 샘물 웅덩이로 인해 우리는 귀촌생활에서 활력을 얻을 수 있었다.

▲ 물놀이 집 근처 냇가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했다. 우린 이 냇가에서 도시 생활에 대한 미련을 말끔히 씻어버렸다. ⓒ 장태욱

이 마을로 이사를 온 후, 내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를 보여주었을 때,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우린 다른 사람들이 몸을 담그지 않는 얕은 물가에서 마음껏 물놀이를 했다. 다니던 학교에 대한 조금의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 딸 진주도 이 냇가에 몸을 담그고 나서는 새로 이사 온 집의 모든 게 마음에 든다고 했다. 우린 시내 생활에 대한 미련을 이 시원한 물가에서 모두 씻어버렸다.

내가 귀촌을 결심하면서 품었던 가장 중요한 의도는 아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해야겠다는 거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주변의 작은 것에 대해 관심을 품고, 그것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서 의도했던 것들이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직 망장포에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이 남아있고, 그 속에는 이전 세대들이 남긴 삶의 체취가 짙게 배어 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자연과 어울릴 수 있는 순수함이 남아있다. 우리의 귀촌이 너무 늦지 않아 여간 다행인 게 아니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기사입니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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