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작품공모 시조부문 당선...'자벌레 보폭으로'외 4편스승 등단 후 10년만 같은 공모전서 등단 눈길

▲ '현대시학' 신인작품공모 시조부문에 당선된 강은미 씨. ⓒ제주의소리
월간 시 전문지 ‘현대시학’ 제22회 신인작품공모에 제주출신 강은미씨의 ‘자벌레 보폭으로’ 등 4편의 시조가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강 씨의 당선은 오랜시간 시조 부문에서 당선작을 내지 못한 ‘현대시학’의 체면이자 단비다. 작품 수준의 미달로 현대시학은 오랫동안 ‘시조 부문 당선작 없음’을 내걸어야 했었다.

‘현대시학’은 박두진, 박목월, 구상, 김춘수 등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이 중심이 돼 1969년 창간호를 냈던 역사 깊은 시 전문지다. 제주대학교에서는 김종태 독문학과 교수가 2001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데 이어 그의 제자인 강은미 씨가 10년만에 같은 공모전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해 눈길을 끈다.

당선작으로 선정된 강 씨의 시는 ‘자벌레 보폭으로’와 ‘겨울삽화’, ‘바위섭’, ‘LP로 오는 봄’, ‘달이 한참 야위다’ 5편이다.

‘움츠리면 몸이었고 쭉 펴면 길이었을’로 시작되는 대표시 ‘자벌레 보폭으로’에 대해 심사위원 김영재 시인은 “길(路)에서 길(道)을 찾는 체화된 시학을 펴 보인다”고 말했다. 꽁무니를 머리쪽에 갖다 댔다가 몸을 쭈욱 늘리는 자벌레의 움직임을 ‘길’이란 시어로 연결시킨 강 씨의 통찰력에 대한 찬사다.

김 시인은 또 “이만한 가락 타기와 호흡이면 시인의 길을 훌륭하게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애정어린 한마디도 덧붙였다.

또다른 강 씨의 당선시 ‘겨울삽화’는 중산간 어디쯤에서 본듯한 제주 겨울의 풍경을 시어로 붙잡았다. ‘햇살 한 줌 바람 한 줌/하루 한 끼로 사육되는/번영로 삼나무 숲이/아랫도릴 보인다’ ‘먼발치 오름딜이/오래 참던 눈발을 부를 때/까맣게 원심력 키우는/아, 저기 바람까마귀!’와 같은 시구들은 시어로 그림 그리듯 한다.

▲ 현대시학 10월호에 강은미씨의 당선작이 실렸다. ⓒ제주의소리
시인 강 씨는 언제나 걷고 있다. 자벌레가 되었을 때 느리지만 산 하나를 넘겼고, ‘길이 되기 위해 생의 날줄을 지우리라’(‘겨울삽화’)하고 생각하던 때에도 그는 번영로에서 삼나무들을 만나고 있었다.

강 씨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그렇게 막막했다. 하지만 걷는 자에게만 별도 달도 보인다는 믿음, 그 안에 내가 숨어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며 “그 희망의 불씨에 큰 힘 하나 더 보태 주는 행운이 또한 내려졌다”고 말했다.

글쓰기란 “삶의 군더더기를 깎아내리는 것과 같다”는 강 씨는 “이 세계를 이루는 모두가 나의 스승이며 좋은 벗이라는 걸, 다시 시작하는 길 앞에서 밝은 눈과 맑은 가슴으로 세계를 마주하겠다”고 말한다.

강 씨는 현재 제주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동인 ‘젊은시조문학회’ 창립멤버기도 하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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