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스님의 편지] 그래도 저는 다 주고 갈 것입니다

▲ 덩그런 마당을 해바라기가 지키고 서 있습니다  ⓒ제주의소리 / 사진=오성 스님

한참을 걸망 메고 돌아다니다 귀가하니
덩그런 마당을 해바라기 몇이 지키고 있습니다.
햇살 한 아름 안은 씨방을 보듬어 안고
서있기 조차 힘든 사그라지는 지친 육신으로
인정 없는 주인의 귀가에 허리를 펴 고개를 숙입니다.

저는, 지난 무더운 여름 한낮 더위에도
목마르단 원망 없이 햇살 끌어안았고 
비바람 치는 밤
누구하나 붙들어주는 이 없어도
거친 땅에 뿌리 단단히 박고
지나가는 바람의 위안에 노란 미소를 지으며
저렇게 서 있었습니다.

▲ 누구하나 붙들어주는 이 없어도… ⓒ제주의소리 / 사진=오성 스님

저 고생 모르는 얌체 같은 주인
씨방을 벽에다 걸어놓고
늦가을 정취에 빠진
내방객들에게 몇 알씩 털어서
선심을 쓸 것입니다.
이렇게 나는
오늘, 무심해진 믿음의 일상에 길들여지고
내일, 감사함도 무디어질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다 주고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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