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출신 방송작가 고봉황 첫 장편소설 '비바리' 출간3대에 걸친 제주여성의 굴곡진 삶과 사랑 그려내

   
근검하고 강인한 삶은 제주여성의 표상이 됐다. 거친 바다밭을 일구는 동시에 돌밭을 일궈왔다. 또 해녀항일운동을 통해 불의에 저항하는가 하면 제주4.3의 광풍이 지난 후 제주를 재건하기도 했다.

그녀들에게 사랑은 없었을까?

1970년 제주에서 태어나 글쓰기가 좋아 서울로 상경, 방송작가를 하고 있는 고봉황 작가는 역사 소용돌이 속 제주여인에게는 불꽃같은 사랑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최근 써낸 책 ‘비바리’는 3대에 걸친 제주여성들의 삶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과 사랑을 두 축으로 역동적인 스토리 전개로 그려냈다. 단적으로 말하면 한국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만들어졌다.

남북전쟁이란 역사적 배경은 제주4.3과 한국전쟁으로 바뀌었고 굴곡진 운명을 견뎌내야 했지만 자신의 사랑만은 포기하지 않았던 스칼렛 오하라는 모진 운명을 견뎌내는 제주여인 송지하가 됐다.

이야기는 1948년 송지하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200여년간 대대로 제주도 목장을 감독하는 감목관직을 이어받아온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미군에 결탁한 경찰들이 이 땅을 호시탐탐 노리다 시국이 어지러운 틈을 타 땅을 빼앗는다. 

지하는 무장대 활동을 하던 부시원을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없이 경찰과 결혼하게 된다. 그 와중에 제주4.3이 발발하고 가족과 사랑과 자식을 모두 잃고 목장도 불바다가 된다. 지하는 불굴의 집념으로 빼앗긴 땅을 하나하나 되찾아 간다.

극적 전개 곳곳엔 제주역사에서 벌어졌던 실화들이 오버랩 되며 사실적 터치를 더했다. 송지하가 애착을 갖고 다시 돌려받으려는 수망리 목장은 실제로 제주에서 대대로 임금에게 진상하기 위한 말을 길러오던 곳이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헌마공신은 실제 인물인 김만일(金萬鎰.1550∼1632)이다.

제주4.3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진 않지만 소설 곳곳에선 4.3 당시 학살 장면을 묘사해 보여주고 있다. 송지하는 사랑하는 남자 부시원을 찾기 위해 한라산을 오르다 우연히 토벌대에 의한 잔인한 학살 장면을 목격한다.  “곧 온 산을 뒤흔들 듯 큰 폭발음이 울렸다. 동굴 입구는 산산이 무너졌다. 그러나 동굴 안쪽은 멀쩡한 것 같았다. 군인 하나가 연막탄에 불을 댕겨 동굴 안으로 던져 넣었다. 연기를 참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둘 동굴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들은 바깥세상의 빛을 보는 것과 동시에 총알 세례를 받아야 했다. 군인 무리의 우두머리쯤 되는 이가 말했다. ‘몇은 살려놔. 다른 은신처를 불게 해야 하니까’. 동굴 앞에는 어느새 열댓 명의 주검이 돌무더기처럼 쌓였다”

작가 고봉황은 "자라면서 함께 살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사람들과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작가가 태어나던 해에 독일 간호사로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깊게 새겨졌기 때문일 터다.

그녀에게 제주는 곧 ‘제주여자’였다. 제주의 아름다움 이면에 있는 ‘한의 역사’를 말하고 싶었다. 지금의 제주를 있게 한 데에는 굴곡진 역사 앞에 당당히 맞섰던 ‘제주여자의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 송지하가 유지의 딸로 설정돼 있어 제주여인 전체를 오롯이 대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제주역사 그리고 그 속의 제주인의 이야기를 극적인 구성으로 만들어내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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