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미래는 '역지사지 인재확보'다

예나 지금이나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담보하고 지속적인 사회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핵심과제다. 고려시대의 ‘국자감’, 조선시대의 ‘성균관’ 같은 곳이 바로 국가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우리 조상들이 만들었던 교육기관들이다. 국자감과 성균관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국가는 생활비를 지원했고, 또 뛰어난 학자들을 배치하여 젊은 선비들의 학문 연마를 적극 지원했다.
 
 해방 후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도 정부가 서울대 등 국립대를 잇달아 설립했던 것도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또 625 전쟁이 터졌을 때, 대학생들에게 징집 면제의 혜택을 주고, 부산에 전시연합대학을 만들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다.
 나라 간의 국경이 무너지는, 요즘과 같은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인재 육성은 문자 그대로 국가의 사활(死活)을 결정하는 핵심요소가 되고 있다. 아이팟(MP3), 아이폰(스마트폰), 아이패드(태블릿PC)를 개발하여 미국 IT산업의 부흥을 가져온 스티브 잡스 애플사 회장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스티브 잡스 한사람이 미국 IT업계에 창출한 일자리가 무려 100만개에 달한다고 한다.

 “똑똑한 인재 한 명이 수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말이 공연한 말이 아닌 것이다. 사실 2류 전자업체였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최근 3~4년 사이에 일본 전자업체들을 물리치고 세계 IT업계의 최강자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도, 뛰어난 인재를 많이 확보한 덕분이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녹색성장’ 패러다임이 부각되면서 태양광 발전, 2차 전지, 글로벌 바이오신약 등이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새로운 산업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신규 프로젝트 추진과 관련해 재계에선 “수퍼스타급 해외인재를 대거 스카우트 해야 한다” “중국처럼 해외과학자들을 국가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해외에 있는 우리나라 학자들이 이런 호소에 얼마나 응할지는 미지수이나, 고급 인재의 확보 없이는 새로운 산업의 육성이 매우 어려울 것임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이다.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이, 세계가 지식기반 사회로 급속히 전환하면서 고급 인력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물적 자원이 부족한 나라는 더욱 그러하다. 스티브 잡스의 사례를 보면 뛰어난 인재들이 일자리 창출에 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국부축적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세계 여러 나라들이 고급 두뇌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인재 육성은 국가(nation) 차원뿐만 아니라, 지역(region)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중국 상해와 일본 도쿄, 대한민국 서울이 동북 아시아의 경제중심지 자리를 놓고 현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세금을 깎아주고, 외국인을 위한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고 있는 것은 이런 경쟁 속에서 나온 조치들이다.

 그러면 우리의 제주는 현재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 제주도가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고급 두뇌의 육성과 글로벌 인재의 수입이 더욱 활발해져야 할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제주도는 현재 인천 경제자유구역 등 경쟁상대의 약진과, 한유럽연합(EU) FTA 체결 등 새로운 도전들을 극복하고 특별자치도 체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선진(先進) 제주를 건설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 처해있다.

 한국은행 제주본부 조사에 따르면, 제주지역의 인적자본지수는 1990년대 중반까지 전국 평균 수준을 유지하였으나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타 지역과의 격차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지금처럼 전국 평균치보다 크게 낮은 수준에 있는 상황이 오래 계속될 경우, 우리 제주 지역의 성장 동력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제주 지역과 다른 지역 간의 인적자본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데는 구조조정 요인, 산업구조 특성, 실질임금 및 노동생산성 차이 등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제주 경제가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교육 등 인적자본 투자의 확대를 포함하여, 다음과 같은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과정에 이르기까지 고급 인력의 공급 파이프라인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투자를 실시해야 한다. 특히 각 교육과정에서 잠재력이 뛰어난 우수한 인재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전문능력에 대한 영재성을 계발하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둘째, 노동의 이동성이 높아져가는 글로벌 경제 시대에서 우수인력의 유입은 인력부족의 해결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미국이 현재 세계 제일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세계 각국의 우수한 인적자원이 이민을 통해 미국으로 계속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도 도외에 거주하는 출향(出鄕) 인력은 물론, 도외 지역의 우수인력이 제주로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긴요하다. 차제에 제2의 인생을 제주도에서 설계하고 싶어 하는 전문직 은퇴자들을 제주로 대거 유치하는 범사회적 ‘귀향문화 착근운동’을 추진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도내외에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이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앞에 제시한 두 가지 방법은 장기적인 막대한 투자 및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며, 설사 성공한다 하더라도 인적자본 축적에 불리한 여건이 조성되면 고급인력의 유출을 막을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현재 제주가 처해있는 열악한 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인프라를 고려할 때, 도내외의 전문가 집단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제주의 관계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소위 ‘네트워크 활용방안’이 비교적 단기간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선택이 될 수가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암시하는 것처럼, 지금 제주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네트워크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도서지역의 폐쇄적 특성에서 형성된 제주 특유의 강한 배타적 자주문화는 네트워크의 실효성을 저하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러한 자주문화는 나름대로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경이 무너지는 ‘세계화’, ‘개방화’ 시대에서는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네트워크를 제주 발전의 단초로 활용하려면 제주 지역사회가 배타적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역지사지(逆地思之)의 자세로 수요자 중심의 시스템을 마련하고 열린 마음으로 포용하는 세계시민문화의 형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역 현안의 해결을 위한 정책협의체 결성에 있어서도 효율성이 떨어지는 지금의 수직관계의 민관 협의체 네트워크보다는 민관이 대등한 위치에서 문제를 논의․협력할 수 있는 수평적·집단적 협력체제를 구축하여야 한다. 제반 정책의 수립단계에서부터 민간부문의 효율성을 관료조직에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정책 추진의 능률을 보다 더 높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여러 분야의 네트워크 전문가들과 도정 당국자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정책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갈등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어, 도정수행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민관 협의체 구성에는 외지인의 비율을 높여 정책수립 및 집행에 다양성을 반영시키는 투시도법의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

 최근 제주는 무척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동쪽 끝에서 일출(日出)을 보며 출발한 ‘올레길’이 낙조(落照)의 서쪽 끝을 돌아 북쪽 해변과 오름에까지 다 달았다. 또 번영로가 세계로 향하는 대동맥으로 점점 넓게 소통되고 있으며, 첨단과학기술단지, 영어교육도시, 예래휴양형도시 등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는 '너무 느리게 간다'라는 생각과 우려를 지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소모적인 논쟁으로 타이밍을 놓쳐 좋은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거나 유리했던 입지가 좁아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도민들이 공동목표를 향해 집결하고 협력하기보다는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배타하며, 세상사의 여건변화에 맞추어 신속히 대응하고 수용하는 능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아집(我執)과 습속(習俗)에 묶인 과거의 사고와 방식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강인한 고집과 절개가 내란(內亂)과 외환(外患)으로부터 제주도를 지켜낸 근력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는 좋든 싫든 지구촌 시대를 맞아, 세상의 문이 서로에게 활짝 열리는 글로벌 개방시대가 시작됐다. 글로벌 개방시대는 유연성을 요구한다.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긍정적인 사고에서 표출되는 흡인력으로 융화할 수 있는 아량과 포용력 있는 그릇을 원하고 있다.  이처럼 여건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선도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나는 ‘미래의 인재’라고 부르고 싶다. 제주도가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들을 자체 발굴·육성하고, 우수한 인재들이 도내로 원활하게 유입되도록 해야 한다. 또 이러한 인재들을 제주 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합심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우수한 인재도 주위의 협력과 포용 없이는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시대는 계곡을 굽이치며 흐르는 격량(激浪)처럼 우리 제주인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가 격랑의 물결을 잘 타면 무사히 목표에 도달할 수 있으나,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난파하게 될 것이다. 우리 제주 도민들이 겪었던 과거 역사의 교훈들을 한 번 반추(反芻)해볼 필요가 있다.

▲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제주 사회는 이제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를 넘어 ‘제아무리 큰 돌덩이라도 맞들면 못 움직일 것이 없다’라는 신념으로 뭉쳐야 한다. 그리고 이유야 어찌됐던 이제는 용역이나 구색 맞추기에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전문가를 활용하여 실천에 들어가야 할 때다. 이것이 바로 제주도가 지금 인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   고운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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