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제주 자활후견기관의 '함께 나누는 밥상'

   
매주 금요일이면 만나는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북제주군 자활후견기관에서 지역의 독거노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함께 나누는 밥상'이라는 행사를 매주 금요일 김녕해수욕장이 보이는 작은 식당에서 여는데 그 곳에서 교통봉사를 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맨 처음에는 서먹서먹하고, 놀이시간에는 할머니들이 놀이판을 휘어잡아 할아버지들은 머쓱하니 잔디밭에 나가 담소를 나누시거나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곤 하시더니 만남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조금씩 할아버지들의 영역을 넓혀갑니다. 그래도 아직은 무슨 목욕탕에 온 것 마냥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따로따로 앉아서 식사를 하시는 것은 여전합니다.

그 날(17일/금)은 점심식사를 하기 전부터 분위기가 조금 달랐습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 모두 때때옷을 입고 오신 것이야 늘 그렇지만 빨간 조끼를 입고 오신 할아버지 한 분이 하모니카를 꺼내 연주를 하시며 분위기를 잡아 보시려고 무진 애를 쓰십니다. 그러나 1차 시도는 실패, 오랜만에 만나 소식을 나누는 대화소리에 하모니카의 선율이 파묻혀 버렸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2차 시도,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난 주 까지는 주로 할머니들만 노래를 하시고, 춤을 추셨는데 할아버지들도 기웃거리고 결국은 "누님, 나랑 춤 한번 춥시다게!"하며 동생(?)들의 재롱이 시작되면서 뜨거운 열정의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마이크만 갖다 대면 그 누구도 거절하시는 분이 없었습니다. 마이크만 갖다대면 척척 노래를 하시고, 구성진 가락으로 심금을 울립니다. 그런데, 노래방 기기에서 나오는 반주, 노래, 춤 하나도 맞는 게 없는데 신기하게도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모릅니다. 노래방 기계에서는 팡파레가 울리고 노래하신 분들은 환호합니다.

   
이 할아버지가 바로 오늘 하모니카를 들고 오셨던 주인공입니다. 빨간 조끼를 벗어 던지시고는 춤이며 노래며 종횡무진 할머니들 앞에서 재롱을 부립니다.

"동상, 잘한다!"
"누님, 나랑 땡기실라우!"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의 연세는 아무리 넉넉잡아도 고희(古稀, 70세)가 안 되셨을 것 같고, 그 분이 누님이라고 하신 분은 낮춰 잡아도 희수(喜壽, 77세)가 넘으신 듯 하니 할아버지에겐 연상의 여인이요, 할머니에게는 연하의 남자입니다. 사진을 찍다말고 너무 웃겨서 '풋!'하고 웃음이 났습니다.

   
그 분들을 보면 그리움이라는 그림자를 늘 마음에 품고 살아가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모시곤 다니는 할머니 한 분은 매 주일 만날 때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를 한 번씩은 꼭 합니다. 이번 주에는 맘먹고 녹음을 했습니다. 제주에 정착한지 올해로 55년째, 해남 땅끝마을에서 1950년 이 곳 제주땅에 정착하셨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영감님이여, 여기 제주도에 살았어도이 참말로 멋쟁이었는데 3년만 더 살았으면 좋았을 거인데, 갑자기 가버렸어. 그 놈의 암 때문에...어딜 놀러가도 멋지게 하고 당기고, 세화만 나가도 멋 부리고 다니던 양반인디..."

어쩌면 그렇게 멋 부리고 다니는 것 때문에 맘 상하는 일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그렇게 마음에 품고 살아가시는 할머니를 보니 부부의 사랑이란 그런 것인가 봅니다.

   
창을 구성지게 하시는 할머니, 그 분들의 노랫가락에는 삶이 묻어있습니다. 그 노래의 내용이 무엇이든지 상관이 없이 그 노랫가락이 구성지니 참 아름답습니다.

'닐리리야'라는 후렴구 외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사투리로 부르는 노래,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노래방 기기에서 나오는 노래보다도 더 신나게 춤을 추시며 신나게 춤을 추십니다.

한 번 잡은 마이크, 할머니는 3절까지 하셨고 거듭되는 앵콜에 똑 같은 노래로 3절까지 화답을 하셨습니다. 다리가 불편하셔서 의자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시는 할머니, 얼마나 그 목소리만큼은 꼿꼿하다 못해 제주인들의 삶을 보는 듯 해서 숙연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그 곳에 오실 때에는 때때옷으로 갈아입고 오십니다.
"무척 예쁘게 입고 오셨네요?"하면 "이럴 때 새 옷 입지, 언제 입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움직일 수만 있으면 텃밭에라도 나가 일하시는 분들이시니 새 옷 입어볼 겨를도 없으셨을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식사하시고 잠깐 놀다 가실 것인데 뭐 그리 예쁘게 차려입고 오시나 의아했는데 이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만남의 횟수가 잦아질수록 더 신명나는 잔치판이 벌어질 것입니다. 홀로 외롭게 살아가시는 어르신들, 그 분들이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전화로만 만나는 부모님들을 떠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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