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영의 뉴욕통신] '환란' '믿음' 그리고 '소명'

지난 연말 몸이 하도 피곤하여 주치의 선생님을 찾아갔다. 혈액검사결과 전립선 수치(PSA)가 정상보다 훨씬 높게 나와서 비뇨기과 전문의에게 의뢰되어 정밀검사를 받았다. 조직검사(biopsy) 결과 암이란 판정을 받았다.

검사결과를 복사해 달라고 사무원에게 부탁하면서 대기실에 혼자 앉아 곰곰히 '묵상'하고 있었는데, 주치의 선생님이 나와서 나의 어깨를 두들기면서 "너무 염려하지 말라"셨다.

전립선 절제수술을 받으면 3~4일 후면 괜찮아진다고 했다.

나의 아내는 마침 '건강식이요법'을 공부하고 자신에게 실천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나에게 적용할 절호의 기호가 왔다면서 '환영'(?)하는 표정이었다. 실습대상 1호를 만난 셈이다.

이제까지의 보통 식사습관(주로 한식)을 새로운 리스트에 짜여진 메뉴식으로 갑짜기 변경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을 먹는 사람보다 준비하는 사람이 더 고역이었다.

한 3개월하고 나니 과체중이었던 몸이 정상체중으로 호전되면서 기분도 많이 전환되었다. 기대를 잔뜩하면서 주치의를 찾아가서 혈액검사를 부탁했다.

그러나 검사결과는 전립선 수치가 급상승, 이제는 "수술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럴 수가...' 황당했다. 나 자신보다 내 아내가 더 황당해했다. 장담을 하던 일이 이 결과로 나왔으니.... 주치의의 권고를 거역하고 멋대로 하다가 치료받을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고 탄식했다.

나는 나의 아내를 진정시키느라 더 애를 먹었다. 인간들의 '지혜'에는 항상 '한계'가 있는 법이요....전립선 절제 수술을 당시에 받았다고 해도 거기에도 '성공' 확률이란 게 있는거요...좀더 기다려 봅시다 분명 우리에게 주어지는 '메시지'가 있을 터이니....

수많은 분들이 이 소식을 듣고 기도로 격려로 물질로도 후원해 주셨다. 멀리 켈리포니아에서 전갈이 왔다. 롬마 린다라는 대학병원에서 새로운 치료법이 시행중인데 치유 성공률이 대단히 높다고 했다. 그 방법은 일종의 방사선치료법인데, 부작용이 가장 적은 '프로톤'(Proton) 조사(쬐기)방법이라는 것이다.

그 치료를 받기 위해서 전세계에서 암환자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한달 이상씩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던 끝에 내 딸이 보스톤에 있는 한 병원(Massatusatts General Hospital, 하바드 의대부속)에서 똑같은 시술을 한다는 사실을 찾아내고 전문의와 연락이 닿아서 지난 금요일(17일) 접견을 했다. 나의 두 딸(주희, 석희)이 번갈아가면서 차를 운전도 하면서 왕복 8시간이 넘는 머나먼 병원길을 다녀왔다.

프로톤 조사법은 뇌와 눈 그리고 어린이 암 치료에는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지만 전립선 암의 경우는 전통적인 방사선치료법과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지 못한다....멘해튼에 있는 한 암전문센타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소견을 내었다. 돌고 돌아서 '원위치'한 셈이다.

현재 내가 받고 있는 호르몬요법이 주효하고 있고 전립선 크기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촉진'(손가락을 항문에 넣어서 만져보는 진단법) 결과를 알려주었다. 호르몬요법을 한 4개월하고 나서 방사선치료를 받으면 치유가 될 것이라고....

이 잠정 결론을 받기까지 나와 내 가족들은 '환란'가운데 있었다. 아마도 "모진 '광풍'에 휩싸여 지냈다"라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그러나 나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는 '믿음'으로 꾸준하게 정진해오고 있다.

"하나님, 지난 번(1995년 12월) 폐수술 받았을 때에도 9년 '집행유예'를 주셨는데, 이번에는 10년만 주셔요!" 주실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는 동안 지난 5월 초 '제주4.3항쟁' 조사연구로 인연을 맺은 연세대 박명림교수로부터 제안이 왔다: 연세대 부속 김대중 대통령 도서관 사료수집 미국책임자(연구교수직)로 일할 수 있는지, 건강이 허락하는지.... 흔쾌히 수락했다. 아, 이게 나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소명'이구나.

나에게 지난 번 닥친 '환란'(폐수술 회복도중 어머님을 먼저 보냄) 가운데서도 탐라대학으로 나를 불러내고 중대한 '소명'을 맡겨주셨었는데....이번에도.

3주전부터 연봉도 받고 거처할 좋은 집도 받고 메릴랜드 주 College Park 소재 미정부 문서보존소에서 활동을 재개했다. 꿈만 같았던 내 소원이 상당히 짧은 기간내 급속도로 이뤄져 나갔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Dream comes true."

나의 친지들에게는 [환란과 믿음과 소명]이란 제하에 "촛농이 마지막 심지를 태우는 심정...."이라고 이멜을 날렸다.

나는 평소에 "주님, 나의 앞길을 평탄케 하여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은 항상 그 반대로 왔다. '평지풍파'가 일어났다. 아마도 주님의 높은 뜻은 '평지'로 가면 너무 늦기 때문에 풍파를 일으켜 골짜기는 피하고 그 높은 곳만 달려가게 하시는가 보다. 그게 바로 '축지법'이란 것을 새삼 깨닫는다.

'진실추구'를 향한 한걸음을 힘차게 내디디면서...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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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오늘이 '아버지 날'이랍니다.

'아버지!'하고 외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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