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35) 자연의 품안에 터를 잡다 - 신풍리 검은데기불턱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검은데기불턱 ⓒ제주의소리

제주여성들은 밭일과 바닷일 두 가지를 다 한다. 신풍리 여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신풍리는 해안에서 3~4km나 되는 거리지만 걸어서 물질을 다녔다.

신풍리 상동인 경우 70대 이상인 사람 중에 몸이 불편한 어르신을 빼고 어촌계나 수협에 조합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조합원은 해녀증이 발급되면 병원 무료진료도 되고 바다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조합을 탈퇴하는 순간 바다에서 나는 어떤 것도 잡을 수 없게 된다.

신풍리도 한때 100여 명이 넘은 해녀들이 있었다. 물질을 끝내고 신풍리마을로 돌아오는 풍경을 상상해 보면, 마중 나간 남편들이 짐을 들어주고, 물질로 지쳐 있으나 여성들은 왁자지껄 시끄럽고,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 다니며 엄마 아빠의 뒤를 쫓아오고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바다의 길이가 짧았던 신풍리는 서쪽으론 신천리와, 동쪽으론 삼달리하고 바다 경계를 두고 여러 차례 싸움이 있었다. 검은데기불턱은 신풍리 큰개 포구 앞에 위치해 있다. 신풍리 하동 탈의장에서 서남쪽 바다 쪽으로 보면 사각형 주택의 담처럼 보이는 것이 불턱이다. 원래는 담이 없었는데 마을에서 해녀수가 점점 늘어가자 일제강점기에 마을사람들을 동원하여 만들었다.

신풍리 바닷가는 큰 바위들이 없이 평평한 암반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지형지물을 이용한 자연 불턱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잠수들을 보고 오구장이 창안해 낸 것이다. 이 불턱은 물질하고 나온 잠수들이 작업하기 좋은 위치에 설치되어 있으며, 불턱 입구에 옹벽이 있어 밖에선 보이지 않아 여성만의 공간으로 최고이다. 불턱은 여성들이 언 몸을 녹이고, 옷을 갈아입는 탈의장이자 놀이터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현대식 탈의장이 건립되고, 야외 불턱은 외면당하고 있으나, 검은데기불턱만큼은 보존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지역 사람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활용 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 / 김은희

*찾아가는 길 - 신풍리 일주도로 ‘우물안개구리’식당 옆길 → 포구, 신풍리해녀 탈의장 200m 지점

<본 연재글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엄격히 금지합니다. 본 연재글의 저작권은 '제주발전연구원'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