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걸린 딸 놔두고 친구와 술... 아빠를 거부하는 아이에게 사과했습니다

선생님놀이 하는 지운이 지운이는 집에 오면 거의 매일 이렇게 선생님 놀이를 합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흉내를 아주 세밀하게 하길 좋아합니다. 어제 저녁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 강충민

딸 지운이가 감기에 걸렸습니다. 그제 아침에 일어나면서 목 아프고 열이 난다고 했습니다.

올해로 일곱 살인 우리 딸 지운이는 유치원생입니다. 유치원에는 출근길에 각시가 데려다 주고 있습니다. 각시의 직장이 지운이의 유치원과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부랴부랴 저는 밥에 물을 넣고 흰죽을 끓여 몇 술 일부러 먹였습니다. 소아과에서 진찰받고, 약을 먹으려면 그래도 조금이라도 먹여야 될 거라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렇게 지운이는 유치원 가는 길에 엄마와 소아과를 먼저 가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저는 하도 그 모습이 애처롭고 안쓰러워 아파트 주차장까지 업어 주었습니다.

딸은 아팠고, 나는 친구와 술을 마셨고...

회사에 출근해서는 각시에게 전화를 해 소아과 갔다 온 얘기를 물었습니다. 각시는 약을 처방 받았다고 했고, 물을 자주 먹이고 밤에 열이 많이 나면 미지근한 물로 몸을 닦아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유치원 선생님에게는 수면실에 좀 재워달라고도 했답니다. 그리고는 전화를 끊으며 집에 일찍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애도 아픈데..."라고 하면서요.

그렇지요. 어린 딸이 아팠는데 당연히 일찍 들어가야지요. 아니 늦게 들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저는 딸을 아주 끔찍이 사랑하는 다정한 아빠니까요.

적어도 각시와 전화 통화를 하고 끊은 뒤 한두 시간 동안은요.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나고 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이 따사로워 좋았고, 하품을 연신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퇴근 후 제주도에서 삶은 돼지고기를 말하는 '돔베고기'에 소주 한 잔 하자는 친구의 전화에 저는 바로 "콜" 했습니다.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을 무렵, 각시에게 전화해서 아주 급한 일이 생겨 조금 늦겠다고 했습니다. 각시는 제 말에 크게 반응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알았다고만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술을 마셨습니다. 고백하건대 친구에게는 지운이가 감기 걸렸다는 얘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돔베고기에 소주를 먹고 입가심으로 생맥주를 마신 후 그렇게 친구와의 술자리를 끝냈습니다. 그래도 평소보다는 덜 마신 셈이지요.

딸은 저를 강하게 밀쳐 냈습니다

집에 들어서니 비로소 걱정이 되었습니다. 슬그머니 방문을 열었습니다. 딸의 머리 위에는 수건이 올려져 있었고, 구석엔 수건이 잠긴 대야도 있었습니다. 딸은 엄마의 손을 잡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기침을 많이 했는지 숨소리가 많이 거칠었습니다. 슬그머니 한방에 있는 아들 옆에 누웠는데, 조용히 각시가 얘기했습니다.

"애 아픈데 꼭 술 마셔야 돼?"

그 말에 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조금씩 잠이 들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딸은 자지러지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기침이 멎음과 동시에 크게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전 벌떡 일어나 딸을 달래고 가슴을 조금 두드려 주려고 딸 곁으로 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딸은 저를 보더니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는 화들짝 엄마의 품속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안돼!  싫어! 아빠 오지마! "

그리고는 무엇에 크게 놀란 듯 숨 넘어가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술이 다 확 깼습니다. 저는 멈칫하다 다시 아들 옆으로 돌아와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었고, 토닥토닥 딸을 토닥이는 각시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토록 강하게 아빠를 거부하는 지운이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잠이 들었습니다.

일곱 살 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다

술 마신 다음날(어제) 언제나처럼 전 제일 늦게 잠이 깼고, 다행히 지운이는 많이 나아 있었습니다. 식탁에서 씩씩하게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참 어색하더군요. 하루를 쉬자는 각시의 말에도 지운이는 유치원에 가겠다고 해서 집을 나섰습니다. 전 모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참 쓸쓸해졌습니다.

걸어서 출근하는 터라, 평소 아들 원재와 집을 같이 나섰습니다. 그냥 잠자코 걷는데 원재가 한 마디 합니다.

"아빠, 어제 아빠가 저녁에 술 마시러 갔을 때 지운이가 얘기했어. 술 마시고 들어와서 우리 지운이, 지운이 하는 거 싫다고... 그래서 엄마가 달랬어. 오늘은 아빠 거실에서 잘 거라고... 그리고 어제 지운이가 아빠 싫대. 엄마와 싸울 때 엄마한테 소리 빽빽 지른다고..."

▲ 위 사진: 일곱살 딸에게 쓴 사과편지아빠의 진심을 담아 사과편지를 썼습니다. 아빠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래 사진: 귀찌선물포장과 사과쪽지 귀찌를 예쁘게 선물포장하고 편지도 쪽지로 접어서 딸에게 줬습니다. ⓒ 강충민
원재는 이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원재의 말에 무언가 강한 둔기로 세게 얻어 맞은 것 같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아, 지운이의 무의식이었구나...

"나도 가끔 아빠 무서울 때 있어. 이유도 안 물어보고 큰소리 치고... 인상 쓰면서 집에 들어오면 슬금슬금 눈치보게 돼... 물론 좋을 때가 더 많지만... 지운인 아직 어리잖아."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의 끝말은 저를 위로하는 말이지만 그 말이 참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맞습니다, 가정적인 아빠는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습니다. 애들에게 신경 쓴답시고, 직접 해 먹인다고, 애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먼저 큰소리를 앞세웠습니다. 찬찬히 들어주기 보다는 제 생각 먼저 강요했습니다. 각시에게도...

회사에 출근하고 의자에 앉았어도 온통 머릿속이 그 생각뿐입니다.

그러다 지운이이게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정성을 다해 아빠의 미안한 마음을 간결하고도 쉽게 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액세서리 가게에서 귀찌를 하나 샀습니다. 편지와 같이 줄 요량으로요(귀찌는 제가 지운이에게 평소에 자주 사주고, 지운이도 좋아하는 선물입니다).

▲ 귀찌를 하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다행히 감기도 나아졌고 귀찌를 하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잠잘때도 하고 잔다고 하더니 상한다는 소리에 금방 풀고 보관했습니다. ⓒ 강충민

어제 저녁 퇴근 후 지운이에게 지금까지 "아빠가 술 먹고 깨운 것, 큰 소리 친 것"을 사과했습니다. 그리고는 편지와 함께 포장한 귀찌를 전달했습니다. 지운이는 "아빠 괜찮아"하며 귀찌를 보더니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습니다. "우와 예쁘다" 하면서요.

저녁을 먹은 후 저와 원재, 지운이는 책을 읽고, 각시는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순간 각시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각시가 저를 보고 한 마디 합니다.

"애니까 그냥 넘어가는 거야..."

▲ 화해기념 비행기 놀이 화해는 어쩌면 저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애들은 언제나 부모를 주는 대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 강충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주참여환경연대 12월호 소식지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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