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37) 표선리 당케할망당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당케할망당 ⓒ양영자

당케는 당이 있는 케(경작지)라는 의미이다. 당 앞은 ‘당뒤허리’, 할망당의 뒤쪽은 ‘당뒤’라고 한다. 당포(당케 포구)는 어선 50여 척이 드나드는 큰 포구로, 조선시대부터 있었다. 당시에는 당두리배와 덕판배를 이용하여 고기를 낚고, 새(띠)를 육지로 내다 파는 일도 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 전복 채취선의 근거지가 되고 일본을 왕래하는 여객선 출입이 빈번해지면서 포구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횟집만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불과 2년여 사이에 서양식 식당과 현란한 펜션 간판들에 가려 당케할망당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해양경찰파출소 바로 옆으로 들여다보면 단아한 기와집이 보이는데 그곳이 당케할망 또는 세명주할망이라 불리는 여신의 당집이다. 이곳에 세명주할망(설멩디할망)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세명주할망은 하로영산에서 솟아난 풍신으로 어부와 잠수를 수호하고 해상 안전을 지키는 여신이다. 어부와 잠수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제를 올리기 때문에 당집은 항상 열려 있고, 소지나 지전을 태운 연기가 당집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당케할망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표선해수욕장 자리는 옛날에는 깊은 바다였고, 남초곶에는 볼레낭(보리장나무)이 많아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세명주할망은 바다를 메울 생각을 하고 남초곶의 나무들을 베어다 바다에 집어넣었는데, 이때 표선마을
모든 집의 도끼와 소들을 동원하였다고 한다. 어느날 마을사람들이 일어나 보니 바다는 모두 메워졌는
데 집에 보관했던 도끼와 괭이의 날이 모두 무디어지고 길마를 졌던 소들은 등이 터지고 벗겨져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멸치잡이를 하던 구만여 평의 어장은 백사장으로 변했다. 한 술 더 떠 이 백사장에서 까맣게 탄 나무 등걸을 찾아낸 사람도 있다고 전해진다.

치마통으로 흙을 나르면서 오름을 만든 설문대할망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의 거대한 여신이고, 세명주할망도 한라산의 풍신이니 동일 신일 수도 있겠다. 더욱이 이 마을에서는‘설멩디할망’이라고 부른다. 어디까지나 동일한 신화적 화소를 가진 이야기일 터이나, 당케할망을 설문대할망과 같은 창조신으로 만든 이 마을 사람들의 녹록치 않은 상상력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당케할망당에는 메, 고기, 과일, 소지, 지전, 물색천 등을 갖고 가며, 제물로 돼지머리를 올리는 것이 특이하다. 명절 때는 명절떡을 가져가고, 굿을 할 때는 돌래떡을 차려서 간다. 제일은 초하루와 보름이다. 배를 운영하는 선주나 선주 아내들이 제물을 차리고 당신(堂神)을 찾아가서 심방 없이 스스로 절을 하고 온다. 대체로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다녀오는데, 꿈자리가 사납거나 할 때는 심방을 청해서 간다. / 양영자

* 찾아가는 길 - 표선리 농협 → 당케 포구 → 해양경찰 파출소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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