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분위기속에 치러진 '결의대회 및 시정보고회'

16일 오후 한라체육관을 찾은 일부 시민은 다소 어리둥절했다. APEC 정상회의 제주유치 서명운동과 함께 홍보팸플릿을 나눠주던 입구에 들어설 때만 해도 시민들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APEC 유치 결의를 다지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린 행사장 안에 갓 들어설때도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때가 때인지라 으레 APEC 유치 시민결의대회가 열리겠거니 했던 것이다.

그런데 행사장 뒤쪽에 내걸린 플래카드를 본 일부 시민들의 표정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플래카드에 적힌 행사명은 'APEC 제주유치 범시민 결의대회 및 2004년 시정보고회'. 누가 봐도 '언밸런스'한 두 개의 행사를 한꺼번에 치른 것이다. 더군다나 '시정보고회'는 순서를 뒤로 했을뿐 '결의대회'보다 더 큼지막한 글자를 새겼다. 결국 이날 행사의 주는 시정보고회였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뭔가'를 기대했던 취재진중 일부가 서둘러 자리를 뜬 것도 이때였다. 해마다 하는 시정보고회는 관행상 '취재거리'로는 빈약했던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인사에 나선 김태환시장은 시정보고에 초점을 맞춰 올해 주요 역점시책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서두와 말미에 APEC 유치와 관련해 짤막하게 언급했을뿐 인사말의 대부분을 역점시책 설명에 할애했다.

"APEC유치는 제주도를 10년이상 도약시키고 국제자유도시 개발을 완성시킬 것"이라고 운을 뗀 김시장은 곧바로 시정방침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제주시를 제주다운 도시, 독특한 테마가 살아있는 도시로 육성하고 도로·공원 등 모든 시설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내·외국인 관광객을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는 지역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시장은 이어 이도·아라·노형2지구 도시개발사업을 벌이고 시민복지타운을 이달안에 착공하는 한편 연말까지 제2도시우회도로를 개통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중교통을 개선하고 오는 2006년 상반기까지 관덕정을 완전 복원시키겠다고도 말했다. 삼양선사유적지 다음달 준공, 지역경제 회생, 산천단 등 유원지 개발, 쓰레기문제 완전 해결, 정보화사업 등 시장의 주요 사업 설명은 계속됐다.

김 시장은 그러나 대미를 APEC로 장식했다. "30만 제주시민의 결의를 모아 반드시 APEC를 유치하자"며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촉구했다.

이날 행사는 잔치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국악인 김영임씨는 구수한 식전 공연으로 흥을 돋웠다.

제주시장의 인사가 끝나자 시정보고 영상물과 국제자유도시 홍보 영상물이 상영됐다. 이어 고충석 제주발전연구원장이 '지방분권화시대 국제시민의 역할'을 주제로 특강에 나섰다.

APEC유치 결의문은 맨 나중에 채택됐다.

시민들은 △APEC 정상회의가 제주에 유치되고 성공적으로 회의가 치러질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할 것과 △'국제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 △생태도시를 지향하는 제주시민으로서 쓰레기 줄이기를 몸소 실천하고 100만그루 나무심기에 적극 참여할 것 △녹색교통·친절운동의 전개와 제주시다운 도시 조성에 솔선할 것 △1차산업·관광등 지역산업 육성과 지역의 경쟁력을 키우는데 앞장설 것 등을 다짐했다.

이날 행사에는 3000여명이 시민들이 모였다. '시정보고회'치곤 상당히 많은 인원이었다.

이 때문에 주최측인 제주시 관계자들은 "제주도가 주최할때보다 더 많이 왔다"며 무척 고무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시정보고회는 시장이 일선 동을 순회하며 자생단체 대표 등을 초청해 역점 시책 등을 설명하는게 관례처럼 돼왔다. 따라서 시정보고회를 체육관에 모여서 치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시정보고회 개최 계획을 짜면서 APEC 유치 결의대회를 끼워넣은 것인지, 아니면 결의대회를 하는 김에 시정도 함께 알리려 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지난 7일 서귀포시민결의대회 때와는 사뭇 다른,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