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산업 무시·알맹이 없는 '속빈 강정'

'혹시나' 했던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은 '역시나'로 끝이났다.

지난 5월2일 10대 대규모 공공기관 이전 대상에서 제주가 제외된 이후 정부는 "이에 준하는 기관을 배정하겠다"고 거듭 밝혀왔으나 이 역시 '공수표'로 결론이 났다.

특히 정부가 '지역특성화 산업'과 연계시켜 이전하겠다던 원칙은 제주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제주의 양대 산업이 관광과 1차산업과 관련된 기관은 하나도 배정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구색맞추기에 불과한 공공기관 이전"이라는 혹평이 벌써부터 터져 나오고 있다.

건설교통부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24일 발표한 수도권 소재 176개 기관 중 제주 이전으로 확정된 기관은 9개. 이중 41개 기관은 행정수도 이전으로 예정돼 있어 이를 제외한 나머지 135개 기관을 11개 시도에 배정했다는 점을 감안 할 때 이전 기관 숫자로만 비교할 때는 큰 불만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실제 내면을 들어다 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산업특화기능군 중에서는 국제교류군에 속한 △한국국제교류재단(65명)과 △재외동포재단(39명)이 이전기관으로 선정됐으며, 유관기능군에서는 교육연수군인 △건설교통인재개발원(32명) △국세공무원교육원(81명) △국세청기술연구소(32명) △기상연구소(32명)가 포함됐다. 그리고 기타 기관으로 △공무원연금관리공단(351명)과 국세청종합상담센터(101명) △한국정보문화진흥원(149명) 등 모두 9개 기관에 961명의 직원이 제주로 옮겨 오는 것으로 확정됐다.

정부는 제주이전 배경에 대해 "제주국제자유도시 전략지원 차원에서 국제교류기능군을 배치하고, 관광·휴양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교육연수기능을 배치했으며, 공무원연금관리공간과 한국정보문화진흥원 등을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 '지역전략산업과 연계' 정부원칙 스스로 무너뜨려

정부의 이 같은 설명은 그러나 자신들이 세운 원칙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게 됐다.

정부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 기본방향으로 ▲지역전략산업과 공공기관의 기능적 특성 연계 ▲지방발전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고 이미 수차례 밝힌 바 있다. 또 시도별 발전정도에 대해서는 ▲광역시보다는 광역도가 우선하며 ▲광역시가 있는 도(道)보다는 광역시가 없는 도를 우선할 것을 제시했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제주이전 공공기관은 그러나 이 원칙에 해당하는 기관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 제주생명산업인 관광·1차산업 관련기관 한 곳도 배정 안돼

지역전략산업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제주의 전략산업이 관광과 농수축산 등 1차 산업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제주의 생명산업.

그러나 관광산업과 연계된 한국관광공사는 강원도로, 농업군은 전라북도, 해양수산은 부산시로 배정해 버려 공공기관 이전이 지역전략산업과 연계해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지 않았다. 또 제주도가 당초 희망했던 IT·BT분야도 제주에는 한국정보문화진흥원과 국세청기술연구소만 배정했다.

부산시가 해양수산과 영상, 대구시가 한국가스공사를 비롯한 산업지원기관, 석유경제산업의 중추인 울산에 한국석유공사와 에너지관리공단 등 에너지기능군, 강원도에는 관광공사와 광업진흥공사, 석탄공사, 그리고 충북에는 정보통신분야, 전남에는 농업기관과 토지공사, 전남에는 농업지원군과 정보통신군, 경북에는 한국도로공사를 비롯한 농업지원군 등 대부분 지역전략산업과 연계된 공공기관이 배치된 점과 비교할 때 제주이전 기관은 이같은 산업연관성을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는 형편이다.

#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그나마 위안…통일교육원은 막판에 이전대상서 제외

굳이 제주의 특성과 연계시킨다면 평화의 섬과 관련해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재외동포재단이 배정됐다는 점이다. 또 교육연수군으로 건설교통인재개발원과 국세공무원교육원, 그리고 개발기관으로 비교적 규모가 큰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배치된다 점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교육연수군 중에는 이미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를 마쳐 제주이전이 확정됐던 통일교육원이 국무회의에서 아예 이전대상 기관에서 제외됐다는 점은 교육연수군 이전의 효과마저 반감시키고 있다. 또 관광공사 제주이전 탈락 이후 제주도가 대안으로 강력히 요구했던 중앙공무원교육원조차 배정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제주도민들로서는 '홀대론'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발표와 동시에 제주도청에서 김태환 지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한 강영석 혁신도시건설추진위원장(제주상공회의소 회장)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였다"며 혹평한 것도 이 같은 사실을 반영해 주고 있다.

# 이전 임직원 수 961명, 타시도의 절반에서 1/3 수준에 불과

또 제주로 이전되는 9개 기관의 규모역시 제주도 입장에서는 결코 수용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9개 기관 임직원 수를 전부 합치고, 이들 모두 서울에 별도의 지사를 두지 않고 제주로 전원 옮겨온다 하더라도 인원은 961명에 불과하다. 이나마 임직원이 361명인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포함돼 있기에 가능했다.

다른 시도로 이전되는 공공기관 임직원 수가 평균 2000~3000명에 이르는 점을 감안할 때 제주는 최소 절반에서 1/3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제주로 옮기는 임직원 수가 많을 수록 그 경제적 파급효과가 클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961명이라는 인원은 제주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어떤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추병직 건설교통부장관은 지난 5월 3일 제주지역 국회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10대 기관에 준하는 공공기관을 제주에 이전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추 장관이 이날 이전기관을 발표한 직후 제주에서는 "'10대' 기관에 준하는 공공기관을 배정한 게 아니라 '10개' 공공기관에 준하는 '9개'기관을 배정한 것"이라는 비아냥이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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