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사회, 실세 장관에게 '의심'의 눈초리

정부가 24일 수도권 공공기관 시도별 이전계획을 발표한 직후 제주사회의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있다. 

김태환 지사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제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이 아쉬운 면이 없지는 않으나 소속기관 직원과 가족 여러분들을 온 도민과 더불어 환영한다"며 비판적 수용의사를 밝혔다. 이는 도민사회가 반발할 것을 우려한 정치적 수사이자  중앙정부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보다 명쾌한 입장은 혁신도시건설추진위원장인 강영석 제주상공회의소 회장의 입에서 나왔다. 강 회장은 김 지사와 함께 한 이날 기자회견에서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고 촌평했다.

# 도내 언론, 무원칙한 이전계획 비판…"정부 립서비스에 또 속았다"

도내 언론도 25일자 기사를 통해 정부의 이전계획 원칙에 의문을 제기하며 일제히 비판에 나섰다. 

제민일보는 '공공기관 이전, 해도 너무했다'는 1면 톱기사에서 "전략산업 연계원칙이 무시되고 교육연수기관도 2개가 고작으로 직원규모와 경제파급 효과 등 타 지역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며 "정부가 '10대 기관에 준하는 기관을 배정하겠다'던 약속도 헌신짝처럼 버렸다"며 성토했다.

한라일보도 3면 해설기사를 통해 "관광 등 지역특성 반영이 미흡하고, '자유도시·평화의 섬'에 걸맞은 기관이 없어 아쉽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제주일보는 1면 톱기사에서 "수도권 공공기관 제주이전은 '속빈강정'"이라고 평가한 후 "제주도와 제주지역 국회의원, 제주도의회가 너무 안일하고 무능력하게 대처한 결과가 아니냐는 불만의 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제주타임스도 "혹시 했더니 역시 기대 이하의 결과가 나왔다"면서 "'제주도에 지역 특성에 맞는 10개 대규모 공공기관에 준하는 기관이 이전되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립서비스'에 그쳤다"고 혹평했다.

도내 언론들은 정부발표 직전까지만 해도 '교육연수'와 '국제교류' 기관이 들어오고 여기에다 '+α'가 배정돼, 규모는 타 시도에 비해 떨어지지만 나름대로 실리는 챙길 수 있을 것으로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 같은 여론은 24일 오전10시 국무회의 심의에서 제주이전기관에 포함됐던 통일교육원이 '보류'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갑자기 냉랭한 분위기로 급반전됐다.

아쉽기는 하지만 제주에 옮겨오는 기관들을 환영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명분 보다는 실리'라며 애써 자위해 왔던 언론이 '통일교육원'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에 잠재돼 있던 '제주홀대론'을 다시 제기한 것이다. 

# 대통령까지 보고 마친 이전계획 누가 갑자기 뒤집었나?

그렇다면 22일 이미 노무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를 마친 통일교육원은 왜 갑자기 빠졌을까?

건교부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이날 회의내용, 특히 통일교육원이 '보류'되게 된 이유, 또 어느 부처에서 반발했는지에 대해서는 극도로 함구하고 있다. 자칫 해당 부처에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177개 이전대상 기관과 지역을 확정짓는 이날 회의에서 통일부가 서울 잔류를 강력히 주장하며 반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통일부는 국무회의에서 "통일교육원은 방북자와 교사를 대상으로 단순히 이론교육만 담당하는 게 아니라 전체 교육의 50%는 현장교육으로, 이론교육을 마친 후 판문점이나 전방 등을 시찰하는 일정으로 짜여 져 있다"면서 "제주도로 이전하게 된다면 교육자들이 제주로 내려간 후 다시 전방으로 이동해야 하는 문제로 정상적인 교육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면서 서울 잔류를 적극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성훈 통일교육원장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지난해의 경우 방북자가 2만6000명이나 됐다. 앞으로 개성 현지 교육 등의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는데 지방으로 가면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건설교통부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측은 "그렇지 않아도 대규모 공공기관 이전대상에서 제외된 제주에 또다시 통일교육원 마저 제외시킨다면 제주도민들이 반발할 수 있다"며 기존계획대로 확정할 것을 주장했으나 통일부의 저항이 예상외로 강해 추후 이전지역을 논의키로 하고 일단은 '보류'로 결정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 통일부, '교육연수자 불편' 이유 내세워 제주이전 강력히 반발

이와 관련 도민사회에서는 결국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공공기관 이전업무를 실무적으로 담당한 국가균형위원장과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장관의 결재를 거치고 또 하루 전날 대통령에게 보고까지 마친 내용을 하루아침에 '보류'로 뒤바꿀 수 있는 실력자는 정 장관 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정부측은 이날 국무회의에 정 장관이 참석했는지 여부조차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

설령 정 장관이 이날 회의에 참석했든 다른 이유로 참석치 않았든 간에 통일부 산하기관인 통일교육원 이전이 '보류'된 데는 주무부처 장관의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통일부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제주이전 가능성을 타진할 당시부터 "제주에 내려가게 되면 우수한 강사를 구할 수 없게 된다"며 강력히 반발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통일교육원 이전이 '보류'로 결정된 직후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김태환 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최선을 다했지만 이렇게 됐다. 정말 미안하다"며 '유감'의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위원장은 이어 "이 문제는 추후 논의하기로 한 만큼 아직 제주이전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며 가능성을 조금 열어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 통일부 '부처 이기주의'... 도지사와 제주 국회의원이 담판 지어야

결국 통일교육원 제주이전 문제는 '가능하다' '불가능하다'의 논리적 판단을 떠나 정치적으로 해결될 공산이 커 보인다.

통일교육원보다 수십배 수백배가 큰 한전과 석유공사, 가스공사가 타 지역으로 이전하고 국민연금관리공단도 제주로 이전하는 상황에서 '교육연수자의 불편'을 이유로 대는 것은 사실상 실세 장관을 등에 업은 통일부의 '부처 이기주의'로 이를 풀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정치적 해법밖에는 없어 보인다.

즉 통일교육원의 제주이전은 제주도지사와 제주지역 국회의원들이 얼마만큼 정치적 역량을 보여주고 담판을 짓느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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