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되찾기 위한 근본적 수술이 필요한 때

  최근 보도에 의하면 제주특별자치도 기초자치모형 도입을 위한 추진위원회설치근거인 조례안에 대한 입법예고가 완료, ‘제주형’ 행정구조 재편 움직임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이미 시. 군폐지가 잘못된 선택임을 나타내는 지표들이 여러 곳에서 나온바 있다. 지난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제주의 소리> 등이  조사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제주도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지후보를 결정할 때 기초자치단체 부활에 대한 정책을 최우선 고려하겠다는 응답자(38.5%)가 가장 많았으며 행정구조 개편에 찬. 반의사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9.6%가 기초자치단체 부활에 찬성하여 자치권 부활 공약이 선거 당락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추정할 수 있다. 특별 자치도에 대한 지난 4년간의 만족도 조사에서도 만족도가 50%이하로 조사 되는 등(11월 30일자 제민일보) 현행 체제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주목할 만한 사항이다.

 그러면 먼저 제주도민들은 특별자치도 출범에 어떤 기대를 걸었는가를 보자. 당시 도민들은 시․군을 폐지하여 단일 광역자치단체로 전환되면, 중복행정과 이중감독으로 인해 낭비됐던 예산이 지역발전에 재투자될 것으로 보았다. 그 당시 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절약되는 돈이 700-800억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되었다. 제주개발행정의 효율성과 신속성도 확보되어 제주국제자유도시 추진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산남과 산북지역간의 불균형문제도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무엇보다도 도민들은 ‘제주특별자치도’ 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행.재정적인 지원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여가 흐른 지금 그것은 환상이었음이 판명됐다.  시. 군 통합에 따른 재정보조금도 없었다. 시.군 폐지라는 제주도민의 자기희생적 혁신에 대한 보상은 고사하고 예산불이익배제의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정부의 행.재정적 지원 약속 등은 간 곳 없어지자, 도민들이 일종의 ‘사기(詐欺)’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허탈감에 빠진 모습이다.

제주시로의 인구집중은 날로 가속화 되어 제주도 전체인구의 반 이상이 구(舊)제주시에 거주하고 있다. 제주경제가 제주시로 흡수되어 제주시 이외의 상권은 침체화, 고사화 됐다. 이에는 전국 최고의 도로 보급률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경상적 경비 절감을 통한 재원의 재투자라는 당초의 통합명분이 구두선으로 끝난 탓이다. 공무원 수도 줄이지 못했고 청사도 다른 용도로 전환하거나 처분하지 못했다. 시.군 폐지가 비용절감효과를 전혀 견인해내지 못했다.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도 他 광역자치단체 예산 증가율을 감안할 때, 제주도의 전체 예산 규모는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제주해운항만청 등 정부 특별행정기관들의 제주도 편입으로 잃게 된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그 엄청난 불이익은 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한 현상은 제주도의 총체적인 전략부재의 결과로 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도지사 선거의 정치경제학도 한번 깊이 들여다 볼 필요성이 있다. 4개의 자치 시.군 선거가 사라지면서 정치지망생들의 충원통로가 그만큼 막힐 수 밖에 없다.  기초자치의 폐지로 지역분권(分權)이 사라지자, 공무원 승진도 절대적으로 도지사 한 사람의 자비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제왕(帝王)’적 도지사에게 어떻게 줄을 서느냐하는 것은 승진 희망 공무원에게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었다. 어디 공무원 뿐 인가.

도 단위, 시 읍 면 단위 관변단체와 연고 집단 등 민간단체들도 마찬가지다. 도지사 선거 때가 되면 보은이나 재정지원을 기대하고 편 가르고 줄 서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도지사선거운동은 더욱 가열 차지고, 선거는 이익정치의 수단으로 전락되어 지역 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 갈등은 제주공동체적 미덕을 앗아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제주특별자치도의 문제는 법과 제도적으로 실속이 없는 무늬만 ‘특별한’ 자치도 라는 데 있다.
특별자치도 출범이후 정부가 제주도에 많은 자치권을 이양했다고 하나 그 자치권이라는 것이 그 수만 많고 재정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은 짜투리 권한들이다. 진작 제주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산업을 일으키는 데 제도적 기반이 되는 실질 권한들은 아직도 중앙 정부가 꽉 잡고 있다.

특별자치도 시행 초기 일부분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되는 자치권이 제주도에 부여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권한들이라는 게  얼마 후 다른 지역에도 꼭 같이 주어짐으로서 특별자치도가 단지 테스트 베드 역할 뿐, 그 권한의 선점효과는 차단되고 있다. 특별자치도라면 말 그대로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법과 제도적으로 ‘특별’해야 하고, 정부의 지원도 달라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민들은 시.군을 자발적으로 폐지하고 국민의 기본권인 기초자치권을 포기한 것이다.

 他 시도 다른 지역에 다주는 권한을 제주도에 주면서 특별히 큰 권한을 준다고 하는 것은 제주도민에 대한 기만이다.

특별자치도 제도 개선 논의가 있을 때 마다 중앙정부는 형평성의 논리로 소극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전도 면세지역화, 과감한 법인세 인하 등 제주특별자치도의 발전에 필요한 핵심요구사항에 대한 중앙정부의 태도는 분통을 터지게 한다.

‘특별’이란 말과 ‘형평’이란 말은 정반대의 개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우리 도민들의 한 쪽 귀에 ‘특별’을 말하고 또 한 쪽 귀에는 다른 지역과의 ‘형평’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애초부터 기초 자치와 시․군을 폐지한 특별자치도가 잘못된 정책 선택이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더더구나 최근에는 특별자치도 체제를 운영하고 있는 지방정부의 권한 남용과 오용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도민의 역량부족을 반성해야 된다는 자괴감도 확산되고 있다. 물론 과도기일 뿐이라는 위안도 없지는 않다. 하여튼 어떤 이유에서든 현재의 특별자치도 체제가 불완전하고 바르지 않다는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행정구조 재편의 명분이 되고 있다.

 끝으로 2005년 계층구조에 관한 도민투표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자. 도민투표로 결정해야 할 사안은 시.군을 폐지할 것이냐 그대로 존속시킬 것이냐에 한정해 도민에게 물어야 했었다. 혁신(革新)안이니 점진(漸進)안이 하면서 자치시(군)와 행정시 구별을 어렵게 했다.

특히 혁신이라는 어휘로 그럴듯한 수사(修辭)를 꾸며 도민의 선택을 헷갈리게 한  점은 반드시 치열한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시.군을 폐지하고 행정시로 전환하는 것이 마치 혁신적이고 훌륭한 일인 양 세탁하고 포장해 시.군 폐지와 기초 자치포기에 대한 지지를 끌어낸 정치 조작의 냄새가 짙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자치시(군)와 행정시의 제도적 차이를 제대로 구별할 수 있는 사람들도 적은데다가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혁신이니 점진이니 하는 구분을 했는지도 명료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그 때 있었던 도민투표 자체가 ‘혹세무민(惑世誣民)형’ 여론 조작이 아니었나 하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 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
제주특별자치도 1기가 마무리되고 2기가 출범한 현재, 우리의 현실은 희망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레이몽 아롱이 말하는 ‘노스탈자의 파산’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이제 특별자치도는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해졌다.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잘못됐다면 고치면 된다. 5년 전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했던 정책선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행정학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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