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스님의 편지] 그와 함께 한잔 차를…

건들거리는 햇살이
내 등 뒤로 와서 기댑니다.
한 해를 애쓴 뿌듯함 때문인지
이제 할 일을 어느 정도 마쳤다는 안도감에서인지
넉살이 제법입니다.

▲ 겨울나기  ⓒ제주의소리 / 사진=오성 스님

애쓴 것이라 해봐야
장작을 집 한쪽 담벼락을 기대 쌓아놓고
김장독을 묻고
콩은 물에 불려놓아 낼 메주를 쑤어야 하고
무청은 인심 좋은 이에게 부탁했기에
며칠 후 동지가 되서 동장군을 대접할 만 하다는 것과
또 워낙 게으른 탓에
하루하루 달리 걸리는 무채색의 풍경화를
뿌연 유리창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만하면 애쓴 것에 비해
제법 넉넉한 호사를 누릴 듯합니다.

▲ 건들거리는 겨울 햇살 ⓒ제주의소리 / 사진=오성 스님

그리고 내 생애 최고의 벗, 외로움
그와 함께 한잔 차를 나눌 준비가 되었습니다.
생애 고비마다 진정한 벗이 되어주었던 그를
나는 멀리 떨쳐버리려고만 하였습니다.
오는 겨울에는
그동안 무심했던 그에게 
지겹도록 말을 건네려 합니다.
무엇에도 방해 받지 않고
온전히 그와 할 것입니다.
나를 위해 애써준 그에게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혹 방문하는 이가 있다면
나의 벗, 외로움을 함께 나눌 것입니다.

이 호사스런 행복의 시간을
건들거리는 햇살이 방해할까봐
조심스럽습니다.

<글.사진=오성스님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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