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잊어버린 삼림욕 체험
더위를 잊어버린 삼림욕 체험
  • 양영태 시민기자 (ytyang@hc.ac.kr)
  • 승인 2005.06.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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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미의 제주여행(19)] 비자림속에서

   
구좌읍 송당리에서 평대리로 이어지는 넓은 평지 한 가운데에는, 돝오름을 등에 지고 44만8165㎡의 면적을 차지하며 만들어진 천연림인 비자림이 있다.
세계에 자랑하는 제주의 보물로서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 비자림에는 500년에서 800년생에 이르는 비자나무가 무려 2800여 그루나 밀집하여 자생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천연 비자나무 군락지이다.

   
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들어선 주차장에는 땅의 열기가 춤을 추는데, 길게 뻗어나간 포장도로를 따라 도착한 숲 언저리에는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에 어깨를 움츠리게 한다.
한여름 석빙고를 연상 시킬 만큼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검은 숲은 아가리를 벌리고 손님을 맞이한다.
그 아가리를 통해 뿜어 나오는 숲의 냄새는 이방인의 접근을 거부하는 음침함이 담겨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잘 정리된 진입로를 만난다.
횡단보도와 차도처럼 숲을 갈라놓은 돌 경계석 안에는 붉은 송이가 융단처럼 깔려 있고, 그 밖으로 한 여름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항상 축축하게 젖어 있는 숲의 바닥에는 고사리나 관중, 고비 같은 양치식물들이 온통 덮고 있어 감히 근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아름드리 비자나무 노송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한 줄기의 빛도 용납하지 않는 하늘에, 검은 구름이라도 한줄기 비를 뿌릴 듯이 찌푸려 있으면 숲은 더욱 괴이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는다.
붉은 송이 산책로는 사람이 지날 때 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바쁘게 움직이는 새의 날개 짓 소리는 숲의 신령이 전하는 비밀스런 속삭임으로 전해진다.
누구도 쭈뼛쭈뼛 뒤 돌아보지 않고는 빠져나가지 못하는 음산함이 깔려 있다.

   
예로부터 1만팔천의 神들이 살고 있는 신들의 故鄕 제주도, 지금도 300여개가 넘는 神堂이 남아 섬사람들을 지켜주고 있는 신들의 섬 제주의 신령들이 모두 이 곳에 모여 있는 듯한 신령스러움이 배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 비자나무의 숲이 이루어진 것은 옛날에 마을에서 제사 지낼 때 쓰이던 비자 씨앗이 제사가 끝난 후 사방으로 흩어져 뿌리를 내려 오늘날의 숲을 이루게 된 것이라는 말이 전해 오듯이 비자림은 정녕 신들이 깃들어 있는 곳이 확실하다.

   
비자림의 비자나무는 높이가 7∼14m, 가슴높이 지름이 50∼110㎝ 그리고 가지의 폭이 10∼15m에 이르는 거목들이 군집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비자나무 숲이다.
또한 차걸이난, 나도풍란, 풍란, 콩짜개란, 비자란 등 희귀한 난과식물의 자생지이기도 하다.
비자나무뿐만 아니라 천선과나무, 비목나무, 예덕나무, 무환자나무, 곰의말채, 덧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어 전체적으로 조사된 내용을 보면 목본식물 111종이 생육하고 있고, 상록수종이 16종, 낙엽수종이 95종으로 집계되고 있다.

   
비자나무는 주목과에 속하며, 우리나라의 내장산 이남과 일본에서 자란다.
잎은 두껍고 작으며 끝이 뾰족하다.
꽃은 봄에 넓게 피며 열매는 가을에 길고 둥글게 맺는다.
예로부터 비자나무 열매인 비자는 민간과 한방에서 귀중한 약재로 쓰여 고려시대부터 제주도의 비자나무와 그 열매는 공물(貢物)로 진상되었으며, 비자는 약용으로 과세의 대상이 되었다.
비자는 특히 구충제로 많이 쓰였고, 음식이나 제사상에 오르기도 하였다.
지방분이 있어 비자기름을 짜기도 하는데, 기관지 천식이나 장 기능에 효험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무는 재질이 좋아 고급 가구나 바둑판을 만드는 데 사용되어왔다.

   
산책로를 따라 가다 보면 숲 한가운데에 제주도 비자나무 중에서 최고령목이라고 하는 813년 된 비자나무가 있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있는 다른 비자나무 중에서도 최고로 나이를 많이 먹은 나무로 높이가 25m, 둘레가 6m나 되어 어른 여럿이 두 팔을 벌려야 겨우 안을 수 있을 만큼 둥치가 굵은 이 나무는 이 곳 비자나무의 조상목이라고 한다.
지금은 보호철책을 둘러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는 이 나무 앞에 서면 스치는 바람결에 문득 신령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숲은 거목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울창하게 하늘을 덮는 거목으로 인해, 항상 높은 공중습도를 가지고 있는 비자림에는 비자나무나 비목나무 등 큰 나무 외에도 여러 가지 난과식물들이 많이 자생하여 왔다.
난과식물 뿐만 아니라, 관상용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양치식물들도 많이 자생하여 왔다.
그러나 비자나무는 열매와 목재를 탐하는 사람들로 인해 상당수가 도채 되었고 풍란을 비롯하여 나도풍란, 석곡 등은 아예 씨가 말라버렸다.
뿐만 아니라 콩짜개란, 혹난초, 차걸이난 등 희귀한 착생 난들도 지금은 거의 볼 수가 없다.
1966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며 나무 하나하나에 일련번호를 붙이며 보호 관리하고 있고, 멸종된 착생난들을 다시 복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의 불필요한 과욕 때문에, 자연에 있어야 할 식물들이 생뚱맞은 장소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목숨을 부지하고 있고, 숲도 산책로를 따로 만들어, 산책로 이외로 다니는 것을 막음으로 인해 결국 우리는 숲의 곁만 보고 다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사각거리는 송이길 대신 푹신한 자연의 대지를, 앞으로는 영원히 발끝에 느껴보지 못할 신세가 된 것이다.
이제는 개방된 1.2km의 산책로를 따라 30~40분이면 넉넉히 둘러보고도 남는 숲이 된 것이다.

   
비자림은 상록수림이라 언제 찾아도 그 울창함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이른 새벽, 안개 드리우는 산책로를 걸으면 마치 무릉도원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윽한 비자향기와 이름모를 각종 야생화의 향내음이 어우러진 울창한 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의 활력을 되찾고 건강을 새롭게 하게 된다.
숲에는 인간의 몸에 이로움을 주는 "피톤치드"라는 정유물질을 가지고 있다.
"피톤치드"는 숲의 식물이 만들어내는 살균 성질을 가진 모든 물질을 말한다.
활엽수보다 특히 소나무, 비자나무나 구상나무 같은 침엽수가 정유물질을 더 가지고 있다.
녹음이 짙은 비자나무 숲 속의 삼림욕은 혈관을 유연하게하고 정신적, 신체적 피로회복과 인체의 리듬을 되찾는 자연건강 휴양효과가 있다.
숲 속에 들어가 나무의 향기와 신성한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며 웰빙건강을 누려보자.

※ 양영태님은 '오름오름회' 총무, 'KUSA동우회 오름기행대' 회원입니다. 이 글은 양영태님의 개인 홈페이지  '오름나들이(ormstory.com) 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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