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이 함께하는 경제 성장 모델 절실"

세계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일본이 너무 늦게, 그리고 너무 소극적으로 돈을 풀었기 때문에 경기침체가 장기화되었다고 믿고 양적 완화(QE)를 지속하고 있다. 게다가 엄청난 재정적자 문제는 외면한 듯 연간 25만불(한화 약 3억원) 이상의 소득자에게도 세금을 감면하는 '부시 감세'(Bush Tax-cut)마저 결국 연장하기로 했다. 감세기간 연장이 국제자본시장에 알려지면서 미국국채 수익률이 일제히 상승(가격 하락)해 채권투자자들이 울상이다.

초기에 미국과의 공조 차원에서 정부재정지출을 늘리려 했던 유럽은 몇몇 나라들의 재정이 너무 부실하다는 진실에 부딪치자 일제히 긴축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소비지출의 주체가 상실된 마당에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에 이어 스페인도 실업률 20%에 국채 발행금리가 7%에 달하는 등 불은 이미 넓게 번지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한편, 중국 외에 브라질 인도 러시아 멕시코 한국(이상 경제규모 순) 등이 포함되는 소위 이머징 국가들은 경기가 좋다. 유럽국가들의 부도 위험과 미국의 재정불안 때문에 국제자본이 이들 나라로 대거 이동하고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유동성 과잉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을 하고 싶어도 이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들은 내수기반이 약하므로 수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금리인상은 당장 환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뻔한 인플레이션을 앉아서 당해야 할 판이다.

거두절미하고 세계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근원적인 문제점을 하나 들라고 한다면 그것은 일반대중의 소득이 불충분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한다. 소득이 부족했기에 빚을 내어 집을 샀고 소득이 부족했기에 그 빚을 제때 갚지 못했다.

나라별로 보면 자국 내에서의 구매력이 부족하므로 다른 나라에 물건을 팔아야 한다. 너도 나도 수출에 의존하려니 무역전쟁, 환율전쟁이 생긴다.

경제위기 원인은 고용없는 성장

그런데 소득부족을 낳는 주범은 바로 고용 없는 성장이었다. GM 자동차 경영진이 최근 한 기업홍보 자리에서 무심코 한 이야기가 이 현상을 단적으로 입증한다. 자동차 생산량의 43%를 시간당 15달러 이하의 지역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를 자랑한 것은 경영진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고용은 개별 기업의 관점에서는 분명히 비용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는 그 사회의 생산물을 사주는 구매력이다. 이 모순을 풀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하나의 모델을 만들어 낼 수는 있는 것일까? 고용이 수반되는 경제성장 모델은 가능한가? 필자는 '하이테크와 하이터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롱테일(long tale) 생산'을 언급한 적이 있다.

비록 대량생산은 안 되지만 사람의 섬세한 손길이 좀더 많이 들어감으로써 더 아름답고, 편리하고, 격(格)이 높은 서비스와 상품들을 만들면 이것이 팔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이것을 '하이터치(high tough) 생산'이라고 불렀다. 생산에서 하이터치가 있듯이 소비에도 하이터치가 있다. 가깝고 편리한 전문점에서 그날 먹을 신선한 먹거리를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걸어가서 구입하는 것이 하이터치 소비방식이다.

사람을 적게 고용하는 생산방식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의 발달을 거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보행자도로의 생김새부터, 환경의 기준부터 보다 인간중심적으로 개혁하면 하이터치 서비스와 제품에 대한 수요를 창출해 낼 수 있고 그만큼 고용을 늘릴 수 있다.

하이터치 사회의 모범으로 왜 유독 우리나라를 꼽을까? 많이 앞선 선진국도 아니고 너무 뒤처진 후진국도 아니면서 동양의 유교적 전통과 서양의 합리적 개인주의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 그리고 아직 여가보다는 일의 가치를 존중하며 패러다임 변화를 기대하기에 적절한 국토와 인구의 규모로 보아 그렇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하이터치 경제 모델 되었으면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더 절대적인 이유는 수많은 나라 중 누군가는 고용이 함께하는 경제성장의 모델을 제시해야만 한다는 사실의 절박성이다. 세상이 이렇게 힘들게 돌아가고 있는데 한국은 영리하게 잘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백범(白凡) 선생의 말을 다시 되뇌어 본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이 이 사명을 달하기에 넉넉하고 우리 국토의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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