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41) 아기 산육하는 영험한 토산1리 토산한집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토산한집 내부 ⓒ양영자

토산은 신화의 마을이다. 제주도 전역에 분포한 당들 중 상당수가 토산한집과 관련되어 있고, 토산에서 가지 갈라갔음을 직간접적으로 시사하거나 아예 당굿에서 토산당본풀이를 구송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토산1리인 웃토산에는 「일뤳도본풀이」가, 토산2리인 알토산에는「요(쌍아래아)드렛도본풀이」가 있는데 서사적 짜임이나 내용면에서 단연코 타 본풀이의 추종을 불허한다.

웃토산본풀이는 ‘웃손당은 금백주, 샛손당은 세명주, 알손당은 소로소천국’으로 시작한다. 알손당 소로소천국은 열다섯 나는 해에 불효와 행실이 나쁘다는 죄목으로 무쇠석갑에 담겨 바다에 띄워진다. 소로소천국은 동해바다 용왕국에 다다라 용왕의 셋째딸과 혼인했으나 먹성이 지나쳐 식량을 댈 수가 없으니 제주로 돌아갈 것을 명받는다.

이들은 토산 메뚜기모(아래아)루로 좌정처를 정하고 들어오는데, 아기를 가진 용왕국 셋째딸은 물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돼지가 밟았던 자국의 물을 빨아 먹고 집에 왔더니 남편 신이 부정하다고 마라도로 귀양을 보내버리고 새 부인을 맞이한다. 맘씨 좋은 작은부인은 마라도에 가서 큰부인의 귀양을 풀어온다.

큰부인은 보말을 주워먹으며 토산으로 오고, 작은부인은 큰부인이 낳은 아기 일곱을 데리고 오는데, 와 보니 아기 하나가 없었다. 되돌아가다 보니 아기는 상동낭 가지에 걸려 울고 있어서 아기를 데려다 목욕도 시키고 달래고 얼러 당골들의 제물을 받는 것으로 구송된다.

웃토산 한집님은 애기의 산육과 치병을 담당하는 영험하고 어진 신이다. 굿에서는 ‘올라사민 웃손당 금백주 샛손당 세명주 알손당은 소로소천 아기나청 상마을 업게나청 중마을 큰어머님 베워주던 던데떡(짝짜꿍), 족은어멍 베워주던 좀메떡(죄암질) 업게 일곱 산파도 일곱 거느리고 지성귀도 일곱 걸레(멜빵) 일곱 거느립던 요왕국서 시님신중한집 새로 새금상한집 어진 아기나 청도 풀어보자’(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1980)하며 아기놀림굿을 한다. 용왕국 셋째딸인 신중한집과 작은부인 금상한집의 역할이 강조되다 보니 소로소천국의 존재는 부각되지 않고 있다.

요즘은 당집도 개방되고 육지의 무속인 등 찾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당골들이 예쁘게 지은 치마저고리를 바치는 등 더욱 할망당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정월 대보름에는 선굿으로 신과세를 올리고, 6월 7일과 11월 7일은 비념만 한다. 제물은 메, 돌래떡, 삶은계란, 솔라니(생선), 소지, 지전, 물색천 등을 가져간다.

그런데 이렇게 완벽한 신화를 갖추고 있는 토산에서 현지 조사를 하려면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지며 눈물이 날 정도로 민망해진다. 대개는 알토산의 경우인데, 당신에 대해 물어보면 다짜고짜 모른다는 말부터 하고, 당치도 않은 말을 한다고 아예 말을 붙이지 못하게 내쫓는 경우도 있다. 서로 눈 한 번 꿈쩍꿈쩍 하면 일체 단결하고, 어느 한 사람이 손사래라도 치면 그냥 조용히 물러나와야 한다. 그런 와중에도 은연중에 ‘일뤠 요(쌍아래아)드레 다닌 적이 있다.’고 말한 사람은 금세 한꺼번에 쏟아지는 눈총을 받고 죄인이 되고마는 분위기다.

토산사람들은 새마을운동과 함께 미신타파의 홍역을 엄청나게 치렀다. 그래서 훌륭한 신화를 갖고 있으면서도 세상의 졸렬함을 비웃고 분노를 안으로 새기며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먹고사는 것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지면서 없는 것도 급조하여 마을의 역사 만들기에 매달리고 있는 세태에도 양지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토산신화가 안타까울 뿐이다. / 양영자

* 찾아가는 길 - 토산1리 마을회관 옆 → 서쪽 700m 지점

<본 연재글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엄격히 금지합니다. 본 연재글의 저작권은 '제주발전연구원'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