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적 사명에 충실한 법관을 바라며

제주특별자치도의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라고만 하겠다)은 절대보전지역의 지정 및 변경에 관하여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기준만 규정하고 그 구체적인 기준을 도조례에 위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정된 제주특별자치도 보전지역 관리에 관한 조례(이하 도조례라고만 하겠다)는 지하수자원ㆍ생태계ㆍ경관보전지구 1등급지역을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강정마을 해안변 지역은 경관미가 매우 높다는 이유로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받은 경관보전지구 1등급지역이다. 따라서 그 지역에 대하여 절대보전지역 지정을 해제하고자 한다면 현장조사를 해서 환경여건이 변화되어 이제는 1등급지역이 아니라는 판정을 한 다음 이를 해제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절대보전지역 지정 당시와 환경여건이 변화되지 않았다”고 기재되어 있다. 또한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붉은발 말똥게가 그 지역에 서식하는 사실이 발견되어 생태계보전지구 1등급지역에도 해당되게 되었다. 특별법과 도조례에 의하면 절대보전지역 지정을 해제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럼에도 제주도정은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강정마을 해안변 지역에 대한 절대보전지역 지정을 해제하는 처분(이하 본건 처분이라 하겠다)을 하였다. 특별법과 도조례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처분을 한 것이다.

이번 소송에서 피고는 재량행위라는 이유로 본건 처분이 적법하다고 주장하였다. 만일 피고의 주장이 옳다면 특별법과 도조례에서 정한 절대보전지역 지정 및 변경에 대한 기준과 절차에 관한 규정들을 모두 삭제하고 다음과 같이 규정해야 할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절대보전지역을 재량껏 지정할 수 있다. 변경할 때도 또한 같다.”

  필자는 재판부가 아무리 국책사업에 대한 부담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법관의 양심상 도저히 본건 처분을 적법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았다. 법관이 그 자신의 존립근거인 법치주의를 무너뜨리는 판결을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더군다나 본건 처분은 주민의견청취절차도 거치지 않았고 도의회의 동의도 날치기로 처리한 흠도 있다. 그래서 재판부가 강정마을 주민들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필자의 기대는 어이없게 빗나갔다.

  판결문을 입수해서 찬찬히 읽어보니 재판부가 어쩔 수 없이 소 각하할 사안이라고 법률적 판단을 해서 각하판결을 한 것이 아니라 미리 각하판결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에 따라 법리를 구성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렇다면 왜 재판부는 각하판결을 하고자 했는가. 왜 원고적격을 계속 넓혀가는 대법원 판례의 취지(대법원 2004. 8. 16. 선고 2003두2175 판결 등 참조)조차 외면하는 판결을 했는가. 그 점을 두고 한 이틀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 필자가 내린 결론은 재판부가 헌법적 사명을 망각했기 때문에 그런 판결을 했다는 것이다.

  헌법은 법원에게 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통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할 것을 명하고 있다. 권력 통제와 기본권 수호는 헌법이 법원에게 부여한 신성한 사명인 것이다.

  만일 재판부가 그런 헌법적 사명을 숙지하고 있었다면 결코 이런 식의 판결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헌법적 사명을 망각하였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본건 처분의 위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회피하는 판결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에 면죄부를 줬다. 재판부의 이번 판결로 인해 법원은 우리 사회가 불법과 탈법이 판을 치며 힘없는 서민들만 억울하게 계속 고통을 당하는 세상이 되는데 일조를 한 것이다.

  법원은 필자의 친정과도 같은 곳이다. 인간적으로는 한 때의 동료였던 법관을 비판하는 것 자체가 괴롭다. 그러나 법관이 법원의 헌법적 사명을 망각하고 권력의 눈치를 보게 되면 국민이 불행해진다. 특히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이 불행해진다. 또한 사법 불신이 팽배해지면서 법원 자체의 존립이 위태롭게 된다.

▲ 신용인 제주대 교수
  이제라도 법관은 법원의 헌법적 사명을 가슴 깊이 새기고 그 사명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통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데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법관이 그렇게 할 때 법원은 정의와 인권이 꽃피는 사회를 만드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법관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할 것이다./ 신용인 제주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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