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Hodie mihi, cras tibi) / 천주교제주교구 현문권 신부

대구에 있는 가톨릭 교회 묘지입구에 다음과 같은 라틴어 격언이 자그마한 비석에 새겨져 있다.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이는 죽은 이들이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격언이다. 오늘은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 무덤 속에 있으나, 이곳은 내일 살아있는 당신이 있을 곳이기에 항상 죽음을 준비하며 최선을 다하여 인생을 살아가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 격언이 나에게는 제주 지역 최대의 현안인 해군기지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함께 기억했으면 하는 격언이기도 하다.

몇 일전인 2010년 12월 28일 밤, 필자는 한라의료원 응급실에 있었다. 불과 몇 십분 전, 제주도의회 앞에서 해군기지 관련 노숙시위를 하던 여성이 단속 공무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제주시청 공무원들의 완력으로 인해 추락하여 얼굴에만 40바늘 이상 꿰매고, 치아가 세 개 부러지고 피가 낭자한 얼굴을 한라의료원 응급실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누가 이 여성을 밀쳤는지 아무도 범인은 없었다. 당시 현장을 지휘하던 제주시청 관계자들은 목격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시청 공무원이 저지른 만행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으나, 분명한 것은 누군가 고의적으로 밀어뜨리고 추락시킨 사건이라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중상으로 현재 제주대학병원 병상에서 고생하는 이 여성에게 용서를 청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우근민 도지사는 과일바구니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여성의 남편은 퀵서비스로 그 과일바구니를 도지사께 다시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연한 결과다. 자신의 아내가 그 지경이 되었는데 과일이나 먹고 있을까?

이 사건으로 인해 12월 30일 결혼 19주년을 맞은 이 여성은, 연말연시에 행복한 가정에서 지내야 했을 터이지만 두 딸과 남편이 지키고 있는 병실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오늘은 강정마을이나 내일은 제주의 또 어떤 마을이 무자비한 공권력으로 인해 고통을 겪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 마을이 그 차례가 되었을 때 공권력은 이렇게 외칠 것이다. ‘님비현상이다. 왜 반대만 하느냐?’고. 공권력에 반대하는 마을주민보다 더 많은 경찰병력이 찾아올 것이 확실하다. 많은 공무원들이 혈연, 지연, 학연을 앞세워 마을 사람들을 회유할 것이다. 과연 그때 나를 비롯한 우리 마을 주민들은 나라님들이 하라는 대로 따라야만 할까? 자신의 토지를 강제집행으로 빼앗기고, 자신의 고향과 추억을 강제로 빼앗겨도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다. 마을 주민이 모이면 집시법 위반이고, 그것을 막는 공무원이나 경찰에게 잘못했다가는 어마어마한 공무집행방해나 건설업자들이 고발한 업무방해죄가 적용되어 현행범으로 경찰에 잡혀간다. 후에 불구속 기소, 집행유예, 혹은 벌금형이나 실형을 받게 된다. 그러한 마을을 보고 앞장서 도우려는 NGO 단체는 ‘외부세력이다’ 라고 매도당한다.

오늘은 그 여성이 피해를 보았지만 내일은 내 딸이, 내 아내가, 내 어머니가, 내 며느리가 그 피해를 볼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줄 이 없다. 거대한 공권력에 개인과 한 가정이 맞설 수는 없다. 내 딸이, 내 아내가, 내 어머니가, 내 며느리가 망신창이가 되어도 어느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분노하여 항의하면 집시법 위반에다 폭행, 혹은 기물파손, 혹은 명예훼손, 혹은 공무집행방해로 법정에 넘겨질지 모른다. 혹은 이로 인해 가장은 직업을 잃거나 모르는 이들에게 협박을 받을 수도 있다.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오늘 정의롭지 못한 일에 침묵하면, 내일 나에게 정의롭지 못한 일이 닥치더라도 무기력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오늘 정의롭지 못한 이들에게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 ‘착한 사마리아 사람’(루카 10.30-35)과 같이 행동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불행하게도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같은 민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곁을 지나갔지만 강도당한 이를 보고서는, 못 본채 하여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혹시 도와주다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강도들에게 자신도 험한 꼴을 당할까 두려워서였다. 그런데  강도당한 이와 적대관계에 있었던 민족인 사마리아 사람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돈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현문권 신부 ⓒ제주의소리 DB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다. 12월 30일 도의회에서 ‘제주해군기지건설 관련 국무총리실 협의 결과 이행 촉구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그렇다. 도의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문서작성 밖에는 없다. 지금 정부나 해군에게도 무시당하는 게 제주도이며 제주도의회가 아닌가? 하긴 서귀포 경찰서의 오인구 경비교통과장에게도 아무런 힘을 못 쓰는 도의원, 도의회가 정부가 하는 일에, 군이 하는 일에 대해 도민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제주의소리>

<제주의 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