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새로운 희망만들기, 2011 제주의소리 ‘청복(淸福)’프로젝트

  제주올레가 제주를 넘어 대한민국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깃발’로 상징되는 기존 관광패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멋과 맛을 주고 있습니다. 이 걷기 여행은 관광을 넘어 우리삶 전반에 새로운 문화로 다가옵니다. 속도전이 개발만능주의의 캐치프레이즈였다면 느림은 지식기반사회의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규모 물량주의가 지배해 온 제주사회에 올레는 새로운 희망의 모닥불을 피우고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2011년 새로운 희망만들기 ‘청복(淸福)‘ 프로젝트로 송재호 제주대 교수의 기획연재 ’길을 걸으며 길을 묻다‘를 시작합니다.  송 교수는 지난 1년 제주와 대한민국이 교훈을 삼을 수 있는 동남아와 유럽, 미주, 그리고 우리나라듸 대표적 길을 걸었습니다. 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으로 대한민국 문화관광산업을 이끌어 왔던 송 교수의 사색과 고민, 꿈이 묻어 나는 기획연재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주

 
 ‘고도건행(古道健行) 공존자연(共存自然)’

  아시아의 어느 트레킹 코스를 걸으면서 우연히 만난 구절.
  걷기여행을 간결하게 함축한다.

▲ 스위스 오버빌 마을 트레일 길 ⓒ 송재호

  길은 고도(古道), 예부터 있어온 길이어야 한다. 물론 끊이지 않으면서. 길에는 길이 있기 전부터 오랜 세월 같이해 온 자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길을 오가며 인간이 쌓아온 모든 것, 인문(人文)이 거기에 녹아있다. 그래서 길을 걷는 것은 옛 사람과 그들이 일궈온 문화와의 연대이기도 하다. 걷기는 인간이 세상과 대화하는 창인 것이다.

  길을 걷는 것은 무위(無爲)다. 길을 걸으며 무언가를 고민해 보려고 화두를 붙잡아 보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는다. 길을 걸으면 그냥 걸을 뿐이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잡념이 없는, 청정한 무심(無心)이 걷기이다.

  다만 사유하고자 하는 바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이 마음 깊은 곳에 잠재해 있다면, 그 명상의 시간을 뚫고 전광석화처럼 비치는 직관이 있으니, 그러하다면 길을 걷는 것은 일종의 기도인 셈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많은 철학자들이 ‘소요(逍遙) 철학’의 이름으로, 또 성직자들이  ‘순례(巡禮)’의 이름으로 길을 걸었는지 모른다.    

  걷기가 무위의 영적 휴식이요, 그래서 명상과 기도의 전단계라면 그것은 걷는 육체가 주는 즐거움을 넘어 정신적으로도 실존의 기쁨이다. 길을 걷는 것은 건행(健行)인 것이다. 동양의 명의 허준도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 보다 행보(行補)가 낫다”고 하였다.

  걷기가 실존을 표상한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상태, 곧 생태(生態)인 셈이다. 걷기는 ‘나(我)’라는 생명체와 그런 ‘나’가 대면하는, 밖에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생태와 공존하는 양식이다. 그래서 걷기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의 섞임과 일치(共存自然)를 우선적으로 전제한다.

  걷기가 반드시 먼 곳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여행으로만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도시 안에서도 얼마든지 걷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경험이 묻어 있는 길을 걷는 것은 기억의 뜰을 걷는 것과도 같다. 초현실주의자들처럼 표류하듯이 도시의 이곳저곳을 이리저리 흘러 다녀보는 것도 좋은 걷기이다.

  걷기여행은 일상을 탈출하는 것이요, 삶의 속도를 늦추고 순간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오래된 미래’에 온전히 녹아드는 것이다. 여행에도 기술이 있다면 ‘걷기야말로 가장 고전적이고 세련된 여행기술’이라 하겠다.

▲ 터키 카파도키아 순례의 길 ⓒ 송재호

▲ 호주 오스트렐리안 알프스 나마지 국립공원 트레킹 길 ⓒ 송재호

▲ 터키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 해안길 ⓒ 송재호

  한국 관광의 일번지라는 제주, 이 제주가 한국 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제주올레’로 대표되는 걷기열풍이 그것이다. 여행의 역사를 새로 쓰는 것을 넘어서서 빠름과 소유만을 최고의 가치로 좇아온 한국인들에게 느림과 공존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사회변혁의 신호탄을 쏘아올리고 있다. 

  '세계의 아름다운 섬(島, island) 트레킹 코스‘로 불릴만한 ’제주올레‘는 서명숙이라는 걸출한 인물에서 시작되긴 하였지만, 어느 때부터인가는 서명숙도 놀라고 관계된 사람들도 모두 놀랄만큼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성장의 속도도 경이롭지만 온 나라에 걷기와 길 정비 열풍을 가져온 것을 보면 이것은 일종의 21세기 초엽을 가르는 ’한국인 여가의식의 혁명‘이라 부를만하다. 

  이러한 흐름은 제주섬이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등 유네스코 ‘3대 환경보호제도’를 차지한 것을 계기로 더욱 거세게 분출될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제주의 산업과 사회를 바꾸는 기폭제로 파급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한국 사회 전반에도 상당한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칠 것이다.

▲ 제주 올레길 ⓒ 제주의소리

▲ 제주 올레길 ⓒ 제주의소리

▲ 제주 올레길 ⓒ 제주의소리

  이러한 때 두 다리를 빌려서 제주를 넘어 한국을 걷고 세계를 걸으면서 제주 밖의 것들을 보고 듣고 만지고 느껴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다. 그것은 걷기가 주는 맑은 즐거움, ‘청복(淸福)’을 누릴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산업구조 복지 사회제도 등 지역과 나라의 발전과 관련된 공공정책의 혼돈스러운 맥락도 정리하고 가다듬게 해 줄 것이다.

  걷기는 점과 점을 잇는 등산이나 관광과는 다른 선(線)의 여행, 구석구석 다니면서 그 마을, 그 지역의 속살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이루어 온 다양한 삶의 방식을 직접 마주하면서 우리가 나아갈 바를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루소가 말한 것처럼, ‘우리의 스승은 발이다’.

     어디를 걸으까?  나이아가라 절벽 위를 걷는 캐나다의 브루스 트레일(Bruce Trail), ‘걷기권리법’까지 제정하고 트레일도 국립으로 만든 영국의 ‘코츠월드 길(Cotswold Way)’,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 킹즈캐년 국립공원(Kings canyon national park) 세콰이어 국립공원(Sequoia national park)을 가로지르는 미국의 ‘존 뮤어 트레일(John muir Trail), 걷기클럽만 3천개가 넘는다는 걷기매니아의 나라 프랑스의 그린마이스-월드 트레일, 호주 남동부의 빼어난 해안절경을 따라 104km를 걷는 그레이트 오션 워크(Great Ocean Walk), 뉴질랜드 남섬 남알프스 산맥을 에두르는 밀포드 트랙(Milford Track),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순수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 네팔의 히말라야 트레킹, 실크로드보다 200년이나 앞선다는 차(茶)와 말(馬)의 교역로 차마고도의 입구 중국 운남성  호도협 트레킹, 일본 시코쿠 해안을 따라 88개의 사찰을 순례하는 1천4백km의 시코쿠 오헨로 순례길, 프랑스에서 출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성 야고보 유해가 묻힌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델라 성당까지 8백km를 걷는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등. 

 그러나 걷기여행만을 위한 아름다운, 정평있는 트레킹 코스는 일단 접기로 했다. ‘길을 걸으며 길을 묻는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걷기의 즐거움을 충족시키면서도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고, 그래서 제주가, 한국이 가야할 방향성과 연관하여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하기고 하였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문화와 자연, 도시와 전원을 균형있게 고려하였다.

 우선 제주가 국제자유도시 특별자치 통상경제 등 개방모델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의 대표적인 자유경제지역인 싱가폴과 홍콩, 마카오를 걷기로 하였다. 세 도시 모두 국제도시이지만 도시이미지와는 달리 나름대로 세계적인 트레일과 워킹코스를 보유하고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일본의 문화와 역사를 대표하는 정신고도이며 최근에는 생태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교토와 일본 알프스를 걷는다. 대양주로 건너가서는 호주의 오스트렐리안 알프스 트레킹과 그레이트 오션 워크, 그리고 디자인도시 맬버른을 걷는다. 다양성의 수용과 포용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동서양이 만나 접합하는 이스탄불을 걸어보고 다시 걷기여행의 천국, 그러면서 21세기 제주발전의 모델로 꼽고싶은 스위스를 걷는다. 미주대륙에서는 나이아가라 가는 길 브루스 트레일과 세계자연유산 관리모델로 꼽히는 스모키 마운튼을 걷는다. 그 걸음은 네팔의 히말라야, 일출이 그렇게 아름다워 눈물을 흘린다는 푼힐과 풍요의 여신을 상징하는 안나푸르나 산군을 돌아 다시 제주 올레에 와서 멎는다. 

  우리나라는 서울과 지리산 일대를 걷는다. 북한산 자락을 걸으면서 서울의 자연을 음미하고 서울성벽 북촌팔경 세종벨트를 둘러보면서 문화와 역사를 볼 것이다. 지리산은 노고단에서 천황봉에 이르는 종주길을 걸어보고 둘레길도 들려보고 남도를 휘감아 흐르는 섬진강의 고운 결도 느껴보고 …. 

   

송재호 교수는 서귀포시 표선면 출신으로 제주제일고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학고 경기대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현재 제주대 교수(관광개발학과)로 재직중이다. 현실정치에도 관심을 둬 민주당 열린우리당내 개혁세력으로 활동해 왔으며 참여정부에 발탁돼 국책연구원장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으로 2년6개월동안 재임하면서 ‘섬UN’ 창설과 ‘한-중-일 크루즈관광’ 활성화를 W안하는 등 제주관광국제와를 다지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제주글로벌상공인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국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제주상공인을 하나로 묶고, 미래 제주발전을 위한 원동력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경제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에 전력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의 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