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칼럼] 잠재성장률과 투명성

수년째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환헤지 통화옵션 금융상품 키코(KIKO)의 문제는 그 계약이 공정했느냐 또는 은행의 설명이 충분했느냐 하는 측면보다는, 충분히 이해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래가 널리 성사되었던 당시의 분위기와 더욱 밀접히 관련된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세계의 금융위기를 불렀던 것도 이러한 문화와 관련이 있다. 집을 담보로 하여 빌려준 주택금융 대출을 증권화하여 자산담보부증권(ABS)을 만든 목적은 손쉽게 바로 거래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여러 개의 자산담보부증권을 쪼개고 합하여 구조적으로 더 진보된 증권을 만든 것이 저당채무증서(CDO)였다.

저당채무증서(CDO)의 투자설명서나, KIKO의 계약서는 수백 쪽에 이르는 분량이다. 자세하게 모든 것을 기록하였다고 투명성이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긴 계약서를 읽지 않은 소비자를 탓하기 전에 설명서나 계약서의 내용을 진정으로 소비자에게 이해시키도록 하려는 어떠한 장치가 마련되지도 요구되지도 않았던 문화는 위험한 것이다.

최종투자자들이 오로지 의지하였던 신용평가기관들의 AAA 신용등급도 후일 허무맹랑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들 신용평가사들이 소비자들로부터 피해보상 소송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신용등급 평가서의 단서에 삽입되었던 면책조항 때문이었다. 이 역시 난삽한 법률적 문장의 한 구석을 차지하였을 것이다.

'거짓된 존중'의 문화 갈수록 확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센델 교수가 말한 '거짓된 존중'이라는 개념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투명성이 존중되는 듯하지만 사실은 무시되고 있는 거짓된 존중의 문화는 우리 주변에 매우 가까이 침범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 회원가입을 하려는 사람들은 '다음 약관을 읽고 동의를 하여야 가입이 됩니다'라는 안내를 접한다. 그 내용 중에는 개인정보의 제3자 활용에 대한 동의를 묻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 신경을 쓰는 소비자는 별로 없다. 현대인은 바쁘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인데 하는 심정도 깔려 있다.

외국의 예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월 스트리트의 어느 시사일간지 인터넷 구독을 위하여 회원 등록을 하려 했다. 여기는 한술을 더 떠서 회원 등록을 하면 약관을 자동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문화를 문제삼고자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한 나라의 잠재성장률(potential growth rate)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잠재성장률은 그 나라의 저력에 다름 아니다. 어느 해의 성장률이 그것을 넘으면 이는 능력 이상으로 성장한 것이 되어 인플레이션 등의 부작용이 생긴다.

노동과 자본의 질과 양, 생산 및 경영의 기술이 잠재성장률을 결정한다. 거기에 더하여 그 사회의 관행과 제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이것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양적인 발전을 넘어 질적인 발전으로 도약하고 있다. 작년 한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 에미레이트 등 중동 국가들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의 4분의 1을 우리나라 기업들이 수주하였다고 한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해수담수화 시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동력을 모아 선진국으로 도약하자는 포부도 새해를 맞아 넘치고 있다.

세계 속에서 강소국으로서 우리가 나아갈 목표는 '선진국을 넘어서'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의 근대사는 반전의 역사였다. 식민지에서 G20으로, 굶주림에서 풍요로, 짐이 되는 나라에서 존경받는 나라로. 이제는 전쟁의 나라에서 평화의 나라로, 진실을 숨겨야 했던 나라에서 진실을 밝게 밝히는 나라로 반전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선명의 가치를 숭상하는 문화

기업에서 긴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작은 분량의 요약(executive summary)를 앞에 붙이곤 한다. 이것은 효율성이나 중요성의 문제이기 이전에 진정성의 문제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사물의 구조가 복잡다양해지고 삶의 시간이 초고속화 되어가는 가운데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진실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에서 투명성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한다.

우리 선조들은 우리 나라를 조선(朝鮮)으로 이름하였다. 조선은 '아침의 고움'을 뜻한다. 아침이 고운 이유는 아침의 사물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낮의 왕성함도 저녁의 편안함도 마다하고 선명함에 가치를 두었던 깊은 뜻을 되새겨 보자. 바야흐로 인류가 지향하고 있는 지식정보사회의 으뜸은 선명의 가치를 숭상하는 문화에서 그 모델을 찾게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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