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하례2리 어케할망당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어케할망당 내부 ⓒ양영자

누가 이토록 정겹고 아름다운 길을 낼 생각을 했을까. 어케할망당의 올레는 아취(雅趣)가 묻어난다. 마을사람들은 이 길을 가리켜 ‘할망신디 가는 질’이라고 한다.

이 길에 들어서면 상방톡(아래아)에 모로 누웠던 할머니가 부스스 몸을 일으키며 ‘아이고, 내 손지 왔구나.’할 것 같다. 이러고저러고 길은 꼭 내야 된다 하고, 기금을 모으고, 돌담을 올리고, 수없이 오가며 밟았던 풀들이 떠오른다. 제물을 담은 당구덕을 옆구리에 끼고 걸으면 한 사람이 보(아래아)듯 걷게 될 올레 폭, 이 길을 수없이 오간 희로애락과 신심(信心), 사랑과 눈물도 보인다.

세종부터 성종 사이에 조정에서는 제주도의 해발 200m~400m 사이의 야초지를 빙 둘러 목마장을 설치하고 이를 10개 소장으로 나누었다. 그 중 서귀포시 서호동 고근산에서 남원읍 위미리 자배봉까지는 9소장에 해당하는 목장이었다. 그 9소장 관내의 국축마(國畜馬)와 사둔마(私屯馬)를 점검하는 곳이 바로 하례 2리의 직세(直舍)땅이었다.

어케할망당은 하례2리 직세 동네 어케동산에 있다. 이 당은 직세 동네 사람들이 설립한 당으로 보이는데, 처음에는 우마의 번성과 무탈을 비는 곳이었다가 지금은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모든 마을사람들이 다니는 당이 되었다. 옛날에는 굿도 하였으나 지금은 작은 비념만 하고 있다.

어케할망은 달리 ‘고망할망’이라고도 한다. 당에는 큰 폭낭(팽나무), 조밤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낮에도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다. 수령이 오래된 신목에는 지전이 걸려있다. 신목 아래에 자연석 제단을 마련하였다. 돌로 아담하게 병풍처럼 둘러 그 안에는 고망[궤]이 있고, 궤 안에는 늘 밥이 있다. 촛대와 촛불을 마련하여 놓고 비념할 때 켠다.

가름 안에 있는 어케할망은 당연히 마을사람들에게 받아 먹을 권리가 있다고 마을사람들은 믿고 있다. 제일은 따로 없고 명절이나 제사가 끝난 뒤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새벽에 당연히 찾아갈 것으로 안다. 제사에 쓸 밥, 떡, 국 등을 구덕이나 차롱에 모두 마련하여 두었다가 제사 뒤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어케할망에게 가져가 제를 드린다. 마을의 포제를 지낸 다음에도 제물을 따로 마련해 두었다가 다음날 어케할망당에 가져가서 고사를 지낸다. 가름 안에 사는 사람은 모두 가므로 ‘할망 몰른 공시(公私)가 없다.’고 한다.

명절이나 제사가 없어도 가족 중에 시험 볼 사람이 있을 때나 허물이 났을 때 등 할망한테 가고 싶으면 본명일이 아닌 날을 택일하여 할망당에 다닌다. 이때는 제물 외에도 지전, 돈, 험벅(시렁목) 등을 갖고 간다.

어케할망한테 다녀오면 소망이 일고 재수가 좋아진다고 하며, 다녀온 후 ‘소망 인’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칠십 줄에 갓 들어선 한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마을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 집의 큰아들은 운동회 때마다 항상 달리기에서 4등(꼴등)을 도맡아 했다. 6학년이 되자 한 번도 상을 받지 못하고 졸업할 일을 생각하니 어머니도, 아들도 심란하고 풀이 죽어 있었다. 이를 지켜 본 시어머니가 그렇게 고민만 하지 말고 할망한테 다녀오라고 하였다. 믿거나 말거나 하면서 위안이나 삼자고 어케할망당에 가서 빌고 왔다. 운동회 날이 되자 신통한 일이 일어났다. 아들은 역시 4등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3등으로 달리고 있던 아이가 도착 지점에 거의 다 와서 넘어지는 바람에 3등을 한 것이다. 장성한 아들은 지금도 어케할망의 영험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 양영자

* 찾아가는 길 - 하례2리 서귀포농업 → 기술센터 맞은편 버스정류소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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