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적.자유주의적 관점보다 공동선이 우선

# 1. 정의에 대한 3가지 관점
 
지난 한 해 우리나라 독서계의 이변은 어려운 철학책이 출판 몇 달만에 판매부수 50만이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 마이클 샌델(Sandel)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이변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가 그만큼 정의 에 목말라 있다는 증좌이다. 또한 앞으로 우리 사회가 올바른 사회로 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샌들이 정의를 이해하는 관점은 3가지이다.
첫째, 정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추구’라는 공리주의 관점이다. 공리주의는 효율성을 따지고 세상을 계량화하는데 능숙하다. 배가 난파당해 다 죽을 판에 어차피 아파서 죽어가는 사람을 미리 죽여서 남은 다른 사람들의 끼니를 해결하는 것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둘째, 정의란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자유주의 관점이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라는 게 유명한 칸트의 명제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도, 이 사람을 죽이면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다 해도 살인은 살인이다. 수 많은 로마 시민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피에 굶주린 사자가 그리스도 교인들을 물어뜯게 한 것은 옳지 않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중시하는 서구사회의 보편적 인권사상은 아무리 국가라고 해도 개인의 권리에 앞서 선(善)을 강요하지 못한다. 그래서 재산권이나 개인의 자유는 신성불가침의 권리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의 정치경제학적 표현이 요사이 탐욕의 대명사가 된 신자유주의이다.

셋째, 정의란 공동체적 미덕이라는 관점이다. 국가가 선량한 시민을 육성하고 공동선을 장려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국가의 존재 이유이다. 센델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지지하는 공동체주의자의 한 사람이다. 그는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고 공동체적 미덕을 구축해 갈 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샌델의 결론은 이렇다.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다. 즉 이런 공동선이 실현된 사회의 모습은 이렇다.“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모두 보내고 싶어지는 공립학교, 상류층 통근자를 끌어들일 대중교통체계, 그리고 보건소,운동장,공원,체력단련장,도서관,박물관처럼 사람들을 닫힌 공동체에서 끌어내 민주시민이 공유하 하는 장소로 모이게 하는 시설 등이 그것이다.”  
 
# 2. 정의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
  
그러면 정의에 관한 논의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샌델이 제시한 “정의를 이해하는 3가지 관점”에 현실 문제를 대입해 보자. 오늘날 이슈가 되고 있는 공공문제라고 하는 것이 전부 ‘정의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닿아 있다. 정의의 어느 관점에서 공공문제를 보느냐에 따라 가치판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먼저 최근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기업형 수퍼마켓(SSM), 통큰 치킨, 이마트 피자 등을 정부가 규제해야 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대기업의 이런 사업들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추구라는 공리주의 입장에서 보면 규제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쪽의 주장은 ‘자영업자 생존권’보다 ‘소비자 선택권’이 더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분야 대기업 진출로 인해 중소 상인이 영업할 때보다 물건 값이 싸져서 이익인 소비자가 훨씬 많이 생긴다면 그것이 곧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거다.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란 자유주의 관점은 어떨까? 이 역시 규제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소비자는 이념의 잣대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고 경제적 이득이나 심리적 만족을 위해서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또한 대기업이나 중소상인이  무슨 사업을 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그들의 자유행위에 속한 것이지 대기업은 강자, 중소 상인이 약자이기 때문에 대기업 진출을 규제하는 것은 강자를 벌주는 행위이다.

그러나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란 세 번째 관점에서 보면 SSM이나 통큰 치킨, 이마트 피자사업은 규제해야 한다. 이들 사업이 자영업이란 ‘마지막 배’를 탄 이웃을 침몰시키고 그 결과 연대의식과 공동체 의식이 망가졌을 때 사회가 부담할 갈등비용이 훨씬 커질 수 있다. 특히 우리 나라의 자영업자가 선진 외국에 비해 유독 많기 때문에.  그들끼리만 경쟁해도 먹기 살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돈만 벌면 영세상인의 생사문제는 나와 상관없다면 그 사회는 공동체적인 미덕이 사라진 사회다. 동반성장이나 상생이라는 공동선 가치가 구현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 3. 제주도의 현안문제에 대한 검토

이런 논의와 결부하여 그간 논의는 무성했지만 진척되지 않은 제주도의 현안 문제 2가지만 검토해 보자.

내국인 카지노사업은 분명 제주도의 공리를 증대시킨다는 측면에서 정부가 규제할 사항은 아니다. 최근 도덕국가로 치부되고 있는 싱가폴도 카지노 사업에 뛰어 들었고 마카오는 카지노로 엄청난 국부를 쌓아 가고 있다. 영리병원 문제도 자유주의 관점에서 보면 그 진입을 규제할 필요성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제주도의 현안 사업들을 공동체적인 정의관에 입각해서 볼 때, 그 설명방식은 다르다. 카지노 사업은 분명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그만큼 제주도 전체 공리의 파이가 늘어난다. 그러나  이미 제주경마장의 예에서 본 것처럼 대로 도박문화의 확산, 가정해체 등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엄청날 수 있다.

영리병원 사업도 공공의료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현재의 조건하에서는 부자들만이 다닐 수 있는 특권층병원으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일부에서 주장하는 바처럼 제주도를 영리병원 정책 실험장으로 삼아서 그간 쭉 유지되어 왔던 공공의료 체계를 사보험 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음모가 개입되어 있다면 연대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큰 문제이다. 또 일부의 주장처럼 돈이 많은 영리병원 사용자에게 건보상의 의료혜택을 부여하는 일도 공정치 못한 행위이다.

▲ 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제주의소리
어떻든 이러한 문제들이 공동체적인 정의의 원칙과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업진행의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번 6.2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공동체적인 유대를 튼튼히 할 수 있는 의무급식(가치재)로서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빈자 무상급식, 부자유상급식이 공동체적인 연대감과 동질감을 훼손해 왔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지역정책 아젠다들이 지역주민들로부터 호응을 받기 위해서는 그것이 공리적인 정의관이나 자유주의적 정의의 관점보다도 공동선을 실현할 수 있다는 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소핑아울렛 등 그 정책속에 가치갈등이 잠복되어 있는 사업의 경우 더욱 그렇다. / 고충석 행정학과 교수(전 제주대총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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