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해군기지 문제를 민주적이고 적법하게 풀어야

요즘 필자는 신학기 강의 준비를 위해 헌법 교과서와 관련 논문들을 읽고 있다. 헌법공부를 하다 보니 규범과 현실이 따로 노는 제주의 상황이 머리에 맴돌면서 필자의 가슴을 무겁게 누른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이념적 기초이자 궁극적 목적으로 인간의 존엄 및 행복추구를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인간의 존엄 및 행복추구를 공감대적 가치로 하여 세워진 정치적인 공동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이유는 모든 국민이 존엄한 인격체로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누리게 하는데 있다.

헌법은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그 방법적 기초로 평등원칙과 평등권을 규정하고,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영역에서 국민이 필요로 하는 자유와 권리, 즉 각종의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각종의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통치기관을 두고 그 통치기관에 기본권 보장 및 실현에 필요한 권력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권력은 본질적으로 남용되거나 악용될 소지가 크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엄격한 통제 하에서 권력을 행사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통치기관을 행정기관인 정부, 입법기관인 국회, 사법기관인 법원으로 3분하여 통치기관 상호간에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한마디로 통치기관은 기본권 보장 및 실현을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만일 정부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권력을 남용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면 이는 헌법위반일 뿐 아니라 정부의 존립 정당성 자체를 허무는 일이다. 그럼에도 국회나 법원이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여 기본권 침해상태가 그대로 방치된다면 헌법이 파괴되고 대한민국의 존립 정당성 자체가 부정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제 제주의 현실을 돌이켜보자. 정부는 해군기지사업을 민주적이고 적법하게 추진했는가. 해군기지 후보지 선정과 관련해서는 화순에서 위미를 거쳐 강정에 이르기까지 갈지자걸음을 하였고 강정마을 선정도 석연치 않은 방법으로 이루어져 강정마을공동체는 분열과 대립으로 파괴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또한 그 부당성을 따지는 주민들의 의사는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민주주의가 실종된 것이다. 나아가 특별법과 도조례의 규정을 무시하며 이루어진 절대보전지역변경처분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법치주의조차 무력화시키면서 추진되었다. 그 결과 제주사회는 갈등과 분열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정부는 해군기지사업을 추진하면서 권력을 남용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함으로써 그 존립의 정당성을 스스로 허물은 것이다.
  
한편 정부의 이러한 권력남용을 통제해야 할 도의회는 오히려 동의안을 날치기로 처리하여 거수기 역할을 자처하였고 법원은 위법성 판단을 회피함으로써 면죄부를 주었다. 결국 제주의 현실에서는 해군기지사업으로 인해 헌법이 파괴되고 대한민국의 존립 정당성 자체가 부정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 신용인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제주의소리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해군기지사업의 목적이 국가안보라는 것이다. 정부는 국가안보를 위한다고 하면서 헌법을 파괴하고 대한민국의 존재이유를 허물어 오히려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제라도 해군기지 공사 강행을 중단하고 민주적이고 적법한 방법으로 해군기지 문제를 다시 풀어나가야 한다. 그것이 기본권의 보장 및 실현을 구현하고자 하는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길이다. 정부가 그렇게 할 때 헌법은 생활규범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고 제주사회는 헌법정신으로 충만한 공동체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신용인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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