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 호주편] (2) 오스트레일리아 레이스 250km (2010년 5월)

▲ 맥주를 마시는 흉내를 내는 내 친구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안병식

Stage 2 38.1km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이 상쾌했다. 몸 상태도 많이 좋아졌고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어제는 날씨가 많이 더워 첫 날부터 탈락자가 많아져서 대회 측에서는 예정 시간 보다 1시간 빠른 06시에 대회를 시작했다. 길을 따라 2-3km 달린 후 사람 키 보다 높은 갈대숲으로 들어갔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가시덤불은 다리와 팔을 긁히고 찌르면서 상처를 남겼고 계속 이어지는 가시덤불 속을 지나는 게 짜증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은 다른 대회와는 다른 색다른 경험이기도 했다. 코스는 험하지만 인적이 드문 호주의 오지를 체험 할 수 있는 지형이었다.

 10km를 달린 후 CP1에 도착했는데 다음 체크포인트 까지는 17km의 긴 코스라서 물도 충분히 보충해야만 했다. 프란체스코, 피터, 살바도르와 함께 선두를 유지하며 달리고 있었다. 갈대숲을 지난 후 작은 물줄기가 나타났고 우린 강가에서 물을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 휴식을 취하고 있는 참가자와 프란체스코(우) ⓒ안병식

“오늘은 날씨가 너무 더워.”
“그래. 다음 체크포인트까지 거리가 멀어서 물을 충분히 챙겨야 해!”

 아직 아침이지만 벌써부터 태양은 뜨겁게 비치기 시작했다. 강을 지난 후 벙글 벙글즈(Bungle Bungles) 지대가 나타났다. 벙글 벙글즈(Bungle Bungles)는 원형의 여러 형상을 가진 바위산들이다. 세계 자연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고 서 호주 킴벌리를 대표하는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함께 달리던 프란체스코가 많이 지쳐 가고 있었다.

“Ahn! 먼저가.”
“프란체스코! 몸은 괜찮아?”
“그래. 아직은 괜찮아. 하지만 난 좀 천천히 달려야 할 것 같에. 금방 따라갈게.”

 스페인의 살바도로가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나도 다시 뒤를 따라 협곡과 바위산을 오르고 벙글 벙글 지대를 달리며 레이스를 함께했다.

▲ 휴식을 취하고 있는 참가자들 ⓒ안병식

▲ 휴식을 취하고 있는 참가자들 ⓒ안병식

 CP2를 지나면서 어느새 앞뒤로 참가자들은 보이지 않았고 이후 캠프까지 혼자 달리게 됐다. 스페인의 살바도로에 이어 캠프에 도착했는데 어제와는 달리 아직도 몸은 더 뛸 수 있을 만큼 레이스를 즐긴 하루였다. 10여분이 지난 후 프란체스코와 미국의 리아가 손을 잡고 도착한다. 리아는 키도 작고 얼굴도 예뻐 운동선수처럼 보이지 않지만 여러 번의 사막 레이스에서 우승 경험을 가지고 있고 남자 선수들 못지않은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제 오후에는 하루 종일 누워 있다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오늘은 여유를 가지고 프란체스코랑 같은 텐트에서 쉬고 있었다.

“프란체스코 저기 멀리 구름이 몰려오는데.”
“저건 비구름 같에.” 

 먹구름은 빠른 속도로 다가왔고 금세 태양과 푸른 하늘을 가리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프란체스코! 빨리 텐트를 잡아!”

▲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즐거워하는 프란치스코(좌) 와 강풍에 날아가 버린 텐트(우) ⓒ안병식

 갑자기 불어 닥친 강풍과 소나기는 일부 텐트를 날려버렸고 텐트에는 빗물이 가득차기 시작했다. 텐트가 있는 캠핑 장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30여분 동안 내린 소나기는 무더위를 식혀주는 역할도 했지만 프란체스코와 난 한동안 온통 물바다가 되어 버린 텐트를 붙잡고 강풍에 텐트가 날아가지 않기만을 바랬다.

“Ahn! 오늘 너무 재미있는데.”

갑작스런 소나기에 조금은 황당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도 프란체스코는 카메라를 들고 비가 내리는 풍경들을 찍고 있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밖으로 뛰쳐나와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으며 동심으로 돌아간 소년, 소녀들이 되었다. 소나기가 그치고 난 오후 태양은 여전히 뜨겁게 비치고 있었고 대회 2일째 메디컬 텐트에는 환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 강을 건너고 있는 프에린의 살바도로(이번 대회 우승자) ⓒ안병식

▲ 강을 건너고 있는 참가자들 ⓒ안병식

Stage 3 34.3km

 cp1까지의 거리는 10km였지만 길이 아닌 숲과 협곡 등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길을 달릴 때 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물이라든가 중간에 달리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정상적인 레이스를 할 수가 있다. 이번 레이스에서는 협곡을 따라 흐르는 강물과 작은 물줄기들을 따라 달리다 보니 체크포인트가 없더라도 물을 보충할 수 있는 곳이 많았다.

 cp2를 지나 살바도로와 프란체스코, 리아와 레이스를 함께 했다. cp3이 가까워 오면서 제법 큰 강이 나타났는데 프란체스코가 먼저 배낭을 벗고 강 속으로 뛰어 들어 몸을 담근다.

“Ahn! 여기 너무 시원해! 빨리 들어와.”

 대회 기간 동안 낮의 온도는 45-48도 까지 가는 무더위 때문에 참가자들은 달리다 강이 나타나면 너 나 할 거 없이 모두가 배낭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 더위를 식혔다. 그것은 선두그룹도 마찬가지였다. 순위 때문에 시간에 쫒기며 달리다가도 물이 있는 곳은 그냥 지나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cp3을 지나 캠프가 가까워 오면서 길게 뻗은 도로가 나타났다. 같이 달리던 친구들이 조금씩 속도를 냈지만 난 조금씩 체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레이스를 하면서 중간에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피니쉬 라인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조금은 힘든 레이스가 이어졌다.

▲ 캠프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참가자들 ⓒ안병식

 프란체스코가 나를 배려해 같이 가자며 속도를 조금 줄여줬다. 조금 주춤하는 사이 여자 1위로 달리고 있는 미국의 리아까지 합류하면서 결국 우린 모두 손을 잡고 함께 피니쉬 라인에 도착했다. 이것은 혼자 피니쉬 라인에 들어 올 때 보다 때론 더 큰 기쁨이 있다. 그것은 힘든 과정을 함께하며 서로가 더 친해지기 때문이다. 우린 서로 경쟁 상대이면서도 하루하루 지날수록 우린 더 가까워지고 추억들을 함께 만들어 간다.

 오후에 캠프 근처의 강가에서 샤워를 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날씨가 더웠지만 주변에 강이나 계곡이 많아 큰 불편 없이 매일 샤워를 할 수 있었다. 힘든 레이스를 한 후 땀으로 뒤범벅이 된 몸을 씻을 수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상쾌하고 행복한지...

 오후에 잠시 소나기가 내리고 나더니 멀리 무지개가 비치고 있었다. 하늘에는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들이 조화를 이루며 수채화처럼 예쁘게 펼쳐져 있었고 저녁노을도 여느 때 보다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둥근 달이 밝게 비치기 시작했다. 잠도 오지 않아 모닥불이 피워져 있는 곳으로 가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카메라는 레이스를 할 때 짐이 되고 무겁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재미있게 가지고 놀 수 있는 나의 ‘장남감’이기도 하다. 레이스 기간 동안 사진 찍기는 유일한 취미이면서 놀이이다. 오늘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사진 찍기 놀이에 빠져들어 갔다. 둥근달은 그런 나를 보고 미소 짓고 있었다. / 안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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