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 칼럼] 기로의 선 제주가 가야할 길 - 둘

  새삼 한 은퇴주교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세상의 지도자든, 종교지도자든 어려운 사람을 보면 울 줄 알아야 한다.” 날로 각박한 세상에서 지도층의 자세에 대한 일갈(一喝)이 아닐까 싶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백성들을 제대로 이끌어 잘 살게 해 주는 것을 넘어, 백성의 마음을 헤아려 섬기는 사람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나도 마음이 차갑고 돌덩이처럼 굳어서야 어찌 참지도자라 할 수 있나. 도리어 백성에게 상처와 아픔만을 줄 따름이다. 그 누구보다도 아량과 포용, 겸손의 덕목이 요구된다. 특히 어렵고 상처받은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우선할 줄 알아야 한다.
   
   몇 주 전에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등 12명이 부상당하고 연방판사를 포함한 6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참사였고 사건 직후에 미국 전역은 슬픔과 놀라움에 휩싸였다. 그 즉시 오바마대통령은 희생자들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를 전하며 고통과 아픔을 달래주었다고 한다. 또한 추모식에선 복받치는 슬픔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감정을 추스르느라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그 51초 동안의 침묵은 그 어떤 말보다도 모든 미국인들에게 ‘정말로 아름다운’ 감동을 주었고 대통령을 향한 한없는 신뢰와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 오바마의 눈물 / 사진=뉴시스 제공.

    이에 생각을 더할수록 마음이 따뜻하고 행복해 진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서 절절한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지금부터 60여년 전, 우리 제주도에는 이념과 공권력에 의해 선량한 사람들이 수없이 죽었다. 그 이후에 남겨진 이들 역시 모진 시련과 고난을 견디어야 했고 더러는 신변위협과 먹고 살길이 없어 일본으로 밀항하여 한많은 세월을 보내야했다. 더구나 수십 년 이상을 마치 죄인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숨죽여 지내야 했으니 이 얼마나 가련한 삶이던가. 그렇거늘 군사독재 정권내내 국가권력의 잘못은 모른 척 하면서도 그로 인해 고통과 상처를 받아 울부짖는 백성들을 포용하는 참리더십(leadership)은 없었다.

    다행히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면서 맺힌 한(恨)들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또다시 역사를 왜곡하려는 어둠의 세력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소위 진실화해위원회 이모 위원장은 “제주4.3을 공산주의 반란”이라고 하질 않나. 심지어 4.3평화공원에 폭도들이 희생자로 지정돼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하여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단체들 등이 계속 생채기를 내고 있다. 빛바랜 편향적 이념에 따른 무지의 소산으로 넘겨버리기엔 그 죄과(罪過)가 너무 크다. 이는 4.3영령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고, 유족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행위이며 나아가 우리 제주도민 모두를 우롱하는 처사와 다를 바 없다.

▲ 고병수 신부(천주교제주교구 복음화실장) ⓒ제주의소리
    더 이상 제주4.3에 대한 왜곡과 무관심은 예서 그쳐야 한다. 그럴수록 분열과 갈등이 조장될 뿐이다. 차제에 금번 1월26일 새롭게 제주 4.3희생자로 2485명을 인정한다니 무척다행이다. 이제는 제주4.3을 국가추모일로 정해 주민통합과 국론일치를 이루어주길 바란다. 더 나아가 이명박대통령은 이념과 정파를 넘어 백성의 어버이로서 금번 4.3때는 꼭 와서 유족들의 처진 어깨를 다독여주고, 그동안 제주민의 원의(願意)와 염원(念願)를 들어주는 ‘정말로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해 주길 바란다. 이로써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최대현안의 큰 실타래가 풀려 미래 제주도 발전의 길이 더욱 깊고 넓게 열리지 않을까 싶다. / 천주교제주교구 복음화실장 고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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