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 호주편] (3) 오스트레일리아 레이스 250km (2010년 5월)

▲ 안병식 선수. ⓒ안병식

Stage 4 17.1km

 오늘은 17km를 달리는 가장 짧은 코스이지만 산을 오르고 협곡지대를 지나는 힘들고 위험한 코스이기도 했다. 이런 코스는 평평한 도로를 달릴 때 보다 힘들기는 하지만 더 많은 재미를 주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레이스를 할 수 있다.(퍼지지만 않는다면..)

 코스가 힘들다 보니 자원봉사자나 스텝들이 갈 수 없는 지형이라 오늘은 체크포인트가 없었다. 물은 계곡에서 마실 수 있지만 물이 없는 지형도 있기 때문에 출발 전에 모두 3리터의 물을 의무적으로 챙겨야만 출발선에 설 수 있었다. 코스가 험한 지형에서는 빨리 달릴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비된다. 그래서 충분한 물의 보충은 매우 중요하다. 음식과 장비가 있는 배낭에다 1.5리터 2병의 물병을 챙기니 배낭의 무게는 더 무거워졌다.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면서 대회가 시작됐다. 하지만 나에게는 익숙하고 내가 좋아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프란체스코, 살바도로, 우리 세 명은 선두로 나섰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었지만 계곡을 따라 올라야 하기 때문에 코스는 조금 힘들었다. 이런 코스에서는 스피드 보다는 이런 지형에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유리하다.

▲ 협곡을 건너는 참가자들 ⓒ안병식

 1시간을 달려 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초원지대가 나타났고 산 위에서는 캥거루 들이 뛰어노는 모습들도 볼 수 있었다. 사람 인기척에 달아나 버려 가까이서 볼 수 없는 게 아쉬웠지만...

 산을 내려 온 후 다시 작은 산들을 오른 후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 계곡에는 물이 깊어 수영을 하고 건너야 하는 곳도 있었는데 미처 비닐봉지를 꺼내지 못해 배낭에는 물이 들어갔다. 그래도 협곡의 큰 바위들이 하늘 높이 뻗은 아름다운 풍광들을 즐기며 힘든 줄도 모르게 레이스는 진행됐다.

 3시간이 조금 넘은 시간 프란체스코와 살바도로 우리 3명은 함께 피니쉬 캠프에 도착했다. 우린 너무 일찍 도착해서 헬리콥터를 타고 온 몇 명의 스텝들은 선수들을 맞이할 준비도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대부분의 자원봉사자와 스텝들이 다음 텐트로 미리 이동을 해서 머물렀고 일부 스텝들만이 헬기를 타고 와 있었다. 30여분이 지 난 후 2위 그룹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코스 노트에는 'Extremly Difficult' 오늘이 가장 힘든 구간이라고 적혀있었지만 나에게는 가장 재미있게 레이스를 한 날이었다.

▲ 날씨가 더워서 레이스 중에 강이 나오면 몸을 담그는 참가자들 ⓒ안병식

 오후 내내 강가에서 수영을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우린 계곡에서 수영을 하고 목욕을 하며 놀았고 물이 공급되지 않아 다시 우린 이 물을 마셔야만 했다. 이쪽 지형을 잘 아는 일부 참가자들은 낚시 줄까지 준비해 와서 고기를 잡았는데 30cm가 넘는 고기들을 여러 마리 잡았다.

 오늘은 텐트도 없이 바위 위에서 침낭하나 깔고 야외에서 잠을 잤다. 강가라서 모기가 많아 잠을 자는 데 방해가 됐지만 오늘도 여전히 둥근달은 밝게 비치고 있었다.

Stage 5 100km

 100km를 달리는 롱데이(Long day) 날이다. 어제 강가에서 옷을 벗고 수영을 하면서 오후 내내 놀았는데 태양에 몸이 타버려서 등이 따가워 밤새 선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많이 무거웠다.

 오늘은 수영을 해서 건너는 코스도 포함되어 있다. 200M정도의 강을 지나야하는데 물이 깊어 수영을 하면서 건너야 했다. 강에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밧줄도 설치했다. 미리 준비해둔 비닐을 꺼내 배낭을 넣고 강으로 들어갔다. 옷과 신발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비닐봉지 속의 배낭까지 들고 가야 하기 때문에 수영이라기보다는 밧줄을 잡고 엉금엉금 거북이처럼 기어가는 형상이었다. 레이스 중의 색다른 경험은 참가자들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아이들처럼 웃음이 가득하게 만들었다.

 강을 건너는 사이 비닐 속에는 물이 들어가 배낭은 모두 젖어 있었다. 2번의 강을 건너고 난 후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언덕을 오르는 코스가 반복됐다. 10km의 코스였지만 2시간이 가까워서 cp1에 도착할 수 있었다.

▲ 강을 건너고 있는 참가자들 ⓒ안병식

 롱데이 날. 아직 가야 할 길도 먼데 이제 겨우 10km를 달렸지만 체력이 많이 소모 되어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함께 달리던 프란체스코와 살바도로를 보낸 후 혼자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체크포인트 2,3,4....

 태양도 뜨겁고 어제 타버린 등도 따갑고 몸이 지쳐가는 만큼 배낭의 무게는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중간에 강이 많아 물속으로 들어가 몸이라도 적시고 싶었지만 오늘은 강가에 악어들이 있기 때문에 강에 들어 갈 수 없다는 대회 측의 주의사항도 있었다.

 cp5에 가까워 졌을 때 멀리서 누가 ‘대~한민국’이라고 크게 소리를 지른다. 독일의 에버하드였다. 에버하드는 60이 넘는 ‘할아버지’이지만 참가자들에게 언제나 웃으며 큰소리로 격려하고 아빠같이 친구같이 참가자들을 대하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원봉사자이기도 했다.

▲ 선수들을 격려하는 자원 봉사자 독일의 에버하드 ⓒ안병식

 에버하드는 그동안 사막레이스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40년 넘게 넥타이를 매고 책상에 앉아 일만하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은퇴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익스트림’ 마라톤에 참가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친구이다.    그는 항상 웃는다. 그의 웃음은 나뿐만이 아니라 레이스에 참가한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줬다. 체크포인트에서는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아일링과 김석우 촬영 감독님도 나를 반겨줬다. 모두가 격려의 응원을 보내주고 있었지만 내 몸은 많이 지쳐있었다.

 잠시 쉬고 난 후 다시 발걸음을 옮겼지만 몸이 많이 무거웠다. 여러 날에 걸쳐 진행되는 레이스에서는 하루하루 컨디션 조절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하루다. 이후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힘들게 레이스가 진행됐다.

 cp6를 지나 내 친구 스페인의 카를로스를 만났다. 그는 참가자들이 야간에도 달릴 수 있도록 야광막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하이 Ahn! 너 괜찮아?”
“카를로스! 난 지금 시원한 맥주가 필요해.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고..”
“하하하! Ahn! 내일이면 우린 맥주를 실컷 마실 수 있다. 내일 피니쉬 라인에서 너를 위해 특별히 맥주를 준비해 두지..”

▲ 48도를 가리키고 있는 온도계 ⓒ안병식

 카를로스는 이번 대회에서 코스 디렉터 일을 맡았다. 코스 디렉터는 참가자들이 달릴 전체 코스를 정하고 각 코스마다 깃발을 묶어 참가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한다.

 카를로스와는 여러 대회에 같이 참가하면서 친해졌고 그동안 도움 받은 것도 많아 늘 감사하고 고마워하고 있다. 카를로스에게 남은 거리와 지나가야할 코스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듣고 난 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cp7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체력도 바닥이 났고 머리도 어지러워 20여분을 누워 있다 일어나니 몸이 조금은 회복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었지만 몸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둥근 달을 벗 삼아 어두워진 밤에 홀로 달리기는 계속됐다. cp8, cp9를 지나 긴 롱데이의 하루도 이렇게 끝이 났다. 다음날 까지 이어서 진행된 롱데이는 날이 어두워질 쯤 맨 마지막 주자가 들어오고 나서야 끝이 났다.

▲ 대회 중간에 이메일을 확인 하는 참가자들 ⓒ안병식

Stage 6 5km

 12km를 달리는 코스였는데 날씨도 덥고 마지막 날이라 코스를 5km로 줄였다. 8시,9시,10시 3개 그룹으로 나누어서 레이스가 진행됐다. 맨 마지막 그룹에 속해 달렸지만 5km는 20분이 조금 넘어 금방 피니쉬 라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피니쉬 라인이 있는 엘 퀘스트로(El Questor)가 가까워지면서 그동안 함께 달렸던 프란체스코와 살바도로 그리고 리아와 손을 잡고 함께 레이스를 끝마쳤다.

 카를로스와 대회 운영자인 메리가 참가자들에게 완주 메달을 걸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약속대로 카를로스는 나를 위해 맥주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마시는 맥주 한 잔의 행복...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식혀주는 것 만 같다.

▲ 마지막 날 푸니쉬 라인에 손을 잡고 골인 하는 필자 ⓒ안병식

 이번 레이스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광대한 풍경들과 그 곳에서 다른 레이스에서는 체험하지 못한 색다른 경험들, 레이스 도중의 강풍과 소나기, 밤마다 어두운 밤을 밝혀주던 둥근달의  기억들,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 등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하게 된 대회였다.

 달리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쉽지 많은 운동이지만 또한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 이런 ‘익스트림’ 레이스를 통해 성취감과 자신감도 얻는다. 이 자신감은 내가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내 삶에 큰 힘이 되어 주고 또한 새로움 꿈들도 만들어 낸다. 난 달리기를 즐기고 어느새 달리기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또 그 달리기를 통해 행복을 얻는다. / 안병식

* 대회 협찬 : JDC, 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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