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50) 큰당, 비탈에 서다 - 효돈동 하효큰당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하효큰당 ⓒ양영자

효돈은 과거에 ‘쉐돈(쉐둔)’이었다. 아직도 이 지역 사람들은 웃쉐돈(동상효·서상효마을), 중쉐돈(신효마을), 알쉐돈(하효마을)으로 부른다.

알쉐돈은 큰내(효돈천)를 품고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토지가 비옥하여 농사를 많이 지었으며, 바다밭을 갖고 있어 어업과 물질이 활발했던 부자 마을이다. 특히 남원읍 하례와 효돈의 경계를 이루는 큰내 ‘칼도(아래아)리물’은 바다로 이어지면서 인근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해 왔다. 신효·하효·남원읍 하례리 사람들이 거의 이 물을 먹으며 살아왔다.

큰내 ‘칼도(아래아)리물’은 하류에 도달하여 큰 소를 이루는데, 유명한 ‘쇠소(쉐소)’이다. 그리고 쇠소의 끄트머리가 ‘쇠소깍’이다. 제주에서는 맨 꼴찌를 일러 ‘깍’이라고 한다. 줄의 맨 뒤에 서라고 할 때도 ‘깍에 서라.’고 한다.

쇠소깍은 효돈천 하류로 바다와 맞닿아 짠물과 단물이 만나는 곳이다. 과거에는 덕판배를 이용하여 해산물을 채취하고 어업을 하던 곳으로 특히, 잠(아래아)수들의 물질이 활발하였다. 최근에는 테우타기 체험행사를 비롯하여 쇠소깍축제로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쇠소깍에는 처녀가 백일 동안 기도 드렸다는 ‘기원바위’와 기도를 정성껏 하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는 ‘신의 바위’가 멋들어지게 서 있다. 쇠소깍 동편으로 가뭄시 기우제를 드리던 기우제터가 있었으나 태풍 때 물에 쓸려 사라져, 지금은 쇠소깍 일대 깨끗한 터를 골라 7일 정성을 한 후 기우제를 드리고 있다.

하효마을 본향당인 큰당은 쇠소 웃머럭 냇가 위에 있다. 쇠소 웃머럭은 장어, 숭어 등이 많아서 남자들이 낚시를 많이 하였으며, 머럭 위에서 목욕이나 빨래가 성행하던 곳이다.

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발을 헛디뎠다가는 쇠소깍 아래로 바로 추락할 것처럼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로 좁았다. 마치 제물구덕을 진 여인들이 당신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위태로운 관문을 통과하여야만 하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하지만 한 해 사이에 당은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말끔히 정비되어 자연스럽게 올레코스에 편입되었다. 촛농이 없었다면 하이힐 신은 두 여성이 올라가 쉬고 있는 곳이 제단이라는 것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그렇게 올라갈 데가 아닌 것 같은데요. 제단이거든요.”하니 황급히 내려서며 제단을 향해 죄송하다고 연거푸 고개를 숙인다. 무속신앙과 금기에 대해서 최소한의 예의를 가질 만큼 사람들은 성숙해 있는데, 애써 당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애쓴 이들을 생각하면서 자꾸만 목울대가 잠겨온다.

쇠소깍 큰본향당은 6월 8일, 11월 8일 온 동네 밥 해먹는 사람은 모두 예를 올리는 중요한 의례터였다. 신성한 도량으로 여겨서 돌멩이를 던지거나 고성방가를 하면 용이 노하여 갑자기 바람이 불고 일기가 나빠졌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정성껏 굿을 하고 끝나면 쇠소깍으로 지드림을 해왔다.

밥을 해 먹는 사람들은 모두 다니는 당, 마을사람들의 호적과 물고를 담당했던 쇠소깍 큰당할망은 지금 위태롭게 비탈에 서 있다. / 양영자

*찾아가는 길 - 효돈동 하효와 남원경계 효례교 → 쇠소깍 방면 1.2km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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