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으며 길을 묻다] (5)일본 미나미(南) 알프스를 가다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포기도 절망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 되어야 한다.
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 평화, 사랑의 참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 산악인의 100자 선서 노산 이은상

  ‘어리목에서 윗새산장 가는 한라산 길에 가로등은 언제쯤 놓을거요’

  환경관리에 종사하는 서울의 친구가 일전에 함께 한라산에 다녀오면서 물어본 말이다.

  ‘거∼ 참’

  입산금지 취사금지 야영금지 화기사용금지, 금지 금지 금지 … .

  일본 산에는 ‘하지말라’는 금지조항이 없다.

  ‘알아서 다 하되’ ‘만약의 경우는 책임도 지라’이다. 금지에 익숙하고 다 큰 어른의 안전도 국가에서 책임지고 계도해 주는 우리와 달리 참으로 자유롭다.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고 그에 따르는 책임까지 마땅하다. 그래도 담배꽁초 하나 쓰레기 한 봉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번 북알프스 산행 중 휴식을 하는데 돌 틈에 종이쓰레기들이 뭉쳐 접혀있어, ’왠 쓰레기?‘하고 꺼내보니 우리나라의 ’조선일보‘였다’는 선배형 말. 

  일본 남알프스, 산은 더없이 맑고 청정하다. 고고한 높은 산 절벽 끝에만 산다는 ‘돌매화(岩梅)’가 산의 투명한 푸르름을 더하고 있었다.

▲ 일본 남알프스 트레킹 중 만난 돌매화 ⓒ송재호
  산길은 평지와는 다른 멋과 맛이 있다. 고행과 무념의 희열이 교차하며 함께 한다. 일본 미나미 알프스를 걷고 걸었다.

  제1일 히로가와바라(1529m) - 오오감바사와(1600m) - 카타노고야(3000m) - 키타다케(3192m) - 키타다케산장(2880m) 1박.

  제2일 키타다케산장 - 노우도리산장(2800m) - 노우도리다케(3026m) - 다이몬자와(2880m) - 다이몬자와산장(2880m) 1박.

  제3일 다이몬자와산장 - 제1발전소(810m) - 나라다(820m)

▲ 일본 남알프스 ⓒ송재호
▲ 일본 남알프스 ⓒ송재호

  일본 알프스(日本アルプス)는 주부 지방에 있는 히다 산맥(飛騨山脈), 기소 산맥(木曽山脈), 아카이시 산맥(赤石山脈)을 합쳐 부르는 별칭이다. 메이지 시대 이곳을 찾은 영국인들이 유럽의 알프스 산맥처럼 아름답고 웅장하다고 해서 그렇게 명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가노 현과 기후 현 및 도야마 현의 경계에 있는 히다 산맥은 ‘북알프스’, 나가노 현 남부에 있는 기소 산맥은 ‘중앙알프스’, 그리고 나가노 현과 야마나시 현 및 시즈오카 현의 경계에 있는 아카이시 산맥은 ‘남알프스’로 불린다.

  남알프스는 남북 120km, 동서 40km의 광대한 산악으로 키타다케(北岳 3,193m)를 최고봉으로 하여 3천m가 넘는 산이 10봉(峰), 2천500m 이상이 36봉(峰0이나 되는 일본의 지붕이다. 일본 북알프스가 우리나라의 설악산처럼 거친 바위로 된 골산(骨山)이라면, 일본 남알프스는 지리산처럼 부드럽고 온화한 산세를 지닌 육산(肉山)이라고 할 수 있다. 남알프스 키타다케에서 바라보는 일본 최고봉 후지산의 풍광은 일본인들이 가장 선망하는 경관이다.

▲ 남알프스에서 바라본 후지산 ⓒ송재호
▲ 남알프스에서 바라본 후지산 ⓒ송재호
  산행의 들머리까지는 이곳에서 운행하는 ‘택시’ 개념의 작은 봉고형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교통혼잡도 막고 환경도 지키면서 지역주민에게는 조금이라고 이익을 주려는 배려에서이다.

▲ 산행들머리까지 운행하는 미니 셔틀버스 ⓒ송재호

  산행 중 십분의 중간 휴식시간에 애연가라면 담배 한 개피 피우는 맛은 정말 그만이다. 담뱃불 조심, 잘 피고 휴대용 재떨이에 잘 싸서 가지고 오면 그만이다. 싱가폴은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버리면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리지만, 실제 싱가폴 거리를 걷다 보면 쓰레기를 버릴 일이 없다. 길 거리 구석구석 촘촘하게 쓰레기통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파리, 보통의 유럽에서는 더 자유스럽다. 휴지나 담배꽁초는 아무 곳에나 버리란다. ‘버려도 좋다’고 하면 잘 버리지도 않지만 다음날 말끔하게 청소·정돈할 만큼 정부는 ‘직무에 충실’하다.

▲ 일본 남알프스 트레킹 도중 휴식 ⓒ송재호

  고도 2천m를 넘어서면 거짓말처럼 산의 모습이 달라진다. 수목 성장 한계선이 해발 2천m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았던 침엽수림과 향긋한 치톤향, 소담스러운 야생화, 그리고 새소리와 물소리는 그만 자취를 감춘다. 눈, 바위, 그리고 눈에 깔려서도 모질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잡목들과 바람소리뿐, 스산한 한기까지.

▲ 일본 남알프스 ⓒ송재호
▲ 일본 남알프스 ⓒ송재호
  인간의 지혜는 환경을 보전하고 자연을 지키는 데 소중한 자산이다. 최소한의 산길을 내면서 가급적 변형을 가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부럽다. ‘산악에 길을 닦고 편의시설을 만드는 산악공법은 아마 한국이 최고일 것’이라는 비아냥이 왠지 부끄럽다.

  오물은 잘 발효시켜 다시 자연의 거름으로 보내고, 빗물 한방울도 잘 받아서 생명수로 쓰고 …. ‘순환하는 생명의 법칙’이 거기에 있다. 긴 세월을 이고 덩그러니 서 있는 ‘등산로 입구’라는 촌스러운 표지판이 오히려 연륜의 깊이를 더한다.

▲ 일본 남알프스 ⓒ송재호
▲ 일본 남알프스 정상 키타다케 표지 ⓒ송재호
▲ 일본 남알프스 길갈림 표지 ⓒ송재호
▲ 일본 남알프스 산장에 갖춰진 깡통 찌그러트리는 재활용 기구 ⓒ송재호
▲ 일본 남알프스 빗물 재활용 장치 ⓒ송재호
▲ 일본 남알프스 등산로 입구 표지 ⓒ송재호
  전화도 없고, TV도 없고, 핸드폰도 없다. 기계문명이 없는 이 곳, 자연 그대로의 생태적 삶이 한없이 편하다. 비누도, 치약도, 삼푸도 없지만, 그래도 지낼만하다.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편해진다. 가끔씩은 일상의 짜여진 삶, 현대 물질문명에서 해방될 일이다. 정신과 영혼의 휴식을 위해서… .

▲ 일본 남알프스 ⓒ송재호
▲ 일본 남알프스 ⓒ송재호

▲ 일본 남알프스 ⓒ송재호
▲ 일본 남알프스 ⓒ송재호
▲ 일본 남알프스 ⓒ송재호
▲ 일본 남알프스 트레킹을 마치고 들어간 온천장에서 ⓒ송재호
  ‘왜 우리는 걷는가?’
  ‘우리는 왜 산에 가는가?’

  1924년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앞두고 정상 6백미터 아래에서 실종된 조지 말로리는 원정을 떠나는 길에 '당신은 왜 위험하고 죽을 지도 모르는 산에 갑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산이 그곳에 있으니(Because it is there.)'라는 불멸의 명언을 남겼다.(그후 75년만인 1999년 에베레스트 정상부근에서 그의 시신은 발견되었다).

  왜 내려올 걸 힘들게 올라 가냐고?
  그렇다면 왜 기왕 죽을 걸 살아가지?  

  거스르면 반드시 파멸로 가는, 자연의 질서와 우주의 법칙이 있다. 쉽게 말해 추우면 따뜻하게 입고, 더우면 벗고 이런 것이다. 모든 고통과 번뇌가 결국 생명과 죽음, 둘 중 하나라는 단순한 선택으로 수렴되는 데, 그 때 인간은 ‘삶’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는 것, 뭐 이런 것이다.

  보다 나은 삶이란 보다 자연과 우주의 질서에 가까이가고 순응하는 삶일 것이다. 사회 역시 인간 다수의 모임이고 보면, 사회의 문제를 개선하고 사회를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사회적 대응의 방향 역시 이 틀을 벗어나는 게 아니다.

  지역정책 또한 지역사회의 문제를 개선하고 그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사회적 대응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지역정책도 ‘보다 자유롭게, 보다 편하게, 보다 자연스럽게’ 자연의 질서와 원리를 수용하고 따르는 것이 최선이다.

  가능한 한 자연 그대로, 있는 그대로, 그것이 가장 나은 것이다.
  무엇이 최선인지 판단이 서지 않으면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登山) 산이 인간을 받아들인다(入山)는 것이 사리를 분별하고 따질 때에는 적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 송재호

   

송재호 교수는 서귀포시 표선면 출신으로 제주제일고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학고 경기대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현재 제주대 교수(관광개발학과)로 재직중이다. 현실정치에도 관심을 둬 민주당 열린우리당내 개혁세력으로 활동해 왔으며 참여정부에 발탁돼 국책연구원장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으로 2년6개월동안 재임하면서 ‘섬UN’ 창설과 ‘한-중-일 크루즈관광’ 활성화를 제안하는 등 제주관광국제화를 다지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제주글로벌상공인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국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제주상공인을 하나로 묶고, 미래 제주발전을 위한 원동력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경제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에 전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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